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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완주 Sep 14. 2020

어쩌면 그 길을 걸었을까-3(끝)

아빠, 누룽지 좀 더 잡술까?

아녀, 이거믄 됐지.

너무 많이 남았는데. 남는 거 싸 달라고 해야겠다. 집에 가서 배고플 때 먹게.


호숫가의 닭백숙집은 식구들끼리 가끔 가는 곳이었다. 고기를 부드럽고 무르게 삶아주는 데다 누룽지가 특히 고소하고 맛이 좋았다. 밥을 먹는 데에 한 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아빠가 천천히 드셔야 해서다. 그래도 아빠가 눈치 보이지 않게 한슬이 핑계를 댈 수 있어서 좋았다. 아빠는 여전히 많이 잡숫지 못했다. 나는 나대로 가만히 앉아있지 않는 아이를 먹이느라 밥을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뱃살은 정말...


사실 아빠를 모시고 온 후 나는 몸무게가 부쩍 늘었다. 원래 요리를 잘 못하는데, 아빠의 식사를 챙기다 보니 늦은 시간에 뭘 만들다가 자꾸 간을 보고 뭘 주섬주섬 먹게 되었다. 여자 강사는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 듣기 싫은 소리지만 현실이 그러하므로 나는 먹는 것이 자꾸 꺼려졌다. 운동을 할 시간이라곤 없으니.


한슬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고, 아빠가 좋아하는 달달한 바닐라라떼를 두 개 샀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빠는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1년 만에 집에 오면서 '커피'라는 걸 처음 사 왔었다. 나는 커피를 한번 타보라는 아빠의 말에 커피가루를 밥숟가락으로 하나 가득 넣어서 커피를 타다 주었다. 미숫가루랑 동급으로 여겼던 것 같다. 아빠는 "기가 맥히네, 기가 맥혀." 하며 헐헐 웃고는 나에게 커피 타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빠는 커피 한 스푼, 크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이었다. 바닐라라떼는 그 취향에 딱 맞았다.


달달한 커피, 그것은 아빠의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돈도 많이 못 벌면서 하루 세 끼를 다 먹기가 민망하다며 아빠는 늘 아침을 거르고 빈속에 커피를 들이부었다. 잠을 깨우는 쓰디쓴 커피와 열량을 조금 보충해주는 크림과 설탕은 새벽을 시작하는 첫 동반자였다. 어쩌면 그것이 아빠의 뱃속에서 암의 양분이 됐는지도 모른다. 위암 수술 후에도 당분이 많이 든 음식을 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아주 가끔씩 아빠와 바닐라라떼를 먹었다.


유모차에 한슬이를 태우고 아빠와 호수공원을 걸었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조깅트랙이 잘 깔려있고, 시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이다. 한슬이는 유모차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유모차에서 내려 걷다가 다시 올라타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속도를 내서 걷지 못했다. 아빠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었다. 커피? 아빠는 원래 뭐든 원샷이다. 60년이 넘게 몸에 밴 습관이 바뀌지는 않는다. 원래 걷던 속도를 늦춰서 천천히 걷는 것도 간신히, 본인이 기력이 딸려서 그리된 것이다. 아마 딴에는 본인의 최대속도로 걷고 있을지도... 사람들은 귀에 이어폰을 꼽고 바쁜 걸음으로 우리 곁을 지나갔다.


아빠가 밤마다 내 이어폰 빼고 라디오 꺼줬었는데. 아빠가 배 탈 때 사다준 그 작은 일제 워크맨 말이에요.

그걸 알았었다냐?

처음엔 몰랐지. 나는 내가 맨날 잠결에 끈 줄 알았어.

허허, 너는 한번 잠들먼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애여.

그니까. 지금은 한슬이가 낑 하면 바로 눈이 번쩍 떠지는데.

부모가 그런 거여. 그때도 잠을 자다가 한 시쯤 되먼 눈이 딱 떠지드라고. 정연이 이것이 저러다가 귀먹으면 어쩌까 싶어서.

설마 귀가 먹었을까...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아빠 알아?

모르제. 내가 뭣을 알겄냐.

그때 이문세라고 가수가 있었어. 밤에 라디오 디제이를 했는데, 그 프로그램이 엄청 인기가 많았거든.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 방송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거야. 아마 밤 늦게늦게 하는 건가 보다 하고 맨날 기다렸지. 그러다가 잠들고...

느그 엄마가 니 밤에 라디오 듣는 것 때문에 맨날 속이 터졌어. 아냐?

알지, 엄마가 나한테도 맨날 소리 지르고 화냈어. 근데 너어어어무 듣고 싶은 거야. 언젠가는 꼭 들어야지 했지.

