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완주 Jun 29. 2020

Who cares? Well I do.

유일하게 십 년을 넘겨 좋아한 밴드가 있다. 오래전부터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가 마음을 울려서 듣게 되었다. Leave out all the rest 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로는 아주 오랫동안 매일같이 모든 앨범을 들었다. 노래를 들으면 내 마음을 아는 것 같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주는 것 같은 아주 특별한 친구. 그래서 1집부터 7집까지 모든 노래를 한 곡도 빠짐없이 사랑하는 그들. 나 대신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소리도 질러주고 속이 후련하게 욕도 해준 사람. Linkin Park다.


2017년 7월 20일, 메인 보컬 Chester Bennington이 세상을 떠났다. 식당에서 알바를 하던 때였다. 정신없이 점심 장사를 끝내고 밥을 먹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사장 언니가 놀라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좋아하던 가수가 죽었어."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고, 사람을 쉽게 좋아하거나 감성적인 것에 빠지지 않는 내 성격을 아는 언니는 그 말을 듣고 장난하는 줄 알았단다. 농담하지 말고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물었다.


"정말이야. 체스터 베닝턴이 오늘 자살했어."


같이 밥을 먹던 언니의 아들이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밴드를 했던 젊은 친구다.


"진짜요? 린킨파크의 체스터?"


기사를 보여주었다. 그는 몇 달 전 자살한 친구에 뒤이어 여섯 자녀와 아내를 남겨놓고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7월 20일. 한국 시간으로 7월 21일. 일 년 중에 내가 기억하지 말아야 할 날, 아무 날도 아니어야 할 날, 내가 살기 위해 잊었던 날 그는 죽어버렸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아버지가 집을 나갔던 날이야."


그랬다. 아버지는 2001년 7월 21일에 집을 나갔다. 당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엄마는 그 날로 제사를 지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애써 그 날을 잊었다. 여름이면 일부러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고 날짜를 안 보고 그냥 살았다.


사람에게서 나를 이해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단코 모른다. 몰라야 한다. '그 일'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내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인 경험, 낯선 감정들에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도저히 자신이 없고, 죄책감과 원망 사이에서 한없이 그네를 타는 이런 미쳐 죽을 일은 자살 뒤에 남겨진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고로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된다. 내가 외로울수록 세상은 건강한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알아준 것이 유일하게 린킨파크였고, 체스터였다. 나는 그들을 알고난 이후 조금 더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니, 만신창이였을 것이다. 자신이 받고 싶은 위로를 노래했나보다, 라고 나는 늘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의 노래에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사람으로부터는 받지도 못하고,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위로를 나의 랜선 친구 체스터는 아낌없이 주었었다. 


You were there impossibly alone.

Do you feel cold and lost in desperation?

You build up hope but failure's all you've known

Remember all the sadness and frustration

And let it go

(Iridescent)


impossibly alone이래. 맞아, 내가 정말 그래. 얘네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그래, 나는 lost in desperation이야. 아버지가 살아올 거라고 hope를 쌓아 올렸지만 결국 내가 아는 건 failure 뿐이었지. 대체... 누구냐 너...


수없이 많은 노래들이 그랬다. Lost in the Echo 뮤직비디오를 보고는 눈물이 났다. 한 남자가 사람들에게 사진을 나눠준다. 사람들은 그 사진으로 '이별한 사람'을 눈앞에 소환하는데, 정작 나중에 소멸하는 것은 소환된 자가 아니라 소환한 그 자신이다. 어쩌면 묶여있는 것은 망자가 아니라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아버지에게서 놓여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참 동안 그의 노래를 듣지 못했다. 당연했다. 너무 힘이 들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붙잡았는데 붙잡은 것도 같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다 가식처럼 들리고 화가 나고 거짓 위로에 속은 것 같았다. '친구가 필요하면 지 옆에 앉으라더니 지가 가버렸어, 배신자, 차라리 아무 말 말던가.' 그러면서도 몇 번을 울었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했겠지만, 나에게 그는 세상에 유일하게 내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아는 친구였다.


9월에 공부를 시작하고 어느 날인가 린킨파크의 마지막 앨범을 사놓고 듣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이었다. 공부하다 말고 듣다가 또 눈물이 났다. 아무리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어도 영혼을 유린당한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었겠구나... 하는 걸 노래를 듣다가 알았다.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주었는데 나는 그의 상처를 조금도 이해하지 않았던 거였다. 미안하고 슬펐다. 소리 내서 운 것도 아닌데 오리가 나를 보더니 그만 좀 하라고 했다. "엄마 진짜 지겨워."



원망하면서 그리워할 사람이 한 명 더 늘어서 여름이 더 혹독해졌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을 위로하려고 만든 마지막 노래가, 자신을 잃은 팬들이 부르는 추모곡이 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제발 다들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사는 목표가 '죽지 않는 것'이다. 그 이상의 삶, 행복하기를, 평안하기를 꿈꾸는 것은 부질없고 부끄럽다. 제발 버텨주기를 바란다.


Who cares if one more light goes out?

In the sky of a million stars

It flickers flickers

Who cares when someone's time runs out?

If a moment is all we are 

We're quicker quicker

Who cares if one more light goes out?

Well I do

(One more light)


Rest in peace, please.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