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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완주 Sep 02. 2020

우울하다는 동료에게

함께 일했던 직원이 다음 주부터 병가에 들어간다고 한다. 진단서를 제출했는데 병명은 우울증이라고...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기에 들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우울증을 감기 같은 거라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감기라고 하기엔 아무도 그 사람이 아픈 걸 몰라줘서 잔인한 병이다.


직장에서 유발되는 대개의 우울증이 그렇듯, 그의 병에는 많은 사람과 조직이 기여했다. 물론 그 자신을 포함해서. 그는 성품이 몹시 착하고, 갈등과 소란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민원 창구에 있으면서 갖은 땡깡을 부리는 민원인들의 요구에 말없이 응해왔다. 심지어 신청서를 던지며 "니가 대신 써!" 하는 민원인에게도 조용히 한숨을 쉬며 "여기 사인만 해주세요."라고 뒤치다꺼리를 했다. 악성민원은 대체로 말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민원인을 말과 상식으로 응대하다 생긴다. 그러다 보니 고함과 욕설로 이어질 만한 많은 악성민원이 그의 유순한 성격으로 미리 차단된 것이 부지기수일 거라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입을 모으곤 했다.


그 성격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난 조직개편 때 그의 업무를 통째로 다른 부서에 이관하면서, 업무량이 많으니 0.5명을 더 배치해달라고 요청하자 그 부서 과장님은 "여태 그 많은 일을 너 혼자 말없이 했으니 인원을 안 줘도 네 잘못"이라고 했다 한다. 업무라도 변경해달라는 요구는, "하던 사람이 계속 해."로 끝. 그는 말을 잃었다. 내상을 입었다. 원 스트라이크.


부서가 바뀐 당일, 그의 단골인 악성민원인은 시장실에 쳐들어가서 "그 직원을 제 위치로 돌려놓으라"라고 생떼를 썼다지. 애초부터 부서이동이 불합리하다고 수없이 존치 요청을 했던 직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강행한 그의 부서변경은 그 악성민원인의 행패에 하루 만에 원위치되었다. 기쁜 일이 아니다. 이미 소속이 변경된 그는 손님으로 와서 백업 없이 일해야 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되었다. 그럼 회식은 대체 누구랑 하고, 업무 협의는 누구랑 한담? 그는 웃음을 잃고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투 스트라이크.


과중해진 업무에, 조직의 무책임한 행보에, 부서장의 비수에, 그 악성민원인의 가중된 기고만장에 질려버린 그는 온전히 혼자였다. 혼자라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계속 쌓이는 민원을 쳐내는 와중에 다시 혼자서 인사발령으로 부서가 바뀌고, 제발 업무 좀 바꿔달라는 항변을 재차 무시당하고 나자 이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아니 도와줄 수 없는 옆 직원들마저 그에게는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직원들이 건네는 위로, 인사, 모두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들린단다. 그는 표정을 잃었다. 삼진.


그는 포기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우울증'이라고 적힌 진단서를 들고 나타나 병가를 내겠다고 선언했다는 거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병이 안 오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언니... 우리가 뭐라고 얘기해줘야 돼요? 그냥 옆에라도 앉아 있을까?"

"옆에 앉아서 업무를 도와줄 수도 없잖아. 다른 직원이 그 시스템 권한 있어?"

"이제 없죠. 그래도 혼자라서 제일 힘들다는데요. 언니는 겪어봤으니 알 거 아니야."


글쎄... 그때 어땠더라...


첫 발령지인 동사무소에서 나도 우울증으로 병가를 쓰긴 했다. 위궤양이 오고 심장이 하루 종일 두근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부서를 옮기고 우울증은 사그라들었으나, 그때 충격으로 생긴 부정맥은 나에게, 애먼 부서에, 구급대원에게, 딸과 아들에게 나비효과로 훨훨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 부작용이 꽤 있는 약을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음번에 또 빈맥이 오면 도자절제술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안정도가 매우 높은 시술이라고는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젠장, 심장을 지지는 거라지 뭔가. 이건 산재 아닌가?


참는 성격이 아닌 나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 원래부터 죽어라고 참던 사람은 아마 진짜 죽을 지경일 것이다. 그러니 진단서를 들이밀었겠지. 그럴 땐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일에서 놓아주어야 하고, 다른 환경으로 보내주어야 한다. 쉬면서 괜찮아졌다가도 동일한 환경으로 돌아오게 되면 원점에서 재발하는 것이 우울증이다. 쉬면서도 그는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분노가 누구를 향하는지 자기 자신에게 무수히 되물어야 할 것이고, 분노가 가리키는 것이 그 자신이 아니라는 인증을 어렵게 따내야 할 것이다.


나는 죽기 직전인데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나를 놓고 모두가 소곤거리며 눈치를 보며 회의들을 하고, 나는 그 처분이 뭘지 불안하기도 하면서 모든 게 내 탓인 듯 자책감이 들고... 그런 시간을 견디고 있을 그가 안쓰러울 뿐이다. 동료들도 다들 같은 마음이다. 힘내라는 인사를 하기도, 안 하기도 저어된다고 한숨을 쉬는 그네들의 속내를 모를 리 없다. 같이 한숨을 쉴 뿐이다.


시간이 흘러 약을 먹지 않게 되긴 하지만 흉터는 남는다. 위축된 마음도 쉽사리 펴지지 않는다. 지원부서로 옮겨와 모든 부서로부터 협력을 받아야 하는 이 업무에 몹시 비협조적인 누군가를 만나면, '저 사람이 혹시 내게 일부러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한번 당해보니 자꾸 사람을 의심하게 된다. 심장에 생긴 비정상적인 길[電道]도 꺼림칙하지만, 정신에 생긴 이 비정상적인 길은 더 소름이다.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면 간혹 일부러 떠올리곤 한다. 너무나 힘들었던 그때,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이와, 혼자 민원을 보느라 굶는다고 밥을 사다 챙겨주던 이와, 모르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볼 때마다 고생 많았다고 등을 두들겨주시던 손길을 기억하고 애써 그 느낌을 떨치려고 한다. 그때는 혼자인 줄 알았는데 되돌아보니 마음을 많이 써주었더라는, 아주 오랜 후의 깨달음이 두고두고 위로가 되는 걸 보면 그에게 동료들이 해줄 수 있는 건 결국... 위로와 인사 뿐일 것이다.


진심이 담긴 모든 격려가 힘이 된다. 혼자는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생각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구한다. 우울하다는 동료에게, 부디 힘내라는 말을 아끼지 말아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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