니 고집을 누가 말리겄냐.

아빠 닮았지 뭐. 아빠가 꺼주기 전에는 맨날 라디오가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켜져 있었어. 그때는 한밤중엔 방송도 안 했는데 지지직 소리를 듣고도 한번도 안 깼었나 봐. 두어 달 그랬던 거 같아.

근디 어느 날 가본께 라디오를 안 듣고 있던디?

단도리해준 게 아빠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어쩌다가 그날 설핏 정신이 들었는지... 그래서 그 후로는 아빠도 잘 주무셨지?

허허, 그랬지. 한 며칠 더 가본께 인자 안 그런갑다 싶드만.


내가 중 3이었던 그때 아빠는 어느 목욕탕에서 구두 닦는 일을 하고 있었다. 4, 5 년을 외항선에서 일했는데, 더 이상은 선원으로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목욕탕 출근이 새벽 다섯 시까지여서 아빠는 늘 네 시쯤 일어났었다. 몇 시간 누워 쉬지도 못하는 아빠를 그깟 라디오 때문에 매일 한밤중에 깨웠던 것이다. 아빠가 조용히 방문을 여는 소리에 우연히 잠이 깼던 그날 내가 행여 깰까 봐 조심스럽게 이어폰을 치우는 아빠의 따뜻한 손이 너무 미안해서, 나는 도로 방문이 닫힌 후에도  잠이 들지 못했었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아빠의 팔에 팔짱을 끼고 걸었다. 한슬이는 저만치 앞에서 뒷짐을 지고 걷고 있었다. 외할아버지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짧은 팔을 뒤로 돌려 걸으면 배가 툭 튀어나와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나는 한슬이를 불러 내쪽으로 몸을 돌린 한슬이의 사진을 휴대폰에 담았다.


아빠, 이따가 마트 들러야 하는데, 그 옆에 노래방이 있어. 우리 노래방 갈까? 생각해보니까 나 아빠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네.

예끼, 다 늙어서 뭔 노래방이여. 느그 신랑이랑 갔다 와. 아빠가 한슬이 봐줄라니까.

김서방은 노래방 싫어해. 고급 취향이잖아. 아빠 나랑 노래방 가. 한슬이 데리고.

다음에 가. 아빠는 아직 걷는 것도 힘들어.

어? 정말? 좀 앉았다 갈까?


나는 얼른 과자봉지를 흔들며 한슬이를 부르고 아빠와 벤치에 앉았다. 아이는 냉큼 와서 유모차에 올라가 앉았다. 손을 물티슈로 닦아주고 과자를 쥐어주었다. 오렌지주스도 한 팩 꺼내서 빨대를 꽂아주었다. 아빠는 벤치에 앉아서 한슬이를 물끄러미 마주 보았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있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수술 후 생긴 후유증, 저혈당이었다. 아까 바닐라라떼도 마셨는데... 티슈를 서너 장 뽑아서 건넸다. 아빠는 이마와 목덜미의 땀을 닦았다. 내가 닦아주는 것을,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극도로 수치스러워했었다. 소변줄을 달고 있는 것을 내게 보이는 것도 싫어했고, 뱃속에 가스가 찰 텐데 방귀조차 참았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아빠의 방귀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빠의 노래만 못 들어본 게 아니다. 나는 굳이 고집을 부리지 않고 아빠가 편하게 아파하고, 편하게 가스를 처리할 수 있게 자주 자리를 비웠다. 이런 일은 어린 시절에 이미 적응이 되었어야 했다. 어른이 된 후 서로의 생리작용에 익숙해지는 것은 부모 자식 사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아빠는 구토가 나도 기어이 본인이 혼자 뒤처리를 다 했다. 나는 방에 뚜껑이 달린 플라스틱 바스켓을 넣어드려야 했다.


아까 사 온 요거트를 하나 뜯어서 아빠에게 내밀었다. 한슬이 간식에 아빠 간식에... 외출을 한번 하려면 준비할 것이 많았다. 요즘은 요령이 생겨서 그냥 늘 다니던 코스로 산책 삼아 다니면서 중간중간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이 보이면 거기서 산다. 굳이 돈을 아끼겠다고 한꺼번에 장을 봐놓아도 막상 나갈 때는 유제품이 상할까 봐 불안하고 해서 말이다.


아빠는 요거트를 다 잡숫고 손으로 입을 가려 트림을 했다. 나는 요거트 통을 비닐봉지에 담아 유모차 밑에 넣어놓았다. 아빠의 등을 쓸어드리고 있는데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회사에 제안서를 보내야 한다. 클라우드에 저장해놓은 파일을 첨부해서 영업부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전에는 작업을 마치자마자 바로 메일을 보냈었는데, 영업부장은 내가 메일을 보내자마자 다시 무슨 일이건 만들어서 나에게 요구했다. 나중에 그 일에 대해서 물어보면 "어? 내가 그걸 자기한테 줬었어?" 했다.


