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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Apr 21. 2023

어쩌다 쓰기 시작한 필통편지

어릴 적 나는 엄마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 기억이 남아있는 6-7살 때부터는 말이다. 엄마와는 그저 전화로, 그리고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 작던 유년시절에 학교행사로 인해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해도 금세 내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져 결국은 책상 서랍 속에 숨겨버리곤 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왜 그랬을까? 아직도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이유는 잘 모른다. 다만 어렸을 때의 그런 내 모습이 이따금씩 불쑥불쑥 떠오르는 걸 보면 이 또한 내 성장과정의 한 결핍요소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다.


딸은 글을 읽고 또 글자를 쓰게 되면서부터 가끔씩 편지를 써서 내밀었다. 때로는 사랑한다는 말이, 때로는 엄마를 속상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 편지를 써준 적이 없는데 7살인 우리 딸은 글을 배우자마자부터 자신의 속내를 담은 편지를 내밀어 나를 당황케 했다.


아이와 글로 소통을 한다는 것은 내가 이전에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잿빛으로 기억하는 내게는 큰 기쁨이 되었다. 내가 엄마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내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을 우리 딸은 어쩜 이렇게 잘 해내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작년의 나는 주로 편지를 받는 입장이었다. 아이가 편지를 가져오면 나는 주로 말로 때웠다. "고마워" 내지는 "감동이야!" 등 나 또한 진심을 담은 ‘말’로만 아이의 편지에 화답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런저런 상념들이 머릿속을 둥둥 구름처럼 떠다녔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 아이에게 학교 적응을 위해 꼭 당부해야 할 것은 뭘까? 걱정과 고민, 그리고 다짐들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그러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렸다.


나도 아이에게 편지를 써주자.


편지란 자고로 쓰긴 어렵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받으면 참 기분이 좋은 대상이다.(진실한 마음이 담겨 있다는 전제 하에) 미처 말로 다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잘 표현해 주는 우리 딸에게 나 또한 편지로 화답을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생각날 때마다 포스트잇에 간단히 써서 아이의 필통에 몰래 넣어두었다. 아침에 학교에서 필통을 열었을 때 엄마인 나의 편지가 아이의 마음에 가 닿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을 손바닥 만한 포스트잇 한 장에 고이고이 담아 보냈다.


아이는 매일 필통에 들어있는 편지를 읽어본다고 했다. 혹시나 또 새로운 내용의 편지가 들어있을까 싶어서 그 새 편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오늘 약 10일 만에 또 필통편지를 써서 넣었다. 오늘 하교한 우리 딸은 나에게 어떤 답을 해줄지 참 궁금하다.



'엄마'라는 단어가 유독 뭉클하게 느껴지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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