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가끔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낯선 질문을 할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밤에 자려고 머리를 말리다가 뜬금없이 둥실 떠오른 질문이었다. 평소의 나 같으면 '얼마나 살 지도 모르는데... 그런 비현실적인 상상은 시간낭비일 뿐이야.' 하고 말았을 텐데, 얼마 전에 병원에서 어깨를 다시 쭉쭉 찢어놓은 후 팔이 떨린다는 핑계로 일찌감치 드러누워서 낭비할 시간이 있어서였는지 자꾸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래서 사람은 바빠야 돼. 시간이 생기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거든.'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옛날엔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몸을 두세 개로 나눠서라도 클리어해버리고 싶은 일들... 사실 지금도 많다. 먼저 당장 일을 때려치워야지, 암만. 직장에 다니느라 돈을 아끼느라 멈췄던 해금을 다시 배우고, 난과 대나무를 치고, 제라늄을 키워야지. 온실을 만들고 좋아하는 아이들 몇 종만 사서 화분이 아닌 땅에 심어 무한정 키워보리. "몇 종만? 장난해? 엄마, 믿을 소리를 해~" 딸의 핀잔이 들리는 듯하다. 그, 그럼 백 개만...ㅠㅠ
근데 이런 꿈같은 상상들이 왜 기쁘지 않지? 아니야... 뭔가 아닌 거 같은데...
그래, 이거야! 마음의 평화가 왔다. 저 깊숙한 곳에 꽁꽁 잠가 놓았던 것을 찾았다. 더 이상 돈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유학을 가겠어. 이십 대에 꺾어진 꿈을 다시 이어 붙일 테다. 시험도 다시 보고 SOP도 다시 쓰겠지. 하지만 이제 누가 방해할 일도 없어. 나이가 많으니 졸업 후에 딱히 뭘 할 수도 없겠지만 나는 교육을 공부할 거야. 그냥 공부하다가 인생이 끝난다고 해도 좋아. 만약 공부를 마칠 수 있다면, 교육이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도구가 되는 곳에 가야지.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칠 거야. 아니, 지킬 거야. 내 아이들은 내 품에서 독립할 때가 다가오니 더없이 좋겠군. 맞아, 그렇게 살다가 죽기로 했었지.
친한 언니에게도 물어보았다. 언니는 돈 걱정 안 해도 되면 뭘 하고 싶어? 언니도 역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라고 운을 띄우더니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하늘이 맑은 하와이에 가서 원 없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남이 사줄 만한 그림 말고,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진정한 실존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언니나 나나 먹고살기 위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언니는 천상 그림쟁이가 맞다. 언니가 그린 그림을 보면 자기 만의 강렬한 컬러감이 묻어나고 뭔가 대중적이지 않은 곤조가 있다.
나의 답에도 내 인생이 있다. 학교는 어린 시절 내게 가장 평온한 곳이었고, 과거의 폭력과 현재의 괴로움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곳, 언젠가 영영 탈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 준 곳이었다. 가족과 이웃과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국영수를 배우는 곳 그 이상이다. 꼭 학교의 모양새가 아니라도 구별된 배움의 공간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자습시간에 숙제를 하던 한 아이가 다른 학생들에게 떠들지 말라고 하면서 했던 말이 있었다. "방해하지 마. 이게 내 마지막 기회라고!"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절실한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 유일한 기회였다. 그 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그곳이, 그 시간이 그리운가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뭘 하고 싶은가'라는 비현실적인 질문에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라는 비현실적인 답을 해버리고 말았는데, 먹고사는 게 가장 큰 문제인 현실에서 머릿속은 우습게도 이미 그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아들처럼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라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생업의 문제가 있든지 없든지 해야 되지 않겠냐고 나 자신을 설득하는 중이다. 지금이 나에게 마지막 유일한 기회일 수도, 혹은 다시 누군가에게 나란 사람이 마지막 유일한 기회가 되어줄 수도 있다.
주변에 농담 삼아 영어를 가르쳐달라는 언니 주사님들도 있으나, 나는 농담처럼 대답하곤 했다. "돈은 안 받아도 되는데 열심히 해야 돼 언니. 나 스파르타야." 내게 교육은 취미나 돈벌이가 아니다. 나는 이 일에 진심이다. 행여 그분이 잠결에라도 듣고 계시다면, 자신을 허물어가며 나를 가르치신 여러 선생님들처럼 나도 다른 절실한 누군가에게 갚을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 못 들은 척 마시고.
그래서 덜컥 질러버렸다. 먹고 살 돈은 여전히 없는지라 유학은 아니다. 아주 많이 다운그레이드 된 현실적 버전이지만 나는 아주 찔끔 발을 들었다. 모든 것은 머리를 말리던 어느 밤, 그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