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의 속도로 잘 자라고 있구나
오늘은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렸습니다. 둘째와 셋째는 평소에 도보로 기관을 데려다줘요. 오늘은 급하게 준비를 하다 보니 미처 막둥이 우비를 챙기지 못한 채로 나왔습니다. 결국 둘째는 혼자 우산을 쓰고 저와 막둥이는 한 우산을 같이 쓴 채로 걸었어요.
단지 내 유치원을 다니는 둘째를 먼저 데려다주었어요. 저는 노트북이 든 제 가방과 막둥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다 어깨에 메고 한 손은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막둥이 손을 잡았습니다.
비가 점점 많이 오길래 제 차를 타고 가야겠다 싶어 함께 아파트 주차장으로 향했어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제 차를 쓴 남편이 어디에 주차를 해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남편은 전화도 받지 않았답니다.
결국 막둥이와 저는 비가 오지만 평소처럼 걸어서 어린이집을 가기로 했어요. 제 가방과 막둥이 가방이 무겁고 점점 비에 젖었지만 또 막둥이의 머리카락과 제 옷에 물기가 스며들었지만 아이가 제 손을 꼭 잡고 걷는 그 시간들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어요.
어린이집에 다 왔을 때 즈음 막둥이는 걸음이 급격히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성인 걸음으로 8분 정도 걸리는 데다가 비까지 왔으니 지금까지 잘 걸어온 것만 해도 대견했어요. 저는 막둥이를 힘껏 들쳐 안았습니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더라고요. 서른 걸음 정도 갔을까요? 아이의 장화 한 켤레가 조금씩 벗겨지더니 바닥으로 툭 떨어졌어요.
저는 한쪽 무릎을 접고 앉아 허벅지 위에 막둥이를 앉히고 떨어진 장화를 신겨주었어요. 그때 막둥이는 제게
미안해.
라고 하더라고요. 만 28개월의 아이는 자기 신발이 바닥에 떨어져서 엄마가 다시 신겨주는 게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라고 엄마는 괜찮다고 말해 주었어요. 그랬더니 이내
신발이 벗겨져서 속상해.
라고 했어요.
저는 아이의 두 마디를 듣고 뭉클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거든요.
첫째를 기를 때의 저는 참 미숙했습니다. 그 당시 아이를 위하는 마음은 여느 엄마와 다르지 않았지만 사랑을 표현하고 아이를 품어주는 방법을 잘 몰랐어요.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아 기르다 보니 아이의 필요를 다 채워주는 것보다는 아이의 요구사항을 눈으로 잘 지켜보고 그때마다 아이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들을 제 입술을 통해 들려주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막둥이도 이제는 자신이 잘못한 일을 하고 나면 바로 사과를 할 줄 알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땐 "좋아! 좋아!"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어요.
놀이가 제 맘대로 되지 않아 답답할 때는 "엄마, 도와주세요!"라고 하고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해 속상할 때는 손에 쥔 물건을 집어던지는 대신 "떤지!!! 떤지고 싶었어!!!"라고 자신이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말로 표현하는 아이입니다.
셋째를 보면서 참 많은 걸 느껴요. 오늘 아침 등원 길은 비록 비가 와서 힘들었지만 우리 아이의 말 습관을 곱씹어 볼 수 있어 행복하고 뿌듯한 시간이었어요.
어린이집 앞에서 작은 수건으로 막둥이의 젖은 머리를 닦아주고 이어서 가방에 묻은 물기도 슥슥 없애주었어요. 앞으로 아이의 마음에 남아있을 부정적인 생각과 말들 또한 저의 세심한 언어와 표현들로 잘 지워주고 닦아주고 싶다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비 오는 날 아이와의 동행, 생각보다 참 좋네요! ❤️
사진 © weareambitious,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