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굴레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은 처음 알게 된 감독이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이상 살면서 이 감독의 작품을 우연히 보기도 힘들 것이다. 영화 <파우스트>는 2012년 작으로 알다시피 고전 괴테의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한다. 왜 때문에 왓챠 플레이 '보고싶어요' 리스트에 <파우스트>가 표시돼 있는지, 당시의 내 마음가짐은 얼핏도 상상이 되지 않으나, 최근(2018년)에야 봤다.
영화는 생소한 화면크기에 음침하고 또 그로테스크하다. 어딘가 일그러진 화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만 보다보면 섬짓해서 인상을 찌푸릴 때도 있다. 주인공도 그렇고 등장인물들이 모두 뭔가 좀 역겹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왜 역겨울까. 그들이 지속적으로 배고픔과 욕망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금도가 없는 갈망과 욕구는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안긴다. 영화는 파우스트 박사가 해부학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인간을 해부하며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여기는 사람이다. 이성의 원천, 지식의 심연을 파내듯이 신체 해부에 적극적이다. 무감각하고 무표정하다. 그 어떤 욕구가 해소되지 않은 듯한 무미건조한 태도로 일관한다.
사실 파우스트는 영혼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매일같이 파헤치는 인간의 죽은 육신의 끝자락에서 영혼이라도 발굴해내고 싶은 듯하다. 영혼을 찾아 방황하는 장면은 곧 굶주림이 반복해서 언급되는 파우스트의 상황과 동일하다. 배고파하는 파우스트는 끊임없이 갈구하고 갈망하며 길을 배회한다. 사실 자신이 뭘 찾는지도 모른 채. 감정과 동기, 에너지가 결여된 행위는 맹목적이다.
파우스트의 '욕구'하는 모습은 영화의 중요한 메타포다. 사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파우스트에 채워지지 않은 욕망과 갈구를 표현한다. 극상 최고의 박사이자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파우스트의 이면에는 이제 욕망과 갈구, 허기짐만이 남았다.
파우스트의 욕망을 자극하는 뮐러란 인물의 직업이 전당포 사장인 점도 상징적이다. 전당포는 타인의 물건을 받아 돈으로 돌려주는 곳. 나에게 값진 것을 팔고, 돈으로 받는 행위가 이뤄지는 전당포는 사람들의 욕망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공간이다. 뮐러의 인간인지 괴물인지 악마인지 구분안되는 그 덕지덕지한 육체 역시, 욕망 덩어리를 그대로 나타낸다. 마치 전당포에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점점 더 비계 덩어리가 불어나는 듯한 육신.
마지막으로 마가레테는 파우스트의 욕망에 땔감 같은 존재다. 뮐러가 파우스트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면, 마가레테는 파우스트에게 욕망 그 자체다. 파우스트는 마치 맹목적으로 이성과 지식을 쫓았듯, 욕망을 좇는다. 한번 지펴진 욕망이란 불꽃은 꺼지지 않는 불길과 같다.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무한을 손에 얻고자 하는 것이다. 즉, 불가능하다. 욕망을 욕망하는 파우스트는 궁극에는 인간의 마지막,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양심마저 버린다. 마가레테의 오빠를 죽인 뒤, 아무런 양심조차 버린 채 그녀를 만난다는 데만 몰두하는 파우스트. 영화는 파우스트가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점점 집착하는 과정을 통해 이성을 버리고 욕망, 도덕마저 잊은 본능으로 회귀하는 인간상을 그려낸다.
사실 영화가 기괴하고 생소해서 그렇지, 스토리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 파우스트를 중심으로 뮐러와 마가레테와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각 인물들이 상징하는 바가 보인다. 언제나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파우스트와 욕망을 자극하는 인간의 본심과 같은 뮐러, 욕망의 대상인 마가레테.
파우스트는 끝까지 뮐러에게 마가레테를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 요구한다. 전당포에 자신을 내 놓은 셈이다. 그제서야 뮐러는 만족한다. 파우스트라는 인간을 영혼까지 손에 넣었기 때문일 것. 뮐러는 마지막으로 마가레타를 찾아가는, 지하로 통하는 비밀 통로를 가르쳐 준다. 지하 깊숙이, 파우스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파우스트: 악마가 다닐 법한 길이군. 그런데 이상하게 숨 쉬기가 편해
저 길은 어디로든 통하는 길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곳, 내 마음 속 깊은 욕망이 향하는 곳. 그곳을 지나 나온 파우스트는 종착점이 어딘 지 모를 끝없는 황무지 혹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굴레를 걷는 여정을 살게 됐다. 지옥이라면 지옥이다.
이성과 욕망은 인간의 숙명이다. 어쩌면 현실에서 진리를 찾던 파우스트와 지옥에서 욕망을 찾는 파우스트는 질적으로 동일할지 모르겠다. 괴테의 원작 <파우스트>를 다 읽지 못하여, 영화와의 비교는 할 수가 없다. 악마는 감정과 본능을 등한시한 채 이성적 진리만을 추구한 파우스트를 향해 벌은 내린 걸까? 아니면 도덕마저 버린 채 욕망 앞에 무릎 꿇은 인간에 내리는 벌인가? 아니면 고귀한 한 인간의 타락을 통해 악마의 즐거움을 채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