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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완주 Nov 29. 2020

나르시스의 그늘

아주 짧은 소설

Y는 엄마의 최애였다. 세 자매 중 둘째인 Y는 외모에 관한 한, 부모의 좋은 유전자를 몰아서 받았다. 계란형의 얼굴과 동그란 이마, 오뚝하고 귀여운 코, 여리여리한 입술, 길고 늘씬한 팔다리, 비율 좋고 균형 잡힌 몸. 무엇보다 도드라진 것은 Y의 눈이었다. 두툼하게 내려앉은 눈두덩과 빈약한 속눈썹을 가진 첫째 X, 셋째 Z와는 달리 오직 Y만이 속눈썹이 풍성하고 눈두덩이 얄상한 아빠의 눈매를 타고났다. 게다가 가늘고 짙은 쌍꺼풀은 아마도 Y를 만든 이가 아빠 쪽 유전자 안에 내재된 것까지 끌어다가 화룡점정을 이룬 것 같았다. 이들을 창조한 이는 아마도, X를 발로 만들다가 실패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Y를 만들고 나서 당이 살짝 떨어진 상태로 Z를 만들었을 것이다.


"진짜 자매가 맞아? 음... 아주 자세히 보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X나 Z가 Y와 함께 어딜 가거나 누굴 만나면 대개 이런 류의 '의심 → 자기 최면적 수긍 → 말줄임표'의 3단 콤보에 멋쩍은 웃음을 지어야 했다. Y의 외모에 유일한 트집거리가 있다면 까무잡잡한 피부색이었다. 미인은 무조건 피부가 하얗고 투명해야 했던 시절이다. 요즘이야 일부러라도 피부를 태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시로서는 알 길이 없었으니 너무 시대를 앞서간 피부색을 못마땅해했더라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Y는 그런 피부를 물려준 아빠를 원망했다. 아빠가 원래 까무잡잡한 사람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여름 내내 햇빛에 달구어져 새까맣던 피부가 겨울에 채 하얘지기도 전에 다시 여름이 돌아오는 바람에 딸들이 기억하는 아빠가 내내 까맸던 것은 사실이다. 그에 비하여 엄마는 매우 하얀 사람이었으니 Y로서는 아빠를 원인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쌍꺼풀도 아빠로부터 온 것임에 분명했고 까무잡잡한 피부색도 아빠일 가능성이 높았으나 쌍꺼풀이 감사하기보다 피부색이 억울한 Y였다.


엄마는 그런 Y가 한없이 사랑스럽고 안쓰러웠다. '어쩌자고 내 좋은 피부색을 물려주지 못했을까...' 세상이 너무 불공평했다. 거기다 더 분한 것이 있었다. 세 자매의 창조자가 몹시 극단적이었는지, 생김새에 우월한 유전자가 Y에게 몰빵된 것처럼 공부에 관한 좋은 유전자는 X에게 다 가버린 것이다. 좀 골고루 나눠줄 일이지... 그렇다고 탁월한 것은 아님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설마 하니 이 세상 허다한 얼굴 천재, 머리 천재들과 비교할 일이겠는가. 그 집안에서 우월한 편이라는 게지. 어쨌거나 엄마는 사랑스러운 Y에게 머리를 물려주지 못한 것이 내내 한스러웠다.


엄마에게 공평이란 Y가 모든 우월 유전자를 독식하는 것이었다. 하긴, 그랬더라면 집안 사정이 좀 나아졌을까? 요즘으로 치면 김태희 같은, 모든 우월한 걸 다 가진 딸이 그 집안에 있었다면 궁핍한 살림에 보탬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Y의 집은 가난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저보다 가난한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더 속상한지, 이 지독한 가난이 더 속상한지 Y는 가끔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가난도 아빠 탓이었다. 국민학교에서 한글과 사칙연산만 떼고 배움을 마쳐야 했던 아빠가 세상에서 온갖 허름한 일들을 하며 번 돈은 살림살이에 온갖 허름함을 묻혀놓았다. 세 자매 중 유독 Y에게 이런 비루함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마도 그의 미모 탓이었을 것이다.


'나는 달라. 이따위 집에서 구질구질하게 살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고.'


일면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X나 Z는 궁상맞은 입성이 딱히 위화감이 들지 않는 가난한 얼굴과 표정을 가졌으나, Y는 무릎이 튀어나온 깡뚱한 바지나 소맷단이 닳은 옷이 유난히 연민을 자아냈다. 무슨 그런 차별적 발언이 있냐고 항변할 사람들은, 요즘 인터넷 포털 메인에 자주 등장하는 후원금 모금 광고의 여자 아이들이 왜 다 예쁘고 가녀린가에 대해 한번쯤 고찰해보도록 하자(설마, 그 여자아이들이 실제로 생리대를 사지 못하거나 쪽방촌에 사는 그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인간은 그런 존재다. 격차가 클수록 미감(美感)을 느끼는 존재, '저렇게 이쁜 아이가 어쩌면 저런 비극을...' 하는 마음이 후원연결 전화번호를 무심히 누르게 하는.


