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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Apr 25. 2022

불안과 우울의 치료법

앵거스 플레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나는 종종 학생들에게 불안과 우울함을 느끼면 '편한 친구와 맛난 것을 먹으라'라고 권유한다. 내 안의 깊은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 밖의 매력적인 감각을 경험하라는 뜻이다. 내가 이 처방을 제시하는 이유는 너무 많아서 일일히 나열하기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처방은 효과가 있다. 왜냐면 이 처방은 경쟁과 적대라는 사회적 투쟁만이 아니라 개인의 심리와 연결된 신경과학적 지식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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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때론 과학적 지식이 틀릴 수도 있다. 대개 이런 경우는 옛날 과학을 가져올때다. 나는 이런 경우를 종종 본다. (가끔은 나도 그렇고) 과거의 매력적인 지식에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 지식은 너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불안 및 우울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지식과 상식은 밖에 있는 다양한 경험을 부정할때 강화된다. 매력적인 감각경험(대화나 책읽기)으로 나의 지식과 상식이 편견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과거의 나에서 빠져나올수 있다. 우리는 이를 '성장'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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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을 안과 밖으로 판단한다. 나는 밖에서 문제가 생기면 안으로 숨고,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밖으로 나가라고 권고한다. 그 이유는 그래야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계속 밖에 있으면 그 문제를 메타적으로 살피기 어렵다. 반대로 안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계속 안에 있으면 안된다. 음과 양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이 우리는 나 자신의 안과 밖을 오가며 메타적인 관점을 취하고, 다양성을 수용해야 한다. 동양에서는 이를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한자어로 가르친다. 그 뜻은 입장(地)을 바꿔서(易) 생각해(思) 보라(之)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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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많은 정신적 문제는 뇌의 감정적 개념 구성에서 비롯된다. 우리 뇌가 개념을 구성하는 이유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이다. 미래 예측이 맞으면 쾌감을 얻고, 틀리면 불쾌감을 느낀다. 불안과 우울은 미래 예측에 대한 불쾌감이다. 불안은 예측의 실패를 두려워하고, 우울은 과거의 실패에 갇힌 것이다. 즉 불안과 우울은 불쾌감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어쨌든 둘 모두 자기 안의 생각에 빠져 밖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밖으로 나올 방법은 하나다. 예측이 실패하지 않는 감각 경험. '편한 친구과 맛난 것 먹기'다. 내 생각엔 이것이 불쾌감의 함정을 빠져 나올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사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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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플래처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한다. 15장에서는 감사와 경이로움을 연결하는 문학 기술을 말하는데, 이 기술은 앞서 내가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정신치료법과 관련이 깊다. 나의 방법론 중 하나가 '고마움'이다. 나는 종종 농담삼아 나는 '고마신'을 모신하고 말하는데, 이 고마신은 '하느님께 감사함을 갖는 마음'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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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싸워 마음이 힘들때 상대방에게 고마웠던 추억을 떠올리면 그 상처가 조금은 완화된다. 삶이 힘들때 나와 함께하는 공기와 물 등 자연의 고마움을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이렇듯 고마움의 감정은 상당한 감정 치유 효과가 있는데... 나는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제시한지 못했다. 그런데 플래처가 그 효과가 '경이로움'에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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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움'은 밖에 대한 감각 경험에 사로잡힐때 주로 느낀다. "우와 대박 멋지다" "우와 재밌다" 등의 감정은 대체로 감각경험이 생각을 지배하는 상황이다. 생각은 주로 감각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데, 감각의 정보가 너무 경이로우면 생각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행동을 지시하는 뇌의 두정엽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럴 때 우리 몸은 감각 대상과 하나가 되고, 분리된 적대적 감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낀다. 명상가들은 감각적 경이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 생각을 멈추는 방식으로 이런 경험을 한다. 미학자들은 이런 경험을 '숭고함(Sublime)'이라 말했던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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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한 친구와 만나 맛난 것을 먹기'를 나를 생각(안)에서 꺼내 감각(밖)으로 보내는 방법으로 제시해왔다. 그리고 이 방법이 불안하고 우울함에서 나를 꺼내 일상의 고마움을 느끼게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방법이 경이로움과 연결되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치 못했다. 어쩌면 친구와 맛난 음식에서 느끼는 고마움과 감사함은 '경이로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경이로움이 뭔가 대단한 경험이나 특별한 체험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나의 의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일상의 경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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