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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계 이야기 TikTalk Jan 18. 2020

펩시와 배트맨과 헐크의 공통점

시계, 애칭을 갖다.

스위스 시계·보석박람회 바젤월드(Baselworld)


  스위스 시계·보석박람회 바젤월드(Baselworld)에 처음 방문했던 해에는 주변 풍경 모두가 생경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브랜드가 수십 곳이 넘었고 시간마다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제품의 기능이나 디자인의 특징까지 갈 것도 없이 일부 브랜드는 브랜드 이름을 발음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대부분 영미권이 아닌 프랑스 등 유럽 기반이기 때문에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나 ‘위블로(Hublot)’ 같은 불어식 표기 브랜드는 브랜드 명을 읽는 법부터 익혀야 했다.
  주요 브랜드 이름을 어느 정도 익혀갈 때 즈음 또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현장에서 만난 한 외국 기자가 대뜸 ‘롤렉스 펩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참 시계 얘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콜라 이야기를 꺼내지?”
  
  못 들은 척 다른 주제를 꺼냈지만 그는 여전히 ‘롤렉스 펩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검색창에 롤렉스 펩시를 쳐보고는 무릎을 쳤다. 펩시는 '롤렉스 GMT' 모델의 별명이었다. 1955년 롤렉스 최초의 GMT 모델(38㎜)이 출시됐을 때 사람들은 베젤 디자인을 주목했다. 위쪽 절반은 파란색이고 나머지 절반은 빨간색으로 칠해진 베젤은 마치 팹시의 로고를 떠올리게 했고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 GMT 모델의 이름은 ‘펩시’가 됐다. 엄밀히 따지자면 펩시의 로고는 빨간색이 위쪽 파란색이 아래쪽으로 반대지만 이미지만 두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닌 듯싶다.


펩시와 롤렉스 GMT마스터2


● 별명 부자 롤렉스(Rolex)
  최근 출시한 아이폰11의 카메라가 전기레인지를 닮았다고 해서 ‘인덕션’이란 별칭이 붙은 것처럼 요즘 제품에도 종종 별명을 붙이긴 하지만, 시계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그렇다고 모든 시계가 별명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몇몇은 별명이 있지만 다수는 별명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시계 역시 생김새가 특이하거나 인기가 많은 브랜드 위주로 별명이 붙는다.
  아무래도 가장 별명이 많은 브랜드는 판매나 인지도에서 우위에 서 있는 롤렉스일 수밖에 없다. 주로 마니아들이 별명을 붙이지만 롤렉스 같은 경우엔 일반 소비자 사이에서도 별명이 오고 갈 만큼 잘 알려져 있다.

배트맨과 루트비어를 닮은 롤렉스 GMT마스터2

주로 시계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앞서 언급한 GMT의 위쪽에 파랑 대신 검은색이 들어간 모델은 비슷한 이유로 ‘코카콜라’ 또는 ‘코크(Coke)’라고 불린다. 브라운과 골드 컬러가 절반씩 섞여 있는 모델의 별명은 ‘루트비어’다. 갈색 빛깔의 미국식 탄산음료 루트비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검은색과 파란색이 위아래로 들어간 GMT 모델은 배트맨 혹은 파워에이드로 불린다. 문득 검은색 뚜껑과 파란색 음료가 담긴 파워에이드와 GMT마스터2 모델이 번갈아 떠오른다. 또 다른 인기 모델인 ‘서브마리너’ 그린 모델은 헐크의 피부색을 닮았다는 이유로 ‘헐크’라는 별명을 얻었고, 파란색 다이얼에 하얀색 인덱스(숫자판)로 꾸며진 서브마리너 모델은 ‘스머프’로 불린다.


배우 폴뉴먼의 이름을 딴 롤렉스 데이토나

   특정 인물의 이름이 시계의 애칭이 된 경우도 있다. 1960년대 생산된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 모델의 별명은 ‘폴 뉴먼 데이토나’다. 미국 유명 영화배우이자 카레이서로 활동했던 폴 뉴먼이 즐겨 차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50년대 출시된 구형 서브마리너의 경우 007 시리즈에 등장해 제임스본드 라는 별명을 얻었다.


  시계는 아니지만 없어서 못 파는 에르메스 버킨백과 켈리백도 특정 인물의 이름을 땄다. 버킨백은 영국 모델 겸 배우 제인 버킨이, 켈리백은 미국 유명 배우이자 후에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가 들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두 제품의 이름은 버킨백과 켈리백이 됐다.


영화 속 버킨백. 섹스앤더시티 화면 캡처


  롤렉스 외에 다른 브랜드도 별명을 가진 제품들이 여럿 있다. 세이코의 한 모델은 케이스 모양이 참치 캔을 닮았다고 해서 ‘튜나’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베젤과 케이스의 형태가 일본식 씨름인 스모 경기장 도효(DOHYOU)와 비슷하다고 해서 ‘스모’라는 애칭이 붙은 모델도 있다. 9시 방향과 3시 방향에 동그란 모양의 스몰 세컨즈와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배터리 잔량 표시창)의 모양이 마치 부엉이 눈을 닮은 IWC 포르투기즈 모델의 별명은 ‘부엉이’다.   


참치 캔 용기와 비슷한 세이코 튜나와 부엉이 눈을 닮은 iwc 포르투기즈


, 나에게도 별명이 있었지
  이름의 일부를 따든 특별한 에피소드를 붙이든 누구나 적어도 하나쯤은 별명이 있다. 정말 맘에 들지 않은 별명이 있는가하면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은 애칭도 있고, 금방 잊혀진 별명이 있는가하면 평생 가는 별명도 있다. 친한 사이에선 여전히 별명을 주고받겠지만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별명 대신 직함과 역할이 붙는다. 여기에는 일정한 거리감과 책임감이 따른다.
 

  가끔 이도저도 계산하지 않고 내키는대로 불렀던 어릴 적  그 별명이 그립다. 나이테와 상관없이 10년이든 100년이든 같은 별명을 갖고 사는 시계가 오늘따라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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