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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완주 Sep 13. 2020

어쩌면 그 길을 걸었을까-2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빠가 대체 어디에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 마을에 사는 고모네 집 동갑내기 사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아무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갈 수 있는, 아무 때나 눈치 안 보고 밥을 달라고 할 수 있는 세상 유일한 사람이 고모였다.


응, 정연아.

주희야, 우리 아빠 혹시 너네 집에 있냐?

응. 어떻게 알았대?

휴... 지금 간다.

뭔 일 있구나. 알았어.


나는 고모네 집으로 차를 몰았다. 안 가본 사이에 골목 저 안에 있는 집 앞까지 포장이 다 돼있었다. 역시 군의원 끗발은... 집 앞에서 사촌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2층 방 불이 켜지더니 전화를 받았다.


너네 집 앞이야. 문 좀 열어 줘.

뭐야, 근처에 있었어? 나는 한참 걸릴 줄 알았더니. 잠깐만 기다려.


주희는 직접 나와서 현관문을 열었다. 한슬이가 계속 잠을 자고 있어서 나는 남편을 차에 두고 혼자 주희를 따라 마당을 가로질러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거실 소파에 점퍼를 입은 채로 자고 있었다. 주희는 고모를 깨우러 안방으로 갔다.

  

에이씨... 고모도 진짜... 겉옷이라도 좀 벗겨주지...


어두운 거실 소파 옆에 앉아 아빠의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마당에 켜놓은 불빛에 어슴푸레 눈물 마른 자국이 비쳤다. 양말도 신고, 점퍼도 입고, 셔츠는 다 삐져나오고, 아빠의 휴대폰은 배터리가 다 닳은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게 뭐야... 집 한 칸 없는 사람처럼 왜 이렇게 남의 집에 와서 손님 대접도 못 받고 널브러져 있어.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게 이를 꽉 깨물고 아빠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거친 나무토막 같다.


느그 아빠 인자 짠해서 못 보겄어야. 바닥 차가운디 이짝으로 오니라.


뒤에서 고모의 말소리가 들렸다. 힐끗 돌아보니 아빠와 똑같이 생긴 뚱뚱한 고모가 베개에 눌린 뒷머리를 손으로 펴며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그새 머리숱이 많이 줄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슨 인사말이라도 할 타이밍은 이미 놓쳤다. 고모와 함께 아빠가 누운 소파 건너편에 앉았다. 꾸그리고 누운 아빠의 정수리가 허옇게 세어있었다. 주희가 물을 갖다 주었다.


아조 술이 떡이 되아부렀다. 택시 시작허고나서 술이라고는 한 모금도 입에 안 댄 사람이여, 느그 아빠. 느그 키운다고 참말로 지독하게 돈 벌었다. 근디 오늘 아조 작정을 해부렀드만. 국밥집 김씨가 우리집으로 전화를 했드라. 가게 닫을란디 계속 안 가고 운다고 델꼬 가라고. 느그 집에 전화 안 하고 여그로 했드랑께. 주희랑 둘이 가서 차에 태워갖고 겨우 눕혀논 거여. 뭔 말인지 알아듣도 못허게 계속 머라머라 하는디 하도 울어싸서 그냥 냅뒀다. 혼자 울다가 자는 거여 시방.

암 이래.

머, 오메 시방 머라고 했냐?

아까 나한테 전화해서 글드라고. 그 말만 하고 끊더니 전화를 안 받고. 그래서 막 밟아서 온 거여.

먼 암 이래? 얼마나 됐다디?

내가 어떻게 알아... 말도 없이 끊었다니까.

어짜쓰까...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찐대... 손주 하나 생겼다고 맨날 동영상 보는 낙에 산다고 좋아 죽는다 글드만 어짜쓰까...

고모, 내가 아빠 모시고 갈라니까 아빠 택시 좀 고모가 어떻게 해줘. 아 울지 말고.

아이고, 오빠...

그만 하라고, 엄마. 정연이 얘기 들었어? 택시 얘기 들었냐고.

이, 이이. 알았어.

