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파워 오브 도그》

#A4용지에 손이 베인 듯 #과거와 관계 #서스펜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by 티끌
common.jpg 《파워 오브 도그》 스틸컷


코로나19 확진 후 자가격리 이틀째에 넷플릭스를 켰다.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은 2022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이라는 것과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한단 것이 전부였다. 영화를 보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나에게 《파워 오브 도그》는 강렬한 이끌림으로 선택됐다. 오전에 볼만한 영화는 아니었던 듯 싶은데, 영화 전반에 깔린 긴장감이 오히려 모든 것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밤에 본 것보단 나았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얇은 A4 용지 종이에 손을 베인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베이는 순간 확 움츠러드는 몸과 손끝에 스쳐 지나가는 불쾌한 감각. 그런 묘한 결들이 영화를 전반적으로 지배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긴장, 서스펜스, 숨죽인 갈등은 각 캐릭터 간의 관계에서 두드러진다. 관계망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넓디넓은 흙바닥에 덩그러니 한 채 놓인 집과 목장은 이 긴장 구도에서 빠져나가기 힘들게 만드는 갇혀 있는 배경을 만들고, 여기에 덧붙여 날 것 그대로의 짐승들, 피, 자연 등이 배경 또는 상징이 되면서 극에 긴장감을 한 방울씩 떨어뜨린다. 시종 차분하고 차가운 톤으로 진행되는 영화 적재적소에 들어가는 불안한 음악은 긴장을 돋운다. 우리가 흔히 아는 클래식마저 기이한 환청처럼 들리게 만들 정도로. 길게 늘어뜨려 놨지만, 이 서스펜스의 힘은 러닝타임 내내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의 내용이고 뭐고,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긴장감이 필요한 이유는 영화의 톤을 만드는 필 버뱅크(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변인에게 가하는 위압감과 남성들의 세계에서 버티고 있는 로즈 도슨(커스틴 더스트)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촉발된 관계는 다시 필과 로즈의 아들인 피터(코디 스밋 맥피)로 옮겨붙는다.


한 개인과 개인 간에 만들어진 관계가 또 다른 관계를 불러들이고 그 관계들이 얽히면서 영화는 기이한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이전에는 필과 그의 동생 조지(제시 플리먼스)의 관계가, 피터에게는 엄마인 로즈와의 관계, 자살한 아버지와의 관계가 누적돼 있다. 그리고 이 기저에 자리한 필과 헨리 브롱코의 관계가 사실 이 영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필의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나 동생에 대한 애정결핍, 과거에 대한 집착, 피터에 대한 관심까지. 관계망의 가운데에 있는 필을 만든 것이 헨리 브롱코와의 과거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캐릭터들이 가장 진실된 모습을 보여준 장면은 조지가 로즈와 춤을 추다 눈물을 흘리며 행복해한 모습이고, 필이 브롱코를 떠올리며 ‘BH’가 새겨진 스카프를 취할 때였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특히 조지의 저 장면은 개인적으로 제시 플리먼스가 남우조연상을 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눈물겨운 장면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필은 자신이 엮어 온 밧줄처럼, 자신이 구축해 온 관계, 파워에 따른 결과를 맞이한다. 그 마지막 단계에서 필과 피터의 관계는 무엇을 의미했는지 잘 와 닿지 않는다. 필에겐 피터가 구원이 될 수 있었을까? 과연 피터가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필은 과거를 버리고 현재를 살 수 있었을까? 필은 배신을 당한걸까, 자신의 삶의 행적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었을까. 기대해선 안 될 희망을 품었던 걸까.


사람들에게 존재만으로 위압감을 주던 필의 부재로써 그들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 살고 있던 그가 현재에서 소멸되면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한 엔딩이었다. 인물들의 공기를 짓누르고 있던 위압감이 거세된 셈이다. 그러면 피터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지? 피터는 엄마의 행복을 위한 부산물일까. ‘파워 오브 도그’로부터 지켜낸 건 여성성일까, 현재이자 미래일까. 피터는 행복해진 건가. 그러나 그렇게 얻은 행복에 대해서 영화를 보는 나는 무엇을 도출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필의 부재에서 안도와 동시에 박탈된 기회, 불쾌감이 씹힌다.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느낌이다. 그런데 꼭 이런 영화가 여운이 오래 남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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