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못한 오만가지 변명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오만가지는 되겠지만 그래도 몇 가지만 이야기해야 다음 글이 쓰일 것 같다.
첫 번째는 12월 초 폭풍우처럼 밀어닥친 일거리다. 한 달 치 분량의 일을 일주일 만에 했더니 번아웃이 돼버렸다. 나의 모든 일에 대한 집중력을 한꺼번에 쏟아부었더니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 브런치에 글을 쓸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겐 생활의 활력소이자 에너지가 생기게 하는 원동력이었건만 그 글을 시작할 힘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생일 케이크의 초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성냥개비를 적린 마찰면에 비벼야 한다. 글을 시작하기 위한 성냥개비가 나에겐 하나도 없이 다 소진되어 버렸다. 자리에 앉을 여유도 또 글을 쓸 힘도 사라져 버렸다.
두 번째는 코로나로 못 쓴 휴가를 쓰느라 글을 쓰지 못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게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지?"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너무 바빠서 또 너무 힘이 들어서 글을 못썼다 했더니 이젠 쉬는 시간이 많아서 글을 못썼다 한다. 가족들과 강원도로 여행을 가고 또 며칠은 하는 일 없이 빈둥 거렸지만 그 역시 그 시간에 난 글을 쓰지 못했다. 나의 글쓰기는 어쩌면 내가 글을 쓸 충분한 시간이 있어서 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바쁜 와중에 힘들게 힘들게 쓰인 글쓰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시간이 많을 때 글을 쓸 수 없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세 번째는 나의 글쓰기는 달리는 자전거와 같은 것 같다. 자전거를 타려면 달려야 한다. 멈추면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나의 글쓰기는 어떻게든 계속 써 내려가야 하는 것 같다. 쓰다 멈추었더니 다시 쓰기 위해서 더 많은 힘이 들었다. 나의 글쓰기에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 것이다.
관성의 법칙: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정지한 물체는 영원히 정지한 채로 있으려고 하며 운동하던 물체는 등속 직선운동을 계속하려고 한다.
나의 삶도 나의 글쓰기처럼 이런 관성의 법칙이 항상 존재했던 것 같다. 달리다 멈추면 그냥 주저앉고 만다. 달릴 힘이 없더라도 조금씩이라도 걸어야 한다. 그렇게라도 걸어가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생의 관성의 법칙은 멈추어 버리면 스스로 다시 움직이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마지막 네 번째는 항상 비슷한 내 글쓰기의 결론이다. 은행원이 된 공대생 코스프레라도 하듯이 나의 글쓰기는 항상 결론을 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따라다닌다. 그 글의 결론은 항상
"그래 잘해보자. 힘내보자. 달려보자 " 뭐 이런 것이다. 이런 결론이 지쳐있는 나에게 힘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글을 쓰고 싶었었다. 그러나, 그런 고민 속에 글은 더 안 써졌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또 결론을 내는 습관이다. 어쨌든,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일단 쓰자'였다.
크게 기지개를 켜본다. 왜 기지개를 켠다고 할까? 기지개를 하면 잠들었던 정신이 켜지는 걸까? 기지개를 하고 나의 뇌의 스위치를 켠다. 글쓰기 스위치를 켜본다. 이렇게 다시 글을 시작한다.
두서없이 시작된 기지개를 켜는 나의 글쓰기가 앞으로도 한동안 이렇게 될 것 같다. 그러다 다시 글태기가 오면 또 성냥개비를 열심히 찾아서 불을 붙여야겠다. 그리고, 그 성냥개비가 다 소진되지 않도록 틈틈이 채워 놓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