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에게 만둣국을 끓여드리는 사위

남편의 육아휴직이 만들어낸 에피소드

by 어흥라떼

남편과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떨어져 있는 동안 각자에게 일어난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들까지도 공유하는 편이다. 사실 내가 주로 그런 편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출근길 버스에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일들, 오늘 안에 상대방이 꼭 완수해야 할 육아와 관련된 일들이나 장보기 리스트 등 별 거창한 건 없지만 서로에게 이야기하고픈 내용들을 메시지와 사진으로 주고받는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월요일이었다. 남편은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그건 누가 봐도 만둣국 사진이었다. 이어지는 멘트는 이렇다.


맵싸한 만둣국,
아버님 붙잡아서 차려드림 ㅋ


별 설명 없는 단답형 같은 멘트였지만 나는 갑작스러운 카톡에 놀라며 이내 감동을 받았다. 직장에서 받은 카톡이라 이런 내 감정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해서 얼른 눈물을 삼켰다.


사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 뒤로 저녁은 주로 남편이 준비한다. 내가 육아 휴직했을 때에는 나는 여자이고 엄마니까 그리고 육아휴직을 했으니 내가 준비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올해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지만 저녁 준비는 당연히 내 차지라고만 (고리타분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남편이 돌본 3월부터 자연스럽게 남편이 저녁 메뉴 고민을 하고 남편이 요리 재료를 준비하고 남편이 식사를 차려서 나는 퇴근하면 아이들과 함께 바로 저녁을 먹는 날들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난 3년간 주로 내가 저녁 준비를 한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남들은 놀라고 어색할지 몰라도?)


그런 남편은 어느 날부터 저녁만 되면 육수를 내기 시작하는데....


어떤 주에는 하루는 콩나물국, 그다음 날에는 만둣국, 또 하루는 뭐였더라? 아무튼 멸치육수가 들어간 국물요리를 삼일 연속으로 하려고 하길래 제발 이번에는 그만 멈춰달라고 웃으며 만류한 적도 있다. 남편에게 육수 장인이냐고 놀리며 뭔 허구한 날 멸치육수 낼 궁리만 하는 거냐고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런 남편은 나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하게 육수 요리를 많이 하더니 어느 날 결국 우리 집에선 만둣국 장인으로 승격했다. 그가 끓인 만둣국은 아내인 나부터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2세인 막둥이까지 모두 맛나게 후루룩 챱챱 잘 먹는다. 남편은 점점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했고 결국 장인어른에게까지 만둣국을 대접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사실 아빠는 작년부터 아이들의 아침 등원 시간에 와서 도움을 주신다.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아빠였지만 언제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는 여러 번 반복되는 그 말에 혼자 아이 셋을 돌보는 아침시간이 너무 힘들어 결국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딸 둘을 등원시킬 동안만이라도 가정보육 중이었던 막둥이를 좀 봐달라고 SOS를 친 것이다. 그런 아빠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더니 올해 3월부터 육아휴직을 한 남편도 이어서 장인어른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의 육아휴직 덕에 그리고 아빠의 고마운 도움이 여전히 이어져 남편과 아빠 그리고 막둥이 총 남자 셋이 집에 머무르고 대화하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아빠가 일을 가시지 않는 날에는 집에서 좀 더 막둥이를 보다가 가시곤 했는데 그 틈새에 남편은 장인어른을 붙들고 점심식사를 하고 가시라고 했을 거다. 본인의 육수 실력을 장인어른에게도 뽐내고 싶었을 거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해 많은 용돈을 쥐어드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마음을 따뜻한 국 한 그릇으로 표현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남편이 내 부모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니 적잖이 감동이다. 남편이 이 정도로 요리에 자신감이 있는지 몰라서 놀랐고 또 그 자신감을 긍정적으로 잘 발휘해 나의 아빠에게 식사 대접할 생각까지 했다니 더욱 놀랐다.


사실 나는 아빠와 친하지 않다. 여느 집처럼 살가운 딸은 근처에도 못 간다. 살면서 내 속마음을 아빠에게 표현해본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부녀 사이가 차가운 마룻바닥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육아 도움을 받는 올해도 용기를 내서 표현한 것은 고작 고맙다는 말 그뿐이었다.


그런데 나의 아빠는 나도 한 번도 제대로 만들어드린 적 없는 집밥을 사위를 통해 맛보신 거다. 아빠는 드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글을 쓰다 보니 좀 궁금하긴 하다.


곁에서 이런 남편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그저 고마움뿐이다. 평소 요리를 즐겨하거나 지인들에게 식사대접을 손수 만들어서 하던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의 아버지에게 만둣국을 끓여 대접할 생각을 했으니, 부탁한 적도 없는 일을 이렇게 자발적으로 해주니 그저 고마울 수밖에.


남편의 육아휴직이 참 많은걸 깨닫게 한다. 그가 육아휴직을 처음 했던 1년 차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었는데 아이가 셋이 되고 나서 다시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 올해는 일상에서의 의미를 많이 찾게 된다.


만둣국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남편을 보니 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부모님께 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부모님이 요청하는 자잘한 부탁들을 불평하지 않고 기꺼이 도와드리겠다는 마음으로 돌려드려야겠다.


네 달도 더 지난 일이지만 지금 떠올려도 참 감동이다. 남편이 이 글을 보면 뭐라고 이야기할지도 궁금하다. 어쨌든 남편, 정말 고마워?


(내 카톡에서는 메시지가 지워져서) 남편의 카톡에서 캡쳐




사진 © charles,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