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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키타카존 Dec 11. 2022

이젠 산을 내려가야 할까요? 자꾸 걸려 넘어지네요.

나의 일상을 찾아서

 아침 출근길 문득 내 나이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되었다. 20대는 한창 인생의 준비에 바쁜 나이이고 30대는 이제 사회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나이이고 40대는 뭔가를 열심히 해서 이루어야 하는 나이인 것 같다. 그럼 50대는 어찌 보면 뭔가 하나둘씩 정리하고 매듭을 지어야 하는 나이인 것 같다. 그런데, 50을 바로 보는 나이에 들었건 만 아직도 계속 뛰고만 있다. 산을 내려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직도 계속 오르기만 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저보다 연배 있으신 많으신 분들은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을 때야!'라고 한마디 하실 수도 있으실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그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놓고 보면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직 미숙하고 어린것 같은데 이젠 마냥 뛰기만 하면서 그렇게 보내기에는 어려운 나이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걸까? 난 산을 계속 열심히 올라가려 하고 있는데 자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무릎이 깨지고 팔목이 좀 삐끗하고 숨이 차고 추위에 몸이 움츠려 들기는 해도 다행히 아직 걸어 올라갈 수는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꾸 넘어지고 자그마한 상처가 나기 시작하다가 언젠가는 그냥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아 걱정이 든다.


그럼, 이젠 슬슬 산을 내려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할까? 내가 가고 있는 산은 몇 개의 봉우리가 있다. 작은 몇 개의 봉우리를 올라왔으니 이젠 내려가도 내 마음이 편안할까? 아니면 저기 보기만 해도 힘들어 보이는 몇 개의 봉우리를 더 올라가고 나서야 이 산을 내려갈 마음이 들까? 나도 처음 걷는 산행길이라 잘 모르겠다.



 

여기까지 글을 써놓고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 일주일이 정말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평소 때라면 2주 이상 걸리는 프로젝트를 1주도 안 되는 시간에 마무리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실 업무를 하면서 내가 싫어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나름의 내 스케줄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케줄에 나를 끼워 넣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주말 내내 집에서 재택으로 주말 근무를 했다. 관련 서류를 보고 이해하고 또 난 다른 페이퍼를 작성해야 했다. 전체적인 맥락과 그림을 페이퍼에 담아놓아야 세부적인 부분을 출근해서 확인 후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근 한 월요일에는 정말 여유가 없었다.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결국 난 그날 퇴근하지 못했다. 사실 은행 생활하면서 흔하지 않은 하루를 넘기면서 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정말 집에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에 앉아서 일하고 있으려니 머리가 멈추어 버렸다. 결국 12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일을 잘 마무리해야 될 것 같은 걱정만 들었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사리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다 말다를 반복하고 다시 아침이 되었다.



 

그 프로젝트는 우여곡절을 거쳐 마무리가 되었다. 물론 주니어 친구들은 더 고생을 했다. 내가 그 시절에 힘들었던 것처럼 아직도 뭔가 해야 할 일의 첫 단추는 후배 직원들이 채우기 시작한다. 난 함께 단추를 채워나가고 전체적인 틀을 보는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이젠 그 늦은 야근이 체력적으로는 힘이 든다.


 모든 걸 잘 마무리하고 퇴근할 때 뭔가 잘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보다는 약간의 허탈감이 밀려왔다. 사실 이런 날은 함께 모여 술 한잔 기울이며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자리가 필요하기는 한데 밀려오는 피로감과 수술 후 아직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몸 상태여서 나에겐 쉼이 좀 필요했다.


 사실 큰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의 허탈감은 예전 대학교 때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허탈함에 혼자 학교 근처 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그날도 그 허탈감은 혼자 풀었었구나.


 이번엔 그동안 못했던 산책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아무 생각 없이 평소에 걷던 산책길을 걷다 보니 그 허탈감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뭔가 쫓기든 갑자기 달리기를 하다 그 달리기를 멈췄을 때 그 힘든 호흡을 가다듬는 작업이 필요한 것처럼 평소의 리듬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젠 산을 내려가야 하는 답을 찾은 것 같다. 그냥 돌부리에 넘어진다고 해도 또 가파른 꼴딱 고개를 걸어가야 한다 해도 그 시간이 지나면 평소처럼 덤덤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일주일간의 폭풍우가 지나가고 나서 내가 느낀 건 난 이젠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그냥 평소처럼 다시 돌아가야겠다.


 지금 산을 내려간다면 난 다시 공허함과 허탈감에 사로 잡힐지도 모르겠다. 난 산을 내려가 본 적이 없고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는 게 내 인생의 전부였다. 


 신발끈은 다시 묶는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그냥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 또 나의 일상을 이렇게 살아가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안다. 비록 시간 여유 없이 이렇게 급하게 글을 써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또 때론 갑자기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뛰는 날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 뜀박질이 끝나면 다시 걷는 것 처림 난 다시 평소의 날들도 돌아온다. 


나에겐 산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라도 천천히 오르는 것이 평소의 날인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평범한 평소의 날을 사는 것이 가장 힘들고 그 평범함이 가장 감사하다는 걸 다시 느껴본다. 


언젠가 어쩔 수 없이 내려가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난 오늘도 이렇게 또 다른 정상을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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