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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Apr 20. 2023

탈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내가 내민 것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올해 3월 막둥이의 어린이집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새로 알아본 곳은 유모차를 끌고 가도 10분은 넘게 가야 하는 곳이었어요. 하지만 다행히도 입소가 가능한 상황이어서 바로 등록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거리로 인해 등하원길이 힘들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등원을 이어가면서 새롭게 알게 된 장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막둥이의 '차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알 수 있었거든요.


집에서 거리가 있는 어린이집에 도착하기까지는 좁은 골목길, 큰 사거리 등 많은 길을 지나갑니다. 그 길에는 다양한 차들이 지나다니더라고요. 돌 이후쯤부터 막둥이는 자기 눈에 보이는 사물을 느낌표를 붙여 말하는 아이였어요. 초반에는 길에서 보이는 차들의 종류를 잘 모르니 빠방! 빠방! 노란 빠방! 뻐-쓰! 트럭! 파란 트럭! 이 정도로만 말했어요.


아이의 빠방 이름 말하기를 지켜보던 저는 점점 등하원길이 재밌어졌습니다. 아이의 관심사를 함께 공유하니 지루할법한 그 길도 유심히 보게 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차의 종류와 색깔을 구분해서 하나하나 알려주기 시작했어요. 봉고, 트럭, 큰~ 트럭, 작은 트럭, (아주 작은 트럭은) 아기 트럭, 쓰레기차, 청소차, 승용차, SUV 등으로 말입니다.


근데 알려주면 알려줄수록 아이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차가 보이면 "저거는 뭐야? 저거는 뭐예요?" 쉴 새 없이 물어왔어요. 문제는 잘 알려주고 싶은 저도 더 이상의

대답은 불가능했어요. 아이는 지나가는 차 한 대 한 대 허투루 보지 않고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 이름을 불러주려고 하는데 차의 종류를 잘 모르는 저는 해 줄 수 있는 대답이 없어 아쉬움이 쌓여갔어요.


어느 날 갑자기 이때다! 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흔히들 잘 아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라는 문구가 있죠. 보통은 일이 들어올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저는 이 문구를 아이의 책 읽기 상황에 적용해 보았어요.


아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생겼을 때 주저하지 말고 관련 책을 들이밀어 봐라!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 홀로 도서관 나들이를 했던 그날, 저는 어린이실을 들러서 탈 것에 관련된 그림책을 찾아보았어요. 다행히도 아이가 볼 만한 책들이 몇 권 보여 가벼운 마음으로 빌려왔습니다. 하원한 아이에게 제가 빌려온 책들을 짜잔~하고 내밀었습니다. 아이는 앉은 그 자리에서 서너 권을 보더라고요.


역시나 "이거는 뭐야? 이거는 뭐예요?" 손가락으로 차그림을 가리키며 묻는 막둥이의 익숙하고도 귀여운 질문을 받아가며 빠방이 책을 한 장 한 장 같이 넘겨보았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탈 것에 관한 단순한 Q&A 시간을 가졌어요.


책을 빌려온 지 2주가 다 되어가는 지금 막둥이는 많은 차 종류를 알게 되었습니다. 청소차, 트레일러, 레미콘, 포클레인부터 시작해서 콤바인, 로드롤러까지. 저는 이렇게 세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에도 잘 알지 못했던 탈 것의 종류를 3살인 막둥이는 벌써부터 두 눈과 머리 속에 차곡차곡 담고 있어요.


아이의 관심사에 대한 몰입을 책으로 연결시켜 줄 수 있어서 참 뿌듯합니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탈 것이 그려진 그림책을 아주 좋아해요.


아이의 관심사는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공룡 또는 또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때마다 저는 아이의 뒤를 조용히 따라가다가 이 때다! 싶을 때쯤에는 살짝 새치기해서 아이의 관심사가 반영된 그림책을 슬쩍 내밀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이 뒤에서 조용히 따라갈래요.


좋아하는 그림책을 볼 때 즐거워하며 씨익 웃는 아이의 미소가 저는 참 좋습니다.




사진 © natura_photo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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