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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Dec 13. 2022

스타벅스의 첫 손님이 되어보았습니다.

새벽 기상 중 발견한 또 다른 기쁨

오늘은 새벽 3시 30분에 잠을 깼다. 평소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5시, 5시 30분쯤에 깨는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각성하듯 갑자기 잠을 깨버린 날이었다. 잠시 꾸물거리다 이내 이불을 훌렁 걷어내고 안방을 나왔다.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던 남편은 나보다 일찍 거실로 나와 있었고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요즘 아이들 반찬이 좀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냉장고에서 며칠째 잠만 자고 있던 콩나물을 꺼내 콩나물무침을 만들었다. 이어서 남편이 축구를 보며 차곡차곡 개어놓은 빨래들을 제 자리에 넣고 폰에서 불필요한 사진을 100장 정도 삭제했다. 뒤이어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벼운 덤벨을 들고 홈트를 시작했다. 오늘 운동은 45분짜리였다. 앗싸! 갑자기 선물을 받은 이 기분은 무엇인지? (평소에는 동영상 길이가 1시간 가까이인 경우가 많은 빅씨스 이볼브…….)


이전보다 한두 시간 더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내가 누리는 이 모든 시간이 여유로웠다. 바로 이런 날 나는 모델링팩을 한다. 글을 읽는 분들은 갑자기 무슨 팩 타령이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시간이 유일하게 맘 편히 팩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주저 없이 실행했다. 팩을 하고 나면 피부에 수분기와 윤기가 돌아서 거울 속의 내가 마치 딴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자아도취).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고 이 세상의 모든 여유를 내가 끌어모아 쓰는 것 같은 그 시간을 즐기게 된다. 애셋 맘이자 워킹맘인 나는 온전히 팩을 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 보통 새벽에 더 일찍 일어난 날 또는 토요일 오전에나 겨우 한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모델링 팩을 얼굴에 올려둔 채로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책상 위에 있던 책을 집어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났다. 올해 나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작은 버킷리스트가. 3년의 육아휴직에 종지부를 찍고 올해 복직한 나는 아침에 버스로 출근하는 날이 많다. 나름 스세권에 살아서 출근길에는 항상 동네 스타벅스를 지나게 된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 스타벅스 특유의 갬성을 아실 것 같다. 아침에 나는 종종거리며 20분마다 한 대씩 오는 버스를 놓칠세라 횡단보도마다 초록불이 되면 먹잇감을 잡는 하이에나처럼 바쁘게 뛰어가는데 내 눈에 보이는 그 스타벅스 매장의 모습은 어찌나 한가로워 보이는지. 아침마다 그곳을 지나면서 매장에서 나오는 재즈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라떼 한 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 바로 오늘이야.


나는 책을 읽을 시간이 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정리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면 바로 오늘이 그 스타벅스 감성을 즐기기로 (갑자기) 결정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해보지 못한 일이자 간절히 해보고 싶었던 일 한 가지를 실행으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밖에서 커피 한잔하며 여유롭게 책을 읽고 '출근'을 하는 것


사실 이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려고 도전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2-3주 전쯤 아침에 평소보다 겨우 10분 먼저 집을 나서서 동네에 있는 맥도널드를 갔었다. 내 계획은 (합리적인 가격을 자랑하는) 따뜻한 맥 커피를 호로록호로록 한잔하고 출근하는 거였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 동네 맥도널드는 아침 8시부터 오픈이란다. 그날은 결국 맥도널드 문 앞에서 커피 한 잔 못 먹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와서 이른 출근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늘은 그 실수를 완벽하게 만회하기 위해 우리 동네에서 그나마 일찍 문을 여는 그리고 항상 동경해 마지않았던 스타벅스를 목적지로 정했다. 오픈 시간이 7 시인 걸 한 번 더 확인하고 드디어 집을 나섰다.


도착하고 보니 매장이 조용하다. 어라? 내가 첫 손님이었다. 이건 예상치도 못한 수확이었다. 그저 아침에 커피 한잔하는 여유, 책을 읽고 출근한다는 그 멋져 보임을 순수하게 누리고 싶었는데 심지어 고요하고 파리 한 마리도 볼 수 없는 텅텅 빈 카페라니!!


굳이 '뜨거운 우유'를 넣어달라고 특별히 주문한 헤이즐넛 라떼 한 잔과 함께 20분 넘게 카페에 머물렀다. 직원분들은 그저 손님 중 한 명인 나를 응대한 것뿐인데 이건 마치 날 위해 준비된 공간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오늘 하루가 멋지게 흘러갈 것 같다는 근자감도 생겨났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내 입꼬리는 연신 위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버스가 올 시간이 다 되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매장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출근길이 이렇게 즐거울 일인가?



였다. 날씨는 분명 춥디 추운데 마음은 초등학교 입학을 기대하는 우리 딸처럼 그저 설렘 가득한 아침이었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그 길이 그렇게 짧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출근이 마냥 신나는 일로만 느껴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는 앞으로는 또 어떤 위시리스트를 정하고 달성해볼까 하는 신나는 고민을 했다.


애 돌보는 워킹맘이 아침시간 30분 여유를 누리기 위해 그 시간을 확보하기란 참 쉽지 않다. 사실 1년 전부터 아침 기상을 했지만 그 시간에도 내가 해야 할 무언가를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한 때도 적지 않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침시간 1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이 나를 얽매는 것 같다는 느낌에 피로해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달랐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 기상을 한 날이지만 20-30분 남짓한 시간 동안은 지난 1년간 해본 적 없는 '진짜 여유'를 누린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의 배려 덕에 저녁에 혹은 주말 시간을 활용해 혼자 카페를 가본 적은 적지 않다. 그리고 새벽 기상을 하면서 아침 30분 혹은 그 이상을 나를 위해 쓴 시간도 이제는 많이 쌓였다. 그런데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손님 한 명 없는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함께 보낸 30분의 시간을 누린 건 처음이었다. 이 일들이 내게는 크나큰 리프레쉬가 되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늘 아침의 내 마음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글로 써보았다. 퇴고를 하기 위해 다시 읽어보니 집에서 아침에 한 일이 뭐 저렇게나 많지 싶다. 한편으로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꽉 채워 바쁘게 사는 것도 내 성장에 도움이 되겠지만 때로는 긴장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진짜 여유'를 즐기는 시간도 꼭 필요하다 싶다. 출근 전 카페 나들이 덕에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앞으로도 난 하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그것들을 해내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더 노력하겠지. 오늘 아침 출근 전 카페를 들린 것처럼 크고 거창한 일들은 아니지만 내 일상에 활력이 되는 일들을 찾아서 해보고 싶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은 아주 잠시 떠올려 본 것만 4가지…….) 매일이 설렘이 될 순 없겠지만 일상에서 누릴만한 작은 설렘을 잘 발견하고 그걸 온전히 즐기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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