일은 어째, 재미있냐?

재미없지. 돈 버는 일이 뭐 재미있겠어? 돈을 써야 재밌는 거지.

나 땀시 회사도 짤리고, 내가 니 볼 면목이 읎다.

참나, 나 스카우트된 거라니까 왜 그래? 아빠 딸이 일을 너어무 잘해서 그렇잖아.

...

아빠, 이 회사 정말 좋아. 전에 다니던 데도 좋긴 했는데 이렇게 아빠랑 낮에 어디 놀러 다닐 수가 없잖아. 한슬이도 그렇고. 이 일은 정년도 없어. 나 강의 잘해. 진짜야. 하는 거 볼래요?


나는 휴대폰 동영상을 하나 틀었다. 지난번 프로젝트의 파일럿 강의를 하면서 회사에서 찍어놓았던 것이다. 50여 명의 수강생들이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내가 시키는 것을 하고, 내가 하는 말에 웃고, 내게 답을 구하는 시간. 겉보기엔 마치 내가 왕이 된 것만 같지만 사실은 수강생들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평가하는 '슈퍼 갑'이다. 그러나 지금 아빠에게 필요한 건 사실이 아닌 겉모습이다.


이거 봐, 이 아저씨가 이 교육 담당 부장이야. 엄청 까탈스러워.

부장? 높은 사람덜 아니여?

맞아. 여기 다 부장급이야. 임원 승진 앞둔 사람들. 교육부장 빼고.

그런 사람들한테 니가 강의를 헌다고? 멀 갈친다냐?

발표하는 법. 임원이 되면 발표할 일이 많거든. 어버버하면 안 되잖아... 아! 여기 이 사람.

이 사람?

응. 강의 끝나고 내 명함 받아가더니 나중에 코칭해달라고 메일 보냈다. 돈 따로 준다고.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하면 안 돼. 회사 통해서 했지. 돈은 회사로 받고.

니는?

나는 건별 수당이잖아. 아빠랑 똑같애. 일한 만큼 버는 거야.

그것이 사람 환장하는 거인디... 일이 많아도 죽겄고, 일이 없어도 죽겄고...

크... 역시 우리 아빠는 말이 잘 통한다니까.

에이 이 개...


아빠는 우리 집에 온 후로 정겨운 욕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자꾸 흠칫 놀라는 표정을 했고, 한슬이가 "할아버지 개놈시키!"를 한번 한 후 아빠는 자신이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빠가 말하는 '개놈시키'가 '아이고 우리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들리는 것은 세상에 나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 말을 천박하고 저속하다고 생각한다. 노인이 습관을 바꾸는 그 힘든 일을 아빠는 최대한 열심히 하는 중이다.


동영상 속 자식의 일하는 모습을 보며 눈이 가늘어지고 입이 앙다물어지는 아빠의 표정은 예의 그 말을 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아빠에게 자랑스러운 딸, 아빠를 사랑하는 딸이라서 행복했다. 그냥 이대로 있어만 주면 되었다. 병이 들고, 방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고, 내가 출근하고 없는 날은 아무 데에도 갈 수가 없고, 사위와 이루 말할 수 없이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를 하는 중이라고 해도, 그 모든 것들을 견디며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엄마 이거 이거.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유모차에 앉은 아이를 보았다. 빨대에서 오렌지 주스가 흘러 아이의 손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팩을 움켜쥔 모양이었다. 나는 물티슈를 꺼내 아이의 손을 닦아주고, 통통한 다리에 묻은 주스도 닦아주었다. 아이의 살결은 보드랍고 말캉했다. 옹이 하나 없는, 고단함을 모르는 손.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목이 잠겼다. 마디마디에 옹이가 박히고, 긴 흉터가 나 있고, 여러 번 빠졌던 손톱이 나무 등걸처럼 자라던... 고단하고 메마른 손을 가진 노인은 내 곁에 없다. 이 보드라운 손을 쥐어드리고 싶었던 아버지는 없다. 나는 이 길에 홀로 남겨져있다.


팔짱을 끼고 아무 목적지 없이 천천히 함께 걷는 것

말끝마다 아빠 아빠 하는 것

고마웠던 일을 말하는 것

좋아하는 음식을 사드리는 것

이불을 덮어드리는 것

맛있는 커피를 함께 먹는 것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같이 흉보는 것

눈물을 닦아드리는 것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돈을 벌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게 해 드리는 것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의 일부를 내어주는 것.

아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그때 그 일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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