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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과 해방

청와대 개방과 전직 대통령의 해방, 그리고 나의 개방과 해방

by 티키타카존

오랜만에 광화문에 나갔다. 지하철 광화문역엔 '청와대 가는 길'이라는 문구 표지판이 생겼고, 아빠,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가시는 어르신 분들이 그 길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부모님은 친구분들과 청와대를 방문하시려고 관람 신청 예약을 하셨다. 그런데 예약으로 입장이 가능한 건 아닌가 보다. 추첨에서 탈락하여 주말 나들이 장소를 변경해야 한다고 아쉬워하셨다.

얼마 전 청와대 '열린음악회'가 1995년 5월 이후 27년 만에 개최되었다. 대통령 부부도 참석하셨다고 한다.


지난 5월 10일 청와대가 74년 만에 전면 개방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곳에 계셨던 전직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시고 떠나시며

"저는 해방됐습니다. 자유인이 됐습니다. 마음과 정신만은 자유롭게 날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대통령은 힘들고 어려운 자리인가 보다.


5월 11일 같은 날 같은 신문 지면에 한 분은 그곳을 개방하고, 다른 한 분은 그곳을 떠나시며 해방되셨다 하는 상황이 묘해서 적어 놓았던 글이다. 물론 전직 대통령의 해방의 의미는 장소가 아니라 자리를 의미하는 게 큰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가 유행이다. 많은 이가 어디에선가 해방되고 싶어 해서 일까? 이 드라마에서는 ‘추앙하다’라는 단어가 나온다. 자꾸만 땅 밑으로 꺼져가는 느낌에 서로를 추앙하여 높이 올려 현재 상황에서 해방되려 하는 의미라고 한다.


"날 추앙해요"

"겨울이 오면 살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할 일도 없어요. 당신은 그 무엇이든 해야 해요.

그러니까 나를 추앙해요. ~~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요.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요.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

[나의 해방 일지 2회 중 '미정' 대사]



‘해방시킨다’,’ 해방되다’ 라고는 하지만 ‘해방하다’라고는 하지 않는 것 같다. 해방은 주로 타인에 의해 또는 상황에 의해서 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도 '미정'의 해방은 스스로가 아닌 서로의 ‘추앙’을 통해서 이루려 한다.


문득 나의 해방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를 조금 더 개방해보면 어떨까? 개방은 스스로 할 수 있고, 어쩌면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있다'라는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내 마음의 문은 내가 스스로 개방해야 한다. 마음의 방문을 열고 솔직해지면 다른 사람들과도 한 걸음 가까워지지 않을까? 개방을 통해 사람들 속에서 해방감을 맛보고 그 안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어제 오랜만에 친한 친구, 동료들과 저녁을 먹었다. 알코올의 기운을 빌리기는 하지만 가끔의 그런 자리가 솔직해짐을 통해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는 하다.


난 과연 나의 해방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은

앞으로도 여러 번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들 그렇게 힘을 내고 살아간다"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오늘 아침 우연히 본 브런치 글에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 속의 글이 언급되어 반가웠고, 또 주인공 ‘이라부’가 그리워졌다. 큰 덩치의 재미있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엉뚱하고 다소 엽기적이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친근하게 다가가 그에게 찾아온 환자를 치료해주는 모습에 많이 웃고 감동받았던 소설이다.

'이라부'는 환자를 만났을 때 의사와 환자의 관계보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환자를 받아들이고 그와 동행하면서 환자를 치료해주고, 그 자신도 환자를 통해 즐거움을 얻고 행복해한다.


일상에서 스스로 내 마음의 문의 개방을 통하여 나의 해방에 도전해본다. 그 해방을 통하여 갇힌 나를 주위 사람과 함께 놓아두려 한다. 함께함으로 용기를 얻고 나도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삶을 통해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싶다.


개방 (開放): 문이나 어떠한 공간 따위를 열어 자유롭게 드나들고 이용하게 함.

해방 (解放):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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