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봄날은 간다

그래도 다시 봄날은 왔다.

by 티키타카존

봄이란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아직은 겨울이지 싶을 때 봄이고

아직은 봄이지 싶을 때 여름인 봄

너무나 힘들게 더디게 왔다가

너무나 빠르게 허망하게

가버린 봄

우리네 인생에도

봄이란 것이 있었을까?


봄 [나태주]



가을의 문턱에서 왜 갑자기 봄이 생각났을까? 가을은 여름의 치열했던 무더위를 이겨낸 후에 느끼는 안도감을 주는 계절이다. 난 지금 이 가을의 안도감이 불편했던 것일까?

다만 그 봄의 생기가 그리웠던 것 같다. 푸름을 맘껏 뽐내던 가로수들이 색을 바라며 울긋불긋 해지는 것보다는 앙상한 가지에서 하나둘씩 솟아냈던 그 상큼한 새싹이 보고 싶어서이다.

가벼운 반팔 옷차림에 이젠 선선해져서 긴팔을 꺼내 입고 점퍼를 걸치며 두꺼운 외투 입을 날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두꺼운 외투를 벗어버리고 긴팔을 입은 채 화려한 반팔 옷차림을 기다리는 게 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일 년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있듯이 하루도 그 괘를 같이 하는 듯하다. 하루는 아침, 오후, 저녁, 밤 이 있다. 일 년의 시작이 봄이듯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다.

아침 핸드폰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이 들었다. 다시 알람이 울리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이젠 출근시간 벼랑 끝에서 눈을 비비며 세수를 한다. 아침의 상쾌함이 그립고 기대될 듯하기도 할 텐데 그 밤의 어둠은 자꾸 나를 끌어당긴다. 일 년의 시작인 봄은 그리워하면서도 왜 하루의 시작인 아침엔 겨우 눈을 뜨고 회사로 향하는 걸까? 겨울이 시작되는 가을의 안도감에 만족 못하면서 깊은 밤 잠자리에 들기 전 그 저녁의 포근함이 보고 싶어지는 걸까? 어쩌면 난 태생이 봄보다는 가을을, 아침보다는 저녁을 좋아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일찍 힘들게 맞이한 아침도 어느덧 뜨거운 태양이 비추는 낮이 되고 가족의 웃음소리가 퍼지는 식사시간이 기다려지는 저녁이 되고 포근한 이불속의 안락함이 느껴지는 밤이 된다.

그 그리워하던 봄도 어느새 강렬한 태양이 비치는 여름이 되고 이젠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이 되고 눈이 내리는 겨울을 기다린다.


나태주 시인의 '봄'을 다시 꺼내 본다. 나의 인생에도 봄이란 것이 있었을까?

기다림의 간절함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봄이 지난 후 다시 기다림을 가지는 나를 보면 나에게도 분명 봄은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 기다림이 무색할 정도로 그 봄은 너무나도 무심히 지나가 버렸다.

어쩌면 난 정작 그 봄을 만끽하지는 못하고 기다림에만 목말라하는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작 맞이한 봄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 버린 봄을 다시 그리워 만 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지금의 시간을 사랑하지 못하고 지나간 그때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기다림에 중독되어 버린 사람인가 보다. 내 인생에도 봄이란 것이 있었을까?


내 인생에도 봄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인생의 봄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리움보다는 그 봄을 원 없이 즐기고 사랑하리라. 내 인생의 봄날이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사랑하리라.


내 생의 봄날은 간다. 그렇게 내 생의 봄날은 갔다. 그리고, 다시 내 생의 봄날은 올 것이다.


나에게 지금이라는 시간은 없다. 지금이라고 인지하는 순간 지금은 과거가 된다. 내 생의 봄날이라고 느끼는 순간 그 봄날은 가버린다.


이젠 지금 이 순간도 과거의 그때도 다가올 그 시간도 봄날이라고 느끼련다. 내 생의 봄날은 과거고 현재고 미래다. 내 생의 봄날은 지금 이 순간 가지만 또 지금 이 순간 왔고 그리고 오고 있다.


항상 봄날인 지금이 내가 기다려 온 또 기다린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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