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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완주 Sep 04. 2020

횟집 냄새

어제 퇴근하는 길, 그저께 내린 비가 열기를 좀 식힌 모양이었다. 시청을 나서자마자는 싸늘해서 몸이 긴장되다가도 집에 다가올수록 살짝 땀이 나는 것을 보니 아직 여름은 여름이다. 턱스크, 입스크 족들이 담배연기를 내뿜는 밤거리를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곤 한다.


대로를 지나자 구도심의 허름한 상점들이 드문드문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 길을 지나면 이제 집에 거의 다 온 것이다. 와일드하게 인도로 후진하는 낮은 세단이 걸음을 막더니, 가르릉~ 하며 매연을 토해내고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흠칫, 잠깐 더 멈춰있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마스크를 살짝 들춰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매연을 그 안에 머금고 있는 느낌이었다.


마스크가 바이러스나 세균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리라 믿고 고마운 마음이지만, 가끔 밖에서 침투하는 담배냄새나 매연을 더 오래 가둬두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너무 예민하지... 하는 찰나, 갑자기 또 다른 냄새가 마스크 안으로 훅 들어왔다.


그때 나는 어느 횟집 앞을 지나는 중이었고, 때마침 주인 양반이 수족관 물을 갈던 참이었던가보다. 보도블록을 적시고, 뚜껑이 열린 수족관에 반쯤 담긴 그 물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그 시간, 그곳의 방범 CCTV에는 아마도 어떤 아줌마가 한 손에 우산을 접어들고 횟집에서 성큼성큼 멀어져 가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겠지만, 사실 그 아줌마는 그때 바다에 둥둥 떠 있었다. 마스크 안에 들어온 바다 냄새를 놓칠세라 다시 한번 들이마시며 느닷없이 울컥한 마음이었다. 이제는 가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는, 너무 멀어져 버린 바다... 그리운 그 바다의 냄새가 온갖 추억을 한꺼번에 소환한 나머지, 아줌마는 바다의 추억에 집까지 떠밀려 왔더라는 이야기다.


바다를 처음 본 것, 그러니까 지나가는 차창 밖 바다 말고 진짜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처음 본 것은 대학교 1 학년 때 서클 여름 MT였다. 연합서클을 했던 이유는 그 서클이 정말로 '영어회화'를 위한 모임이라고 착각했었고, 딸만 셋-여중-여고-여대를 다닌 후 직장에 들어가면 아마 대형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현실적인 위기감이 들어서였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가 나의 첫 바다였다. 5일이나 되는 여름 MT 내내 바다 냄새를 끼고 살았다.


40명이 넘는 대학생과 휴학생과 졸업생들이 조용한 어촌마을에서 아주 떠들썩한 민박을 하며 낮에는 내내 바다에서 게임을 했다. 오락 담당 스태프와 휴가 나온 군인 선배들은 놀다가 죽을 각오인지, 준비한 게임을 다 해야 숙소에 갈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처음 바다를 접한 내가 가장 겁을 냈던 건 반바지가 물에 젖는 거였다. 수영장에야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지만, 여름 MT용 옷차림은 수영복 위에 반바지와 티셔츠다. 옷이 젖도록 물에 들어가다니... 무릎 위까지 잠겨서 망설이고 있을 때 파도가 울렁! 하자 젠장, 반바지가 뭐야 티셔츠까지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순간의 자유는 뭐랄까... 타락의 해방감? 에라 모르겠다 하며 그 자리에서 쑥 앉아버렸는데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그 느낌이 너무나 신기하고 자유로웠다. 다시 한번 파도가 울렁! 하며 머리끝까지 바다를 뒤집어쓰고 안경을 잃어버릴 뻔하고 짠물 한 사발을 시원하게 입으로 코로 들이켰다. 그게 바다의 첫인사였다.


숙소에 돌아오면 밥을 먹고 저녁 프로그램을 했다. 팀을 나눠서 게임, 촌극, 중창 같은 걸 돌아가며 하고 고참 선배들이 점수를 매겼다. 어떤 날은 디베이트를 하고 마지막 날은 캠프파이어를 했다. 밤에는 술판이었다. 술을 마시다가 선배들은 번갈아가며 기타를 쳤다. 스태프가 제본해간 노래책을 뒤적이며 여기저기서 시작한 노래는 늘 멋지게 화음이 곁들여진 합창이 되었다.


옛 노래를 좋아하던 사람들이었다. 오래된 서클이라 선배들로부터 그 노래를 배운 이들이 또 후배들과 같이 부르며 구전되는 노래들이었다. 구름 들꽃 돌 연인, 연, 화 같은 70년대 가요와 Let it be me 같은 올드팝이 대부분인...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됐는데도 촌스럽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1, 2학년들은 신곡 담당이었다. E선배는 하루에 한 번씩은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불러줘야 했다. 리퀘스트를 거절하지 않는 것이 셀럽의 미덕이다. J선배는 또 사이먼 앤 가펑클의 'Scarborough Fair'를 기가 막히게 연주했다. 그러나 그 MT의 다크호스는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발사하신 내 동기 Y와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를 장착하고 나타나신 S선배였다. 서클의 확고부동한 발라드 취향을 뒤집고 기타반주도 없는, 이단아의 '아자자자자!! 개봉박두우~'는 신선한 문화충격이었다.


그 모든 일들에 바다 냄새가 함께 있었다. 서클 사람이라면 누구하고 놀아도 마냥 재미있던 그 시절, 모래밭에서 지치도록 게임을 하고 새까매져서도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바다에 들어가 일렬로 손을 잡고 파도가 올 때마다 점프하며 바다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파도는 우리를 둥실 밀어 모래밭에 데려다 놓았었다. 파도에 햇빛이 반짝이고, 얼굴마다 바다가 반짝였다. MT에서 돌아온 후에도 며칠간은 콧속에서 바다 냄새가 간질거렸다.


집에 돌아와 마스크를 버리며 아까 그 바다 냄새를 생각했다. 코로나도 불황도 모르던 철없던 바다. 이제 정말 가지 못하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그' 바다다. 걱정거리랄 게 발가락을 무는 모기뿐이었던 쾌활한 청춘들의 바다. 동기랑 둘이서 고참 선배의 담배 심부름을 가도 낄낄 농담하며 한 바퀴 돌고 오던 무해한 밤바다, 모래밭에 적어서 남긴 게 고작 서클 이름이었던 가벼운 바다. 그 바다가 마음속에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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