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오래된 도시의 질감

2023년 10월 8~9일

by 티끌

부산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다. 대도시 특유의 번화함이 있고, 편의성을 갖췄다.


그러면서도 곳곳엔 숨겨지지 않는 오래된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오래도록 해운대를 지키고 있는 웨스틴조선이, 손때가 탄 지하철역들이, 부산역 앞이, 감천문화마을이, 자갈치시장이, 광안리 해수욕장을 올라가는 그 길이. 부산 곳곳이 그렇다. 나는 어쩐지 부산에 가면 이렇게 드러나는 낡음이 정겹고 좋다.


나아가 부산엔 바다 도시 특유의 여유로움과 거친 자유로움이 있다. 여러 도시를 갔지만 부산의 캐릭터와 겹치는 도시는 없다. 그렇기에 유독 부산은 자주 생각나고, 또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에 가면, 돼지국밥도 있고 ‘밀락더마켓’도 있고

부산에 올 때마다 돼지국밥을 먹는다. 이번 여행에서의 첫 끼 역시 돼지국밥이었다. 돼지국밥은 부산의 대표 음식이기도 하고, 워낙 유명한 곳이 많아 하나씩 가보려고 한다. 이번엔 센텀시티에서 돼지국밥 가게를 들렀다. 인근의 유명한 돼지국밥집에 정말 사람이 너무 많더라. 그렇게 찾은 ‘해담소곱창순대국’. 깔끔한 차림새에 맛은 표준화된 맛으로 여행객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돼지국밥이었다. 아 그리고 택시 기사님에게 추천받았는데, 해운대시장 첫 번째 집인 형제전통돼지국밥이 맛있다고 하더라. 다음엔 거기를 가볼 예정!


밥을 먹고 영화 시간을 기다리면서 잠시 광안리를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해운대보다는 광안리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민락수변공원이 지금처럼 금주구역이기 전, 밤바람을 맞으며 회와 어묵 국물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던 찐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현지인들끼리 삼삼오오 밤바다에 술 한 잔 기울이던 곳이었는데, 그 후에 몇 번 더 갔을 땐 이미 관광코스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아예 음주를 금지하고, 앉을 곳 없이 산책로로 바뀐 공간이 됐다. 나에겐 부산의 즐거움 중 하나가 사라져 아쉬울 따름이다.

대신 ‘밀락더마켓’이 세워졌다. 우연히 보게 됐는데, 2층짜리 건물에 카페, 맛집, 펍 등이 있고, 팝업 스토어 같은 것도 종종 열리는 듯하다. 번쩍번쩍해서, 뭐랄까, 서울의 성수동(?), 문래동(?)의 어딘가 느낌이랄까. 생각보다 내부가 넓진 않았고, 광안리에 놀러온 겸 들르면 좋을 공간이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았던 곳이다. 커피나 맥주를 한 잔 사서 마켓 입구에 스탠드 계단에 앉아 다들 자유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층엔 다양한 음식점이 많았는데, 우리는 하이네켄 스토어에서 맥주를 한 잔씩 마셨다.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 전당

부산에 또 하나의 시그니처가 있다면 바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최대 영화제이자 최대 필름마켓.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이기도 했다.


이번엔 1박 2일 일정으로, 부국제에 참여한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부국제의 묘미는 국내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잘 만날 수 없는 다국적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적어 사실상 ‘랜덤 뽑기’의 맛도 즐길 수 있다.

부국제 영화가 상영되는 상영관은 부산 곳곳에 있는데, 아무래도 영화제의 기분을 내려면 영화의 전당이다. 이번엔 센텀시티에 있는 영화의 전당 내 하늘연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최근엔 부국제의 인기도 높아져 영화 티켓팅 자체 난이도가 높아졌다. 내년도 기대작들이 여기서 첫 선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영화 매니아뿐 아니라 팬들도 티켓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번에 나는 이탈리아 영화 ‘아모레의 마지막 밤’을 선택했다. 씨네21, 부국제 레터, 그 외 기사, 부국제 홈페이지 등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나에게 맞는 시간대의 영화를 골랐다.


그렇다면 과연 결과는? 실패였다. 잘 만든 이탈리아산 느와르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에 설득력이 없는 아쉬운 영화로 남았다. 그러나 이 또한 부국제의 묘미가 아닌가!



