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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08. 2022

언어와 학문

학문에는 바탕이 있다. 한국 역사에서 그 첫바탕은 인도에서 온 불교였다. 두번째 바탕은 중국에서 온 성리학이었다. 세번째는 서양에서 온 근대철학과 과학이었다. 우리는 이 세가지 바탕 위에 나름의 학문을 세워왔다. 그런데 최근 나는 새로운 바탕을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한국 고유의 인문학적 바탕이다. 그리고 이 바탕은 말, 즉 한국말에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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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문화의 바탕은 해당 시공간의 언어에 흔적이 남는다. 아니 어쩌면 언어가 해당 시공간의 문명 혹은 문화의 바탕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언어를 알면 문명과 문화의 바탕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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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부처님이 살았던 인도말에 바탕을 둔다. 나는 우즈베키스탄과 키르키스스탄에서 온 대학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중앙아시아의 언어들 중 상당수가 동사 위치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어처럼 주어 뒤에 바로 동사가 올 수도 있고, 한국말처럼 문장 맨 뒤에 동사가 올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언어적 태도가 불교 사상의 토대가 되었는지도 모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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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취지로, 중국의 공자와 노자의 사상 그리고 성리학은 중국말과 한자구성에서 바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어학은 중국말을 고립어라 말하고, 영어를 굴절어라 말하지만... 말 그대로의 뜻으로 한다면 중국의 한자가 더 굴절이 잘 되는 글자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문장은 영어처럼 구성이 고정되어 있지만, 한자는 문장 어디에도 자유롭게 쓰일 수 있다. 단어는 영어가 잘 굴절되지만, 문장은 중국한자가 더 잘 굴절된다. 나는 중국한자의 이런 형식이 성리학에 잘 스며들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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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대표되는 서양말의 형식은 '주어+동사+목적어'에 기반한다. 한국말로 '사과다'라는 말도 영어는 'It's apple'이라며 꼭 주어와 Be동사를 쓴다. 하이데거나 사르트르가 '존재'를 'Being'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서양말에서 존재인식과 '동사'의 위치는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이런 언어 형식이 서양철학과 서양과학, 기독교 등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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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태도를 동반한다. 과거 한국사람들이 자연을 함께하는 대상으로 본 반면 서양사람들은 자연을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았다. 왜 그랬을까. 이 또한 동사 위치로 설명가능하다. 한국말구조는 '주어+목적어+동사'이기에 '주어'와 '목적어'는 늘 함께하는 '동사'적 상태로 본다. 그래서 '인간=나'와 '자연=대상'은 늘 함께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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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난 철학을 공부할 때 주로 서양철학과 과학 그리고 성리학, 불교를 살폈다.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해왔다. 그런데 최근 3년동안 최봉영 선생님에게 한국말 철학을 배우며 한국말이 다른 나라의 말과 형식과 태도가 다르고, 한국말의 형식이 한국사람에게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일본과 몽골 그리고 터키 등 수많은 언어에서 동일한 것임을 발견했다. 즉 한국말이 불교와 성리학, 서양철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거대한 구조의 한 단면임을 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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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국사람이다. 아무래도 한국말에 가장 익숙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한국말과 이에 근거한 한국철학, 한국사람의 태도는 나의 디자인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인지언어학과 한국말 철학은 아주 연관이 깊어 나의 공부에도 큰 방향전환을 가져왔다. 특히 한국말 철학은 과거 공부했던 다양한 철학과 비교되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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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간의 공부들이 하나의 디자인이론으로 정리되고 있다. 나의 디자인이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시각언어학'이라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미지'도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하며 청각매체인 말, 시각매체인 글과 더불어 새로운 이미지 언어 지평을 열고자 한다. 나아가 '디자인도 하나의 언어'라는 시각언어학적 태도가 미래 디자인 교육이 나아갈 새로운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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