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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키타카존 Oct 03. 2022

어느 청년의 고뇌 - '하얼빈'을 읽고-

백년전의 총성이 현재를 지나 앞으로의 백년을 울렸다.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 시대였던 어느 때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서 우리나라 해방 의지를 알리려 했던 의사 '안중근'이 내가 그에 대하여 아는 전부였다.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본인의 목숨을 내어 놓은 위대한 독립운동가라는 수식어가 내가 느끼는 그에 대한 전부였다.

‘김훈' 작가는 "나는 안중근의 '대의' 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고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했다.

난 이 책을 통하여 인간 '안중근' 그리고,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고 세상을 향한 그의 '코레아 후라 (대한민국 만세)' 외침 안의 고뇌를 보았다.


안중근은 독립운동가였지만 당시 다섯 살이었던 큰아들 '안분도', 아버지의 얼굴도 못 보았던 삼십 개월밖에 안된 차남 '안준생', 명동 수녀원에 맡겨졌던 여덟 살 큰 딸 '안현생'이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을 만나러 아이들을 데리고 하얼빈으로 온 '김아려'의 남편이었다. 그리고, 황해도 해주의 안씨 문중의 장손으로 어머니와 남동생 둘이 있었다.


본인은 대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만 그 이후 박해와 시련을 겪어야 할 형제부모와 아내, 자녀들의 고통 속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안중근이 거사를 치르던 그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그다음 날 도착한다. 그에게 세례를 주었던 빌렘 신부가 여순감옥에서 그를 면담할 때 그의 가족이 하얼빈 하늘에 총성이 울린 다음 날 도착한 것에도 감사한다고했다. 만약 그전에 가족을 만났더라면 그는 마음이 흔들렸을 거라 한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의 고뇌가 다시 한번 느껴졌다.


어떤 이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변명하며 ‘친일'을 행하였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의 죽음보다는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며 목숨을 내던져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그 하얼빈의 총성이 백년도 더 전의 일이건만 '안중근'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서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읽히고 '나의 대한민국'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반가운 마음 한편에는 미안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라고 했던가.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난 지금 우리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그냥 ’나라에 대한 일은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난 선거에 꼭 참여하는 것으로 나의 목소리를 냈다‘고 하는 것이 이 대한민국에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한다. 난 이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든다. 먼 미래의 백년뒤 현재의 상황을 두고 후손들은 어떤 평가들을 할지 모르겠다. 그 백년뒤의 대한민국이 과거 백년전의 그 고뇌의 청년들이 지켜냈던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지금의 '안중근'들이 잘 지켜낸 나라이기를 기도한다. 나도 그 안중근들의 무리에 어떤 모습일지라도 백분의 일, 아니 만분의 일이라도 기여했으면 한다.


안중근의 이토를 총으로 죽인 행위를 당시 천주교는 하느님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죄인'으로 규정지었다. 안중근은 빌렘 신부에게 자기의 영혼을 의탁하고 싶다고 전한다. 비록 살인을 저지른 죄인이라고 했지만 나도 그가 하늘나라에서 용서받기를 원하고 또 기도한다.

빌렘 신부는 안중근 의사가 죽기 전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행했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대한제국 황제 순종의 서른일곱 살 생일인 3월 25일 다음날 여순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다음 날 3월 27일은 부활절이었다. 그의 바람대로 부활전에 죽음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듯이 그도 부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조금 더 편안히 눈을 감았을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1993년 8월 21일 안중근을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최초의 미사를 거행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강론에서 안중근의 행의는 '정당방위'이고 '국권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으로서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 고 말했다.


소설 초반 안중근은 아버지의 죽음 뒤 태어난 아들을 두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버지가 죽자 아들이 태어나는 질서는 삶과 죽음이 잇달음으로 해서 기쁘거나 슬프지 않았고, 감당할 만했다. 모든 죽음과 모든 태어남이 현재의 시간 안에 맞물려 있었다.' 그는 죽었지만 인간의 죽음과 삶이 연속되어 이어오듯 그의 나라에 대한 마음 또한 연속되어 이어져 올 것이다. 아니 단순히 혈연으로 이어져온 생명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백년전의 그 세상을 향한 울림이 지금 이 시점에 그리고 앞으로의 백년 후를 이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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