고모, 나도 돈 없어. 택시 팔아서 그 돈으로 아빠 병원비라도 대야 돼. 아빠 암보험도 없어. 그니까 잘 처리해줘.

내가 느그 엄마 봐서는 암것도 싫다마는...

으이그, 엄마!!! 그만 하라니까!

옘병, 내가 뚫린 입으로 말도 못 하냐? 느그 삼촌 저렇게 된 거 다 외숙모랑 정민이 때문이여!

뭐, 사이 안 좋은 게 하루 이틀이야? 정연이가 더 심란해. 야, 내가 알아서 돈 보내 줄테니까 걱정 마. 그나저나 삼촌 어떻게 모시고 갈라 그래? 느그 신랑 들어와서 자고 삼촌 깨시면 가.

아녀, 내일 저 사람도 출근해야지.

신랑도 왔었다냐?

차에 애가 자고 있어서 안 데리고 들어왔지. 고모 내가 지금 경황이 없어. 이해해요. 에?

글먼 언능 가야제. 느그 아빠 깨워야겄다. 오빠, 오빠!! 일어나, 정연이 왔어.

아빠, 우리 한슬이 보러 가자.

응? 머라고?


아빠는 한슬이 보러 가자는 말에 겨우 눈을 떴다. 아마 꿈에도 한슬이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눈물이 들러붙은 것을 손가락으로 비비는데 막대기 같은 손가락에 시커먼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나는 그런 아빠의 손가락을 한 손으로 붙들고 한 손으로 아빠의 눈을 살살 쓸었다. 한슬이의 눈곱을 떼주듯이. 주희가 티슈를 하나 뽑아 주었다. 티슈로 눈썹에 붙은 허연 소금가루들을 떼내고 아빠를 일으켜 앉혔다.


아이고 이 할아버지가 누구래? 나 보여? 내가 누구게.

니가 여기 왜 있다냐? 우리 못난이 아니여?

맞네, 아빠 딸이네.

니가 여기 왜 있냐고.

아빠가 아까 한슬이 보고 싶다고 했잖아. 가세. 밖에 한슬이 와있어. 아참, 화장실 먼저 가실까, 아빠?

     

아빠는 일어나려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주희가 얼른 물을 주자 아빠는 벌컥 마시고 정신을 좀 차리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고모가 혀를 찼다.

     

오빠, 그러게 뭔 영화를 본다고 그라고 쉬도 않고 돈을 벌었소? 참... 꼴 좋소.

삼촌, 정연이가 삼촌 모시고 간대요. 이제 삼촌 한슬이네 가서 산대.

가기는 어디를 가야? 일 해야제.

인자 딸이 모신다고 안 허요. 수술도 하고 쉬어야제. 그놈의 택시는 걍 잊어부러. 내가 확 팔아불랑께.


어차피 택시는 고모 명의였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우리 집의 생계를 위해 고모가 그 지역에 택시회사를 하나 만들고, 기사는 달랑 하나를 두었는데 그게 아빠였다. 지입택시인 거다. 아빠는 그것으로 내 학비를 댔다. 고모가 나를 대학에 보낸 거나 다름없었다.


아빠는 한숨을 쉬고 손사래를 치며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가 나왔다. 그새 옷매무새가 단정해져 있는 걸 보니 술도 어느 정도 깨신 모양이었다. 다시 소파에 앉으시더니 잠바를 벗으셨다.     


나 안 간다. 결혼시켰으믄 그걸로 끝이여. 죽든 말든 내가 알아서 할랑께.

워따메... 아주 신식 양반 나셔 부렀네. 닌장, 그러다가 진짜 죽어. 언능 인나시오, 오빠. 존 말 헐 때 언능 인나.

형님, 언능 가시오. 자식이 자식노릇 헌단디 뭣이 걱정이오? 형님 여그 있어봤자 친구가 있어, 뭣이 있어? 딸네 가서 손주라도 봐줘. 그래야 정연이도 맘 놓고 일을 허든가 말든가 허지.

