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엘리오-올리버 #브로크백 마운틴
2018년 개봉 당시 ‘뜨거운’ 신작으로 꼽히며 이미 숱하게 리뷰가 쏟아지는 이 영화를, 이제야 봤다. 영화를 보니 왜 많은 사람들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사랑하는지 알게 됐고, 이탈리아가 무척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리뷰는 나를 위한 기록에 가깝다.
그 해 여름, 그곳
모든 것들이 스스로 빛을 내는 계절, 여름. 선명한 하늘과 뙤약볕에 달궈진 돌바닥. 달그락 거리는 자전거 두 대와 정겨운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는 그 한가운데 자리한다. 이 둘은 주인공으로 배경에 흔적을 새기는 인물들이지만 동시에 배경 그 자체 같았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첫 만남부터 그냥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곳에 새겨져 있다. 이들의 시간은 흐르지도, 공간은 퇴색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지금’ 느낄 수 있는 폭발하는 감정이자 이미 오래된 ‘옛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과 내리쬐는 햇볕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특히나 신경 써 담고 싶어 했다고 한다. 모든 영화가 그 영화에 어울리는 배경을 담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특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경우에는 그 중요도가 훨씬 부각됐다. 아름다운 장소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하는 추억이 된다. 영화는 이런 최고의 순간을 2시간 내내 보여 준다. 마치 엘리오의 마음을 담아내듯이. 아, 배경과 어울리는 노래도.
내용은 특별하지 않다. 축약하자면 ‘첫사랑’ 일 것이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영화의 배경과 둘 사이의 관능이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 둘을 최대한 관능적으로 그리는 데 집중했다고 전해진다. 호기심이 왕성한 17세 소년의 성(性)적인 욕망이 피어나는 상황이 자연스럽길 바랐다고 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이어진 ‘셔츠’ 한 장
영화를 보면서 《브로크백 마운틴》이 떠올랐다. 연상의 매개가 된 건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받은 ‘셔츠’다.
엘리오는 올리버와의 관계를 확신하게 된 후, 올리버를 처음 만난 날 그가 입고 있었던 셔츠를 선물 받는다. “For Oliver, From Elio” 그리고 엘리오는 올리버와의 여행이 끝난 날, 그 셔츠를 입고 자신을 끝내 돌아보지 않는 올리버를 배웅한다. 올리버라는 사람을 처음 만난 날과 마지막 순간에 함께 한 셈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에도 셔츠는 등장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떠나는 마지막 날 잭(제이크 질렌할)이 가져갔던 에니스(히스 레저)의 셔츠다. 그리고 잭이 죽고 나서 에니스가 그의 집에서 발견해 다시 가져온다. 이들에게 셔츠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시간을 의미한다. 오롯이 함께 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기 때문에, 들킬까 봐, 헤질까 봐 마음의 가장 깊은 곳, 벽장의 구석에 고이 걸어 두었던 셔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셔츠는 모두 둘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셔츠는 엘리오와 올리버에겐 ‘단절’을, 에니스와 잭에겐 ‘영속’을 의미한다. 《브로크백 마운틴》 마지막 장면에서 에니스는 잭에게 맹세를 읊조리는 반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사실상 이별을 고했기 때문이다.
두 영화에는 동성애에 대한 시대상도 반영됐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1960년대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동성애 혐오가 심각했던 60년대의 잭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80년대 엘리오와 올리버는 헤어짐을 택했다. 80년대의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올리버가 결국 ‘결혼’이란 제도권에 안착함으로써 끝을 맺는다는 면에서 여전한 현실을 그려낸다. 결혼에서 남들과의 동일시, 평범함, 현실, 안주라는 단어를 찾는 셈이다.
이런 것들이 진심을 이기기란 어렵다. 에니스와 잭 역시 결혼을 통해 평범함에 순응하지만 매년 브로크백 마운틴을 찾는다. 결혼 사실을 알리는 수화기 너머 올리버가 엘리오를 “Oliver”라고 부르듯이. 잊히지 않는 영롱한 기억은 마음에 새겨지기에.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그러나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불렀던, 서로에게 나를 선사했던 그 여름은 언제고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픔을 그대로 느끼라”는 아버지의 말처럼, 청포도 같았던 엘리오는 17세 그 해 여름으로부터 천천히 익어갈 것이다. 그리고 끝에는 그의 아버지처럼, 누구보다 성숙한 와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BEHIND:
마침 이탈리아 와인을 마시면서 영화를 보게 됐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지도 몰랐고, 이탈리아 와인을 찾아 마시는 것도 아니지만 마치 이렇게 됐을 거처럼 적당한 날 영화를 보게 됐다. 와인을 잘 모르지만 괜히 영화 속 배경과 알맞은 모양새가 된 것 같았다. 와인을 마실수록 영화에 점점 빠져들었는데, 덕분에 영화 마지막 장면에 차마 위로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던 것 같다. 보통 음식에 술을 페어링 하는데, 분명 영화의 공기와 어울리는 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