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완주 Nov 23. 2020

치료와 치유

그동안 좀 어떠셨어요?

통증은 많이 줄었어요.

다행이네요. 누워보실까요?


어깨 통증 때문에 매주 도수치료를 받으러 간다. 도수(徒手, 맨손) 치료'라는 게 내 몸에, 그것도 맨살에 타인이 손을 대는 일인지라, 예민보스인 나는 주사만 맞은 후 도수는 당일에만 받고 다음부턴 안 갔었다. 결국 어깨가 굳어지는 증상이 세 번째로 재발했다. 왼팔을 거의 움직이지 못해서 옷을 입고 벗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다시 병원에 갔을 때 "자꾸 재발하면 정말 수술밖에 답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마음을 바꿔먹었다. 안 그래도 짐이 많은 인생, 어깨 시중까지 들며 살 수는 없다.


제법 큰 병원이라 도수 치료실에 여러 치료사가 있는데, 의사 선생님은 내 진료표에 굳이 그 담당자의 이름까지 적어주며 반드시 주 1회 치료를 받으라고 엄포를 놓았었다. 아마도 이유가 있었겠지.


일단 마음먹기가 어렵지, 시작한 거니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늘 미리 예약을 잡고 시간에 늦지 않게 갔다. 한 번은 길이 몹시 막혀서 시간에 늦겠기에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중간에 내려 숨이 턱에 닿게 뛰어갔다. 20~30 분쯤 여유 있게 출발했는데도 예약시간 정각에 도착했다.


뛰어 오셨어요? 천천히 오시지...

길이 엄청 막히네요. 몰랐어요.

이 시간대에 항상 이래요. 지금 시작해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러시죠.


치료 횟수가 늘어나면서 어깨 통증이 많이 줄었고 움직이는 각도도 커졌다. 돈이 좋긴 좋다, 젠장. 집에서 매일 두세 번씩 하라는 운동도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했다. 시키는 대로 하자고 결심했던 지난번 진료 때 원장님이 어깨에 주사를 놓은 후, 위로 올라가지 않는 팔을 억지로 눌러 사과 쪼개지는 소리가 나도록 근육을 찢어놓았었다. 창피할 새도 없이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아오... 두 번 겪을 일은 아니다.


와... 진짜 '쩍!' 소리가 났다고요.

하하하, 많이 아프셨죠?

선생님은 그러시면 안 돼요.

여기선 근육을 완전히 풀고 나서 운동을 시켜드리는 거라 아프시진 않을 거예요.

앜!!! @.,@ 뭐야, 아픈데요???

그쵸... 그래도 계속 풀어주지 않으면 오십견이 와버려요.


이번에 진료를 볼 때, 의사 선생님이 '90점'이라며 조만간 100점이 될 거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될까 싶지만... 믿어보기로 한다. 이제 두어 번만 가면 도수치료도 얼추 끝날 듯하다. 다음번에 병원에 가서 지난 1 년치 진료에 대한 진단서와 각종 서류를 떼어올 생각이다.




치료가 끝나는 것이 살짝 기대가 된다. 어깨가 좀 괜찮아져서, 혹은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되어서만은 아니다. 매주 치료실을 찾아가는 일이 무탈하게 끝난다는 그 자체가 내게는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크고 작은 성적 폭력을 숱하게 겪어왔던 터라, 커튼으로 시선이 차단된 공간에서 베드에 눕거나 엎드린 상태로 누군가에게 몸을 맡겨야 하는 일은 내게 결코 쉽지 않았다. 낯설고 두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남자다. 나는 여전히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고, 농담 한 마디나 순식간의 터치에도 칼같이 서늘하게 관계를 끊어낸다. 그러나 선생님은 나를 인격적으로 존중해주었다. 정중하게 설명하고 편안하게 치료를 진행하지만 스스로도 매우 조심하는 것이 느껴졌다. 선생님도 많은 일을 겪었겠구나...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지켰다. 시선이 애매할 땐 눈을 피하거나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가장 예의 바른 호칭을 골라서 쓰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농담이나 사적인 질문은 하지 않고, 예약 카드를 반듯하게 잘 챙겨 다음 스케줄을 적어 다녔다. 행여 성적 뉘앙스로 비칠 수 있는 모든 케이스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서 걸러낸 후 일말의 오해 여지도 없는 말과 행동을 선택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만큼 자가 검열을 하는 것은, 이제 내 나이에 무심히 하는 행동들이 젊은 세대에게는 껄끄럽거나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 뭐라 딱 꼬집어 설명할 순 없지만 어느 순간 선생님이 나를 전보다 조금 더 편하게 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말은 이전에 선생님도 나를 대할 때 경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환자가 심적으로 위축되는 것만큼이나 치료사 자신도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하루하루 얼마나 긴장 속에 일하겠나. 참 쉽지 않은 직업일 것이다. 선생님도 환자인 나를 대할 때 경계심을 내려놓기까지는 증거가 필요했으리라 생각한다.


낯선 사람과 신뢰로 끝까지 잘 마무리되는 관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팔을 올리는 것조차 무거웠던 어깨만큼이나 무거웠던 폭력의 무거운 기억을 한 겹 지워내는 듯하다. 무시당하거나 이용당하지 않는, 무시하거나 이용하지 않는. 이번 일은 무거운 어깨의 치료이자, 나를 짓누르는 기억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조만간 맞이하게 될 이 치료의 끝이 내심 기대가 된다. 내 속의 이 장황한 이야기들은 선생님에게 굳이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될 테니 이 곳에만 남긴다. 이제 더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한 마디만 할 것이다.


선생님, 덕분에 한결 가벼워해 졌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집에 올 땐 맥주를 사 와야지! 우와 신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치 담근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