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4일 그날부터 나는 시작했다.
나는 36년을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았다. 학창 시절 공부를 할 때도 밤이 고요하고 집중이 잘 된다는 이유로 시험기간에는 자정을 넘겨 공부하기 일쑤였고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다음 날 근무에 지장이 있던 없던 그런 생각일랑은 하지 않고 내가 놀고 싶은 만큼 자유롭게 실컷 놀다가 잠이 들곤 했다. 물론 다음 날 컨디션이 난조였던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습관은 육아휴직기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작년까지 연달아 3년간 육아휴직을 했던 나는 매일 밤 열두 번 넘어져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아이들이 잠든 밤에는 기어코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 아이가 잠든 안방 문을 살금살금 열고 나왔다. 거실에서 또는 노트북이 올려진 책상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든 사수하고자 애썼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나보다 일찍 일어난 아이에게 웃으며 아침인사를 하기는커녕 불평과 짜증으로 반응하며 시작하는 하루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하다며 칭찬을 받아도 모자란 아이에게 못난 엄마의 모습을 보였다. 육아의 퀄리티는 점점 떨어졌다. 하루의 시작이 흔히들 말하듯 상쾌하고 활기차지 못했다. 아침 등원 준비 시간은 촉박해졌고 아이에게 그 화살을 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하루 눈살 찌푸리는 육아가 연속될수록 자존감도 떨어져 갔다. 휴직을 했기에 업무에서의 성취감은 가질 수도 없는 내가 육아를 하며 살림이든 육아든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아 어느새 우울의 늪에 허우적대게 된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그저 이 모든 걸 내가 아닌 상황과 타인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12월에 생일이 있는 나에게 남편이 자꾸 애플 워치를 선물로 사주겠단다. 나는 필요 없노라고 몇 번을 좋게 거절했지만 먼저 사용을 해본 남편의 강력한 권유가 계속 이어져 결국 생일 전날 애플 워치를 선물로 받았다. 나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은 아이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선물을 끼고 다니는 것처럼 애플 워치를 손에 차고 이것저것 눌러보며 탐색을 시작했다. 그 설렘이 이어져 갑자기 새벽 5:30에 알람을 맞추고 ‘굳이’ 애플 워치를 손목에 끼고 잠이 들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가 처음으로 새벽 기상을 하기로 마음먹고 애플 워치 덕에 일어나게 되었던 그날. 그날이 바로 2021년 12월 14일이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그 정도로 내 인생에는 큰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날로부터 나는 새벽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기상시간이 매일 똑같진 않았다. 보통은 5시 30분에 일어났지만 어떤 날은 3시 30분, 또 어떤 날은 6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때때로 유튜브를 켜놓고 홈트를 하고 어느 날은 커피를 마시며 분위기 잡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밀린 가계부를 쓰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예상치 못하게 일찍 깨어버린 아이와 함께 이야기 몇 마디를 나누고 그림책을 읽어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가끔은 일어나지 못하기도 했고 가끔은 세 아이가 번갈아가며 새벽같이 일어난 탓에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기분이 좋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새벽 기상을 한 번 시작하고 그 횟수가 두 번, 세 번, 네 번 이어질수록 더 이상은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새벽 기상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고 새벽 기상을 독려하는 책도 읽어 싶어 져서 직접 찾아 읽기도 했다. 모든 관심이 새벽 기상을 지속하고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변했다.
사람이 이토록 변할 수 있을까? 오늘이 꼭 새벽 기상을 한지 만 10개월이 되는 날이다. 내 삶이 변해온 과정을 지금 돌아보니 그저 ‘미라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라클 모닝’이라고 부르는 걸까? 이 책을 사실 완독 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과정에는 남편의 도움도 컸다. 어렸을 때부터 새벽 기상을 하는 시부모님을 보고 자라 업무량이 극도로 많은 남편은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서 6:30에 학교로 출근하는 그런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나도 가랑비에 옷 젖듯 곁에서 지켜만 보다가 자연스레 따라 하기 시작한 삶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것이다.
새벽 기상의 유익함은 내 삶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올해부터는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애드포스트 승인을 받아 아주 푼 돈이라도 내 노력을 통해 부수입을 창출하고 있는 중이다. 어디를 가든 책을 끼고 다니는 사는 삶을 살고 있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는 사실을 37살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서평을 블로그에 남기기도 한다. 일상을 소재로 어떤 글을 쓸지 시시때때로 고민하기도 한다. 브런치 도전도 그동안 깔짝깔짝 써둔 글을 토대로 어느 날 새벽에 이루어졌다. 신청서를 내밀기로 마음을 먹은 그날 새벽 5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가며 글을 쓰고 접수한 결과 그다음 날 작가가 되었다. 빅씨스 홈트를 주 4회간 꾸준히 한지도 이제 4개월 차에 접어든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내 팔에 생긴 나만 느낄 수 있는 작은 근육을 보면서 입가에는 미소가 띄어진다.
이제는 새벽 기상을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내가 되었다.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새벽시간이 주는 고요함 속에서 내가 내 시간을 누구의 구속을 받지 않고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은 하루 중 다른 시간 가운데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경험이다.
최근 친한 선생님들을 만나서 기상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한 선생님은 다음 날부터 매일매일 자신의 기상시간을 적극적으로 공유해주신다. 시킨 이가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기상시간을 앞당기더니 갑자기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주신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키우는 그 선생님께서는 새 삶을 살게 되었다며 새벽 기상이 너무 좋다고 한다. 사실 이 선생님 덕에 나도 이 글을 쓸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의 새벽시간은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지 더 깊은 고민을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해 새벽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욱더 생산적인 일에 그리고 남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에 쓸 수 있을지 다음을 고민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내가 더 기대되는 오늘이다.
사진 © itsdavo,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