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똑 떨어졌다.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갔다가 사려던 김치는 안 사고 열무를 샀다.
집에 와서 열무를 다듬어 소금에 절여놓고 전화부터 한다.
"엄마, 나 열무 샀는데 김치 양념 어떻게 해야 돼?"
"아 뭣허러 샀냐, 걍 보내주라 글제."
"그냥 한 번 해보게. 집에 고춧가루도 있고, 마늘도 며칠 전에 빻아서 많이 있어."
"쩌번에 엄마가 보내준 거 매실 엑기스 아직 남었다냐? 멸치액젓은? 새우젓은 있냐?"
"매실이랑 까나리액젓 있고, 새우젓은 없어."
"글먼 일단 찹쌀풀을 쪼끔만 쒀놓고 다시 전화히봐."
"쪼끔? 나 다섯 단 샀는데?"
"워매, 이 가시나 손 큰 거 보소!"
"아니, 마트 갔는데 열무를 엄청 싸게 팔더라고."
"근다고 다섯 단을 사야? 느그 딸은 그거 먹지도 안한디?"
"그거야 지 사정이지. 아 어쨌든 김치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배추는 엄청 비싸서 못 사."
"하이고... 시방 아홉 시가 넘었는디 은제 김치 다 담고 잘라고 근다냐... 일단 언능 풀부터 쒀."
"지금 하고 있어. 아까 엄마가 하라고 했을 때 풀은 쑤고 있었어. 그건 알지."
"이, 그것은 식어야 된께 일단 놔둬. 그 사이에, 까나리액젓을..."
...은 개뿔.
조용히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경상도 식인지, 전라도 식인지, 근원을 알 수 없는 '황금' 레시피를 보고
글로 배워서 김치를 담갔다.
이젠 엄마 없는 딸도 김치를 담그는 시대.
김치 맛도 블로그에서 다운로드하는 시대.
나 혼자 익혀 담은 김치가 다용도실에서 혼자 익고 있다.
아버지에게는 잡솨보라고 입에 넣어드릴 수 없는 김치.
딸은 입 한 번 대지 않는 김치.
푹 익어라, 서러워 말고...
찬 밥에 물 말아서
코끝이 시큰해지도록 오래오래 아껴 먹어줄게.
(2016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