가장 억울한 건 X와 Z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둘은 무던히 그 가난을 견뎠다. 자신들의 못생긴 얼굴과, 목과 경사 차이가 거의 없는 무턱이 그 가난에 썩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가난과 방임 속에서 생존하는 것은 많은 상흔을 남겼지만 그조차도 이들에겐 달리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편애 따위 할 사람이 아니야. 공평한 사람이다."


차라리 그런 말을 하지나 말지. 엄마는 자신이 공평하고 일관성 있는 양육자라고 선포하고 X의 모든 것을 미워했다. X는 뭔가 억울한데 그걸 항변할 수도 없었다. 엄마는 공평하다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그것이 맞을지도 몰랐다. 생긴 만큼에 합당한 대우라면 말이다. 유난히 엄마를 닮은 X는 훗날, 거울 속에서 엄마를 보고 순식간에 땀이 바짝 나는 공포 반응을 겪곤 했다. 엄마는 딸이 자신을 빼닮은 것조차도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딸이 유난히 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늘 Y를 웃도는 것은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니 머리를 반으로 나눠서 동생을 줬어야 해."


엄마는 늘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공부도 안 하면서 성적만 좋아서 나중에 사기꾼 되기 딱 알맞은' X로서는 백 번 감내하고 군말 없이 고개를 떨굴 일이었다. 정말로 X는 공부를 안 했을까? 정말로 그렇게나 성적이 좋았을까? 하,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그러나 이 집의 공평무사한 최종 판결이 이러했으므로 X는 Y에게 늘 죄책감을 갖고 있었고, Y는 조용히 그 예쁜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X를 노려보곤 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 패배를 되갚아주리라 다짐했다.


기회는 왔다. Y가 4학년이 되는 겨울방학이었다. X는 6학년이 된다. 엄마는 두 딸에게 겨울방학 미션을 주었다. 이른바 '집중력 강화 훈련'이었다. 당시에는 '주산'이라는 아주 몹쓸 사교육이 있었다. 주산을 끝까지 다니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한 번도 안 다닌 사람은 찾기도 어려웠다. 이 집 딸들도 주산을 조금 배웠는데, 엄마의 겨울방학 프로젝트는 고만큼의 실력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아, 아니, 할 수'만' 있는 레벨이었다.


"1부터 100까지 주산으로 덧셈해서 세 번 같은 답이 나오면 가져와. 허튼수작하지 말고 정말 주판으로 해!"


혹시 해보신 분이 있나?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열두 살, 열 살짜리들이 진득하게 앉아서 주판을 튕길 것이라고 엄마는 기대하고 믿었다. 나는 뜨개질을 할 테니 너희는 주판을 튕기거라으 라으 라으.... 당시에는 미션을 통과해도 엄마표 상장이나 스티커 따위 없던 시절이다. 오히려 100씩 끝없이 증가하는 레벨 2, 레벨 3...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참, 그때는 순수했다. 시키면 한다.


X와 Y는 미션을 시작했고, 세 번의 같은 답은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주판을 튕기며 2, 3일 만에 겨우 레벨 1을 클리어했다. 1~100을 덧셈하면 답은 5,050. 딱 떨어지는 숫자다. 1,587 같은 복잡한 숫자가 아니라면 뭔가 규칙이 있다는 뜻이다. 그 답을 보고 뭔가 스멀스멀 조작의 욕구가 들었던 건 비단 Y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X는 엄마의 마지막 말에 매여 있었다. '허튼수작 말고'라는. 그리고 다음날 허튼수작 없이 묵묵히 5,050을 주판에 아로새긴 후 101에서 200을 더하기 시작했다. Y는 작은방으로 주판을 들고 사라졌다. 좀 더 집중해서 하겠다는 거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Y는 의기양양하게 종이를 들고 나타났다. 엄마는 그 답을 보고 혼자 뭔가 계산을 하더니 Y의 답과 자신의 계산이 X에게 보이지 않도록 종이를 잘게 찢었다. 눈은 순수한 기쁨으로 빛났다. 목소리가 떨렸다.


"세상에, 내 새끼! 이걸 어떻게 이렇게 금방 맞췄어?"


