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 미덕? 자기주장은 확실하게.
늦은 저녁 갈증이 났다. 술에 약한 체질이라 즐겨하지 않지만 그날따라 왠지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싶어졌다. 타오르는 목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얼마 전 냉장고에 사다 넣어둔 맥주 한 캔을 땄다. 벌컥벌컥 한두 모금을 마셨다. 시원한 맥주 맛은 그대로인데 뭔가 허전하다. 이건 뭐지. 내가 마트에서 산 건 '무알콜 맥주'였다. 왜 크게 쓰인 '0.0% Alc'를 보지 못한 걸까?
사실 내가 당황한 건 내가 마신 무알콜 맥주 때문이 아니었다. '늦은 저녁 왜 맥주를 마시려고 했을까?' 분명 난 갈증해소를 위하여 맥주를 들이켰다. 그게 무알콜 맥주라고 하더라도 내 갈증을 해소해주기만 하면 그것만으로 그 맥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런데, 난 왜 허전함을 느끼고 더 나아가 아쉬움까지 느꼈던 걸까?
처음부터 내 몸이 맥주를 찾은 건 갈증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갈증은 내가 맥주를 마시기 위해 찾은 하나의 변명거리였다. 왜 난 맥주 한 캔 마시는 것에도 솔직하지 못했던 것일까? 술은 잘 못하지만 그냥 조금 취하고 싶어서 맥주를 들이켜야겠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갈증이라는 변명거리를 찾은 것일까? 무알콜 맥주에 내 본심을 들켜버린 당혹감에 그날 그 맥주 한 캔을 다 비우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일본에 사시던 큰아버지가 가끔 한국에 오셨다. 오래 일본에 사셔서 말씀하시는 것이나 생각하시는 방식이 여느 다른 어른 분들과는 조금 다르셨다. 한국말에 좀 서투셨던 탓에 말투가 직선적이셔서 그렇게 보이신 것도 있었다. 하루는 나에게 무얼 먹겠느냐고 물어보셨다. 난 괜찮다고 하면서 먹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난 그걸 먹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안 먹겠다고 하면서 왜 그걸 다시 먹고 있느냐? 고 하시며 핀잔을 주셨다. 오래전 들은 그 작은 말 한마디가 아직도 내가 가끔 그런 행동을 하고 있을 때는 기억이 난다.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게 나의 성격이자 내가 생각하는 단점이다. 때론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말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겸손히 거절하면 그 사람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모호한 태도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들도 종종 생긴다.
큰 아이에게 종종 뭐 좀 먹으라고 종용할 때가 있다. 아이는 싫다고 해도 억지로 가져다주는 경우가 있다. 아이는 어떤 때는 못 이긴 척 먹는 경우도 있다. 내 입장에서는 큰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이야기 못한다고 생각도 했지만 사실은 큰 아이는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이야기했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내가 아이도 내 성격 같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사실은 먹고 싶을 수 있는데 당당히 이야기 못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내 성격에 빗대어 아이의 성격도 짐작해버린 것이다. 내 모호한 태도를 아이에게 투영해 버렸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이야기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이 나이에 그런 연습까지 해야 하는 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 같다. 고칠 것은 고치는 게 맞다.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고쳐나가야겠다.
다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주장만 너무 하게 되는 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일단 내가 원하는 걸 말하고 그 걸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잘 조율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나의 의견이 없으면 조율도 할 수 없다.
조그마한 일부터 실천해야겠다. 오늘의 점심메뉴는 내가 먼저 이야기해봐야겠다. “오늘은 ㅇㅇ드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