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적 연출 #만장일치 #민주주의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익숙한 영화가 아닌 ‘무언가 새로운 영화’를 보고 싶을 때를 마주한다. 특히 스스로를 시네필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고전 영화에 집착하기도 한다. 예컨대 《시민 케인》이나 《히치콕 시리즈》를 ‘보고 싶어요’ 리스트에 저장해놨을 수도 있다.
아마 《12인의 성난 사람들》 역시 그런 영화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영화가 명성이 높은 것은 매년 수많은 영화들이 공개되는 가운데 IMDb Top Rated Movies에서 아직도 5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훌륭한 평가를 차치하고서도, 이 오래된 영화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명백하다. 어쨌건 60여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연극’적인 연출이 관객을 집중시키는 법
영화는 무척 단순하다.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소년에 대한 유무죄 판단을 내리기 위해 12명의 배심원이 토론을 하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90여 분의 러닝타임 동안 ‘12명의 배심원들’이 ‘한 공간’에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피의자가 유죄냐 무죄냐 다투는 것이 전부인 영화다.
이렇게만 보면 지루할 것 같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러나 영화의 진짜 묘미는 바로 이 제한적인 인물과 공간에서 비롯된다. 연출·편집 역시 이 ‘제한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이다.
한 테이크가 매우 길어서 배우들이 동선이나 대화가 실제 대화의 느낌을 준다. 롱 테이크 동안 카메라는 방을 이곳저곳 훑는데 이 때문에 발화자가 아니더라도 공간에 있는 12명 모두가 자신의 연기를 하고 있어야 한다. 마치 연극처럼 말이다. 전면이 관객에게 노출돼 있는 연극 무대에서 배우는 카메라 뒤에 숨을 곳이 없다. 이 영화가 그렇다.
왜 감독은 이런 장치를 택했을까? 영화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장 효과적인 연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심원들은 사건에 대해 꼭 만장일치를 이끌어내야 하며, 90여 분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직접 사건 현장을 가보거나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길도 없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하는 대화와 사유뿐이다.
소년은 유죄였을까, 무죄였을까?
영화 초반에는 신박한 연출이 눈에 띈다면, 영화가 진행될수록 나도 모르게 배심원들이 하는 ‘말’에 집중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보는 사람도 배심원들처럼 진짜 소년이 유죄일까, 무죄일까 궁금해지는 것이다.
사실 사건의 겉모습만 보면 소년이 무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첫 투표에서 12명의 배심원들 중 11명은 소년을 유죄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단 한 명, 유죄가 아니라고 판단한 배심원 8(헨리 폰다)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저 소년이 정말로 죽이지 않았다면?”
“목격자가 위증을 한 거라면?”
배심원들은 그의 질문에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없다. 정말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심원 8은 주어진 시간 동안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만약 정말 작더라도 무죄일 가능성이 있다면 유죄라고 판단할 수 없다. 만약 배심원들 모두가 만장일치로 소년을 유죄라고 판단한다면, 소년은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이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 배심원 8은 배심원들의 ‘합리적 의심’을 이끌어낸다. 사건의 처음부터 하나씩 되짚어보며 소녀의 ‘무죄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의 타당한 질문은 배심원들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이 갈등은 배심원들을 결국 ‘성난 사람들’로 만든다.
12명의 ‘성난’ 사람들
영화는 이렇게 촉발된 배심원들 간의 갈등에 집중한다. 그리고 갈등 속에서 관객들은 결국 이 영화가 우리가 사는 사회의 축소판을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배심원들은 군중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누군가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며, 누군가는 별생각 없이 남의 말에 쉽게 휘둘린다. 누군가는 다만 심정적으로 접근할 뿐이고, 누군가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한다.
영화는 이런 군중 속 개개인들이 어떻게 상대방을 설득하고 설득당하는지 그 과정에 오롯이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배심원들은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타인의 믿음을 무너뜨리거나 자신의 믿음을 바꿔 간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셈이다. 어쩌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난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전제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성난 배심원들은 결국 만장일치에 이른다. 사실 실제 사회에서는 만장일치가 도출될 일이 잘 없다. 그러나 영화 속 제한된 조건은 배심원들이 무조건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도록 한다. 그래서 그들이 내린 판결은 무엇이었을까? 실제로 소년은 살인을 저질렀을까? 그들이 내린 판결은 옳았을까?
위의 질문 중 영화가 답을 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은 스스로 해보면 좋을 것 같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보고 싶어요’ 리스트에 올려둔 사람들이라면, 꼭 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