X는 어이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 '세 번 주판을 튕겨서 세 번 같은 숫자가 나왔다고? 나는 정답일 것만 같은 숫자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는데...' Y는 레벨 3으로 넘어갔다. X는 이상한 낌새를 채고 자신도 작은방에 가서 하겠다고 했으나, Y의 표독스러운 눈빛에 쫓겨나고 작은방 문은 잠기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Y는 두 시간쯤 후에 또 종이를 흔들며 방문을 열었다. 잘 자고 일어난 얼굴이었다.


'이건 분명 뭔가가 있어.'


X는 작은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증거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Y의 잘 잔 얼굴과 얼핏 보았던 가지런한 숫자 세 개는 분명 범죄의 냄새를 풍겼다. X는 자신도 계산으로 법칙을 알아내서 세 개의 숫자를 나란히 적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계산할 능력이 모자랐는지, 아니면 범죄에 동승할 용기가 모자랐는지 알 수 없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Y의 승승장구는 계속되었고, X가 레벨 3을 할 동안 Y는 레벨 10까지 클리어했다. 매번 작은방에 문을 걸어 잠그고, 갈수록 노골적인 나른함을 풍기며 엄마에게 가지런한 세 개의 숫자를 내미는 Y에게 엄마는 열광했다.


"나는 네가 이럴 줄 알았다! 역시 집중력은 타고났다니까. 언니 머리를 반만 너에게 줄 수 있다면..."


X가 느끼는 패배감의 근원은 비단 동생과의 엄청난 레벨 차이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숙한 무언가가 X를 패배시켰다. 아마도 조금 더 나이가 들었었더라면 자신의 좌절이 '반칙과 묵인의 합작품' 때문이라고 멋지게 설명할 수 있었겠지만, 열두 살짜리로서는 그저 눈물을 뚝뚝 떨굴 뿐이었다. Y는 엄마 옆에 앉아서 그런 X를 바라보며 이글이글 웃었다.


Y에게 엄마가 계산방법을 가르쳐줬을 수도 있다는 의심은, 아마 너무 멀리 간 것이리라. 하지만 열 살의 나이를 경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X로서는 열 살의 자신이 그 규칙을 혼자서 알아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이 소설(소설이다, 소설)의 초반부에 쓰인 문장 몇 개를 바꿔야 한다. Y에게 좋은 머리를 물려주지 못했다는 엄마의 죄책감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 가우스가 울고 갈 천재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열 살의 Y가 타고난 열성 유전자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1부터 100까지를 제외한 101부터 1,000까지의 덧셈을 단 한 번의 틀림없이 세 차례씩이나 해냈다는 신화를 위해서는 아무런 반론도 용인되어서는 안 됐다. X는 온갖 핀잔과 조롱을 들으며 미션을 포기했다.


"지는 것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지. 하여튼 머리 좋은 것들은 저래서 안 돼. 그러다 사기꾼밖에 더 되겠어? 동생이 잘하니까 배 아프냐?"


Y는 그렇게 컸다. 예쁘고, 예뻐서 안쓰럽고, 안쓰러워서 뭐든 주고 싶고, 뭐든 가져야 해서 뭐든 용인되는 아이로. 방황과 일탈조차도 용서되는 미모 덕분에 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가난한 살림이 더욱 주저앉았지만 엄마는 그럴수록 이 아이의 실패를 자책했고, X와 Z가 버겁게 이룬 것들을 뺏어서라도 Y에게 주려고 애를 썼다.


시간은 흘렀다. Y는 미인대회에서 탈락했을 때 심사가 공정치 않다고 화를 냈다. 대학을 끝내 마치지 못하자 졸업 조건이 기혹하다고 분노했다. 자신에게 취업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남녀차별 때문이며,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부모가 무식하고 가난한 탓이라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발작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살아남고 묵묵히 주어진 환경을 감내했던 나머지 딸들은 시간이 되자 집을 떠났다. 혼자 견디는 것은 어차피 같았다. 가장 못생긴 X는 가장 몸부림치며 살아내야 했다. 바깥은 엄마의 열 배쯤 더 가혹했고, 남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생김새의 모자람을 쓸모로 갚으며 세상 한 구석을 고개 숙여 비좁게 차지했다. Y는 그런 X를 비웃었다.


"예쁘다는 게 뭔 줄 알아? 내가 원하는 걸 손가락 하나로 남자들한테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이야."


나르시스의 그늘에서 자란 X는 Y가 손가락으로 얻어내는 모든 것들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채 죽어서 제비꽃이 되었다.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칙칙한 보호색의 얼굴로 땅만 바라보는 난쟁이 꽃, 가슴속에 어둠을 품고 고개를 떨구는 사람들 눈에만 서글프게 들어오는 향기 없는 꽃이 되었다. 그리고 나르시스에게 얄상한 눈을 물려주었던 그 누군가의 말없는 무덤가를 지키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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