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키타카존 Aug 17. 2022

저녁에 커피를 들이켜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에 적응이 안 되어 가는 것 중 하나가 ‘커피’다. 예전에는 커피를 하루에 몇 잔을 마셔도 또 저녁 시간에 커피를 마신다 해도 밤에 잠을 자는데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하루에 2잔이 넘어가는 커피나 늦은 오후 마신 커피로 인하여 잠을 설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난다. 더군다나 잔기침이 계속 나와서 병원에 갔더니 역류성 식도염이 있으니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까지 한다. 이젠 커피 마시는 횟수와 시간을 통제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아예 커피와 이별해야 할 단계까지 와 버린 건지 해서 서글퍼진다. 지금 이 순간에 커피를 대하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건강이다. 밤의 숙면을 위하여 커피 마시는 횟수를 제한하고 마시는 시간을 통제하며 역류성 식도염을 걱정하여 커피 마시는 행동까지 금하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커피를 아무 제약 없이 마시는 때가 있다. 커피 마시는 양도 시간도 상관없다.


가족들과 서울 인근으로 당일치기 물놀이를 다녀왔다. 새벽같이 출발하고 신나게 하루를 보냈다. 모두들 재미있게 놀고 이른 저녁도 맛있게 먹고 6시경 서울로 출발했다. 재미있게 하루를 보낸 건 가족 모두의 즐거움이고, 이젠 안전하게 집으로 가족을 데리고 와야 하는 아빠의 임무가 시작되었다. 저녁을 먹은 후 식당에서 일단 일명 다방 커피라 불리는 인스턴트커피 한잔을 마신다. 그리고 나니 옆에 있는 원두커피 머신으로 눈길이 갔다. 연한 원두커피 한잔을 마시고 다시 에스프레소로 뽑은 커피를 섞은 일명 제조 샷 추가 커피를 가지고 차에 오른다. 내가 말한 바로 이 순간이 지금이다.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시는 순간이다. 저녁에 잠이 오지 않을 것을 염려하지도 나의 역류성 식도염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커피를 대하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졸음’이다. 이때까지의 건강에 대한 염려를 버리고 오직 커피의 카페인을 찾을 뿐이다. 운전하면서 졸리는 순간을 쫓기 위한 몸부림이다.


커피를 처음 마신 건 대학교를 입학하고부터였다. 남자 동기들이나 친구들하고는 학교에서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셨다. 그건 커피라는 의미보다 그냥 밥 먹고 하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 당시 아메리카노나 라떼 등의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소개팅을 하러 커피전문점을 갔을 때나 이성친구를 만나러 그 당시 유행하던 편안한 소파와 전화기가 있던 카페에 갔을 때가 전부였다.  그때 그 순간 커피를 대하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분위기였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커피는 일종의 카페 대여료 정도로 지불하는 것이었다. 테이크아웃 커피는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마시기 시작한 커피는 점심식사 후 대화를 위하여 마시는 게 주목적이기도 하고, 다른 기관이나 회사를 방문했을 때 내어주는 그곳의 정성으로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를 방문하면서 어쩔 때는 하루에 몇 잔의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때론 오후에 사무실에서의 나른함을 쫓기 위한 카페인을 찾기 위하여 마시는 경우도 있다.


사실, 커피 한잔에도 그 상황에 따라 마시는 이유와 마셔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등이 너무 많다. 때론 졸음을 쫓기 위해서, 때론 사람들과의 대화를 위해서, 때론 왠지 마시고 싶어서 커피 잔에 손이 간다. 때론 건강상의 이유로, 저녁에 잠이 안 오는 것을 걱정해서 커피를 거절하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절대적인 것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하루하루가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지금에서는 절대적인 것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변화에 수긍하고 적응하는 능력이 중요할 때가 있다. 물론 변하지 않는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것들은 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것 이외에 내가 고집해야 하는 절대적인 것들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이 말은 내 생각과 행동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그 행동과 말이 맞을 수 있지만 시간과 장소가 변한다고 하면 내 생각도 변해야 할 때가 있다. 커피를 대하는 나의 마음도 상황에 따라 그렇게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중학생 딸을 둔 아빠로서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빠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다. 학교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원이 된 난 그 삶이 최선인 것처럼 생각한다. 건강을 생각하면서 마시는 커피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이의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가수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아빠에게 노래한다. 왜 자기의 꿈을 지지해 주지 않느냐고 투정도 한다. 난 그래도 영어 학원은 잘 다녀야 한다고 한다. 아이는 운전 전에 커피를 생각하는데 난 건강 앞에 커피를 바라본다.


커피를 마실 때는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을 염두에 때론  기준도 상황에 맞게 적용하면서  생각은 언제나 같은 것만 고집한다. 자식 앞에서는  기준을 바꿔보는   어렵다. 그런데 이젠 커피의 효용보다  맛을 음미해 보고 싶다. 카페인을 위한  카페인을 걱정하는 커피가 아니라  고유의 커피 맛과 향을 음미해 보고 싶다. 그게 커피의 본질을 느끼는 거고 어쩌면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커피 본연의  일수도 있다.


커피의 맛에 집중하고   딸을 위하여 보컬학원 등록을 하려고 한다. 아이에게도 커피 본연의 맛을 느끼게  주고 싶다. 그러다 보면 커피 뒤에 오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수도 적을 수도  중요할 수도 하찮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마음과 눈을 키워줘야겠다. 물론 나도 지금 그 눈을 키워야 할 때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화점으로 산책을 가서 명품을 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