―해운대시장에서 만난 가자미회와 대선소주 (feat. 자갈치횟집)

영화를 다 보고는 잠시 숙소를 들렀다. 숙소 창문으로 해운대 포장마차촌이 바로 내려다 보였다. 이제 곧 포장마차촌이 철거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민락수변공원과 포장마차촌 모두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그냥 개인적으로 이런 공간들은 유지하며 잘 관리·운영하는 쪽으로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싶다. 서울의 한강공원은 치맥 , 한강라면의 성지로 외국인들의 서울 투어 필수 코스가 됐다. 또 여수는 시 차원에서 낭만포차거리를 관리하면서,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지 않나.

숙소를 나와 해운대시장으로 향했다. 여러 번 부산을 오면서도 마음 붙일 횟집을 찾지 못한 와중에 이번 여행에서는 시장에서 ‘자갈치횟집’을 만났다. 그냥 시장을 돌아다니다 들어간 곳인데, 자연산 참가자미를 메인으로 파는 곳이었다. 그리고 먹어본 가자미회 중 단연 최고였다.


가자미의 식감은 쫄깃했고, 유독 고소한 맛이 강했다. 회를 씹을수록 감칠맛이 입에 남아 정말 맛있게 회 한 접시를 다 비웠다. 가게는 넓진 않았지만 우리만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어 넉넉했다. 오히려 포장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 그리고 부산에 오면 꼭 찾는 ‘대선’ 소주. 개인적으로 시중 소주 중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소주인데, 서울에서는 참 보기 드물다. 부산에서도 모든 가게에서 파는 것 같진 않지만 판다면 대선소주로.

그러고 기분 좋은 취기에 해운대 바다를 옆에 끼고 유유자적하게 미포항 끝자락까지 걸었다. 복국집부터 바다뷰 좋은 횟집이 즐비하고 뒷편으론 달맞이고개도 있어, 해운대 메인거리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숙소 근처 이자카야에서 2차! 유독 맛있는 집을 많이 발견한 부산 여행이었다. 부산인만큼 수제 어묵 요리가 맛난 곳이었다. 서비스로 어묵 안주를 조금 주셨는데, 배불러서 안 시킨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가게에 사람이 꽉 찬 이유를 알 만큼 요리도 생맥주도 맛있었다.



―마지막 날: 시원한 밀면과 ‘씨월드

다음날 아침, 이쯤 되면 시원한 밀면 생각에 입맛이 다셔진다. 해운대 근처에선 ‘초량밀면’, ‘해운대밀면’, ‘춘하추동밀면’ 등이 유명해도 너무 유명하다. 다 가봐서 생긴 지 얼마 안된 듯한 ‘고메밀면’을 갔다. 해운대거리에서도 역 근처에 있다. 맛은 그럭저럭. 다음엔 나만의 밀면집을 찾아야겠다.


밀면을 먹고도 기차 시간이 남았다. 딱히 들어갈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씨월드’를 둘러보기로 했다. 한 번이라도 해운대를 가본 사람이라면 못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위치에 있는데, 매번 그냥 수족관이겠거니 하곤 들어갈 생각은 안했다. 그런데 이번엔 묘한 끌림에 입장권을 끊었다.


정말 얼마 만에 가보는 수족관인지. 모처럼 색다른 경험이었다. 규모는 크진 않았던 것 같지만 알차게 다양한 물고기들이 있었다. 상어도 있었고, 특히 미소 짓는 모습의 가오리가 좋았다. 수족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준 곳으로, 제주도의 아쿠아플라넷도 가보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을 들고 동백섬에서 산책을 했다. 동백섬도 굉장히 오랜만에 오는데 산책길로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근처 숙소에서 묵은 관광객들이 아침 산책길로 많이 찾은 듯했다. 또 2005년 APEC을 위해 지어진 누리마루도 들어갔다가 나왔다. (근데 왜 내부 사진이 없는 것인지.) 벌써 20년의 세월이 지난 건물이지만, 그 당시 얼마나 공들여 지었는지, 중후하고 고급스런 분위기가 여전한 곳이었다. 지금은 동백섬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부산역으로 출발.



―부산 그리고, 부산

어릴 적 나에게 부산은 지루할 정도로 오래 걸리는 명절날 귀성길이었고, 기분 좋은 추억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부산은 마음이 충만해지는 힐링 장소이자, 눈앞에 아른거리는 광안리를 품은 도시다.


무려 작년 10월의 여행기를 해가 넘어간 지금 쓰는데도, 부산이 너무 가고 싶어졌다. 올 여름에도 또 한 번 찾고 싶은, 정겨운 도시 부산 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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