     

어느새 고모부도 잠이 깨신 모양이었다. 고모부가 맥을 잘 집긴 하신다. 딸이 일해야 하니 손주를 보라는 말에 아빠도 아주 조금 넘어간 눈치다. 아니, 누군가가 그런 명분을 대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빠를 붙들어 일으켜 세우고 손을 잡았다.


고집쟁이 우리 아빠, 모셔가기 참 어렵네. 참 비싸네 비싸.

이 개놈의 시키     


아빠는 못 이기는 척 일어났다. 사실 갈 곳이 어디 있겠나. 혼자 암 선고를 받은 날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사람이다. 아빠가 신발을 신자 나는 휘청대는 마른 팔에 팔짱을 끼고 현관을 나섰다. 남편은 한슬이를 안고 차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애가 깬 모양이었다. 고모도, 고모부도 한슬이를 한 번씩 안아보고, 주희도 뽀뽀를 해대느라 또 시간이 지났다. 아빠와 내가 뒤에 타고 한슬이는 조수석에 앉힌 후 출발하려는데, 고모가 차창을 내리라는 손짓을 했다. 윈도를 내리니 두툼한 봉투 하나를 툭 던져 넣었다.


택시 값 쪼까 미리 준다이.

집에 뭔 현금을 이렇게 갖고 있어? 도둑 들면 어쩔라고?

시끄러, 시골에 뭔 도둑이여. 우리 집 털먼 지가 죽지 내가 죽냐? 언능 가. 도착하먼 전화허고.


그렇게, 아빠는 나에게 왔다. 아빠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수술을 하고, 항암을 하는 동안 나는 직장을 옮겼다. 얼마 되지 않는 휴가가 모자랐던 탓이기도 하고, 퇴직금을 받아야 얼추 병원비를 맞출 수 있었기도 했다. 고모는 택시 값이라며 꽤 큰돈을 보내왔다. 나는 모르는 척 돈을 받았다. 언젠가는 갚을 날이 있겠지.


새로운 직장은 내가 다니던 회사에 교육 용역이나 강사 출강을 하던 업체였다. 급여가 아니라 강의나 콘텐츠 개발에 수당을 받는 곳이었다. 중요한 건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한슬이 때문에 육아로 고민하는 걸 알고 나에게 '한번 생각해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고정적인 급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고사했었다. 이제는 아빠를 돌봐야 하니 돈보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출근할 날짜를 최대한 연기하고 나는 한 달 정도 여유를 갖고 아빠의 병원 생활을 도왔다.


아빠는 걸핏하면 울었다. 열댓 살부터 자기 손으로 돈을 벌지 않고는 먹고살 수가 없었던 인생이었다. 아프다고 말하면 돈벌이가 끊기는 인생이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는 고단한 삶, 그렇게 번 돈이 매번 너무 적어 가족들 눈치를 보았고, 자기 몸을 위해 돈 한 푼 써본 적이라곤 없는 아빠였다. 누워만 있어서 불안하다고 울고, 아프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저으며 울고, 머리가 다 빠지니 할배가 다 됐다고 울고, 안경을 맞춰줬더니 세상이 이렇게 환했냐고 울었다.

     

할아버지 울보야.

맞아, 진짜 울보 할아버지지? 한슬이가 할아버지 닮았나 봐.


아빠가 울 때마다 한슬이는 내게 귓속말을 한다며 다가와서 두 손으로 내 귀를 감싸고 옆에 다 들리게 흉을 봤다. 나는 아이의 뜨뜻한 숨이 섞인 비밀 이야기에 똑같이 한슬이의 귀에 손 항아리를 하고 다 들리게 대답을 해주었다. 귀가 간지럽다며 아이는 목을 움츠리고 킥킥거렸고 나는 우는 아빠를 보며 킥킥거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아빠를 챙겨 우리 집에 모시고 온 것은 전적으로 내 결정이었다. 엄마와 동생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냥 나는 통보만 한 거다. 한 번도 아빠와 이토록 오랜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었는데, 어색하고 낯선 시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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