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작은 소도시, 대중교통체계가 서울과 수도권 및 대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곳이라서 자가용은 가족의 거의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그런 곳에서 지난 6월 말에 차를 폐차한 후 아직 새 차를 마련하지 못했으니 반강제로 차 없이 3개월을 꽉 채워 지냈다.
"엄마, 폐차하면 차 언제 살 거야?"
"안 살 지도 몰라. 아니, 못 사는 거지."
심드렁한 나의 말에 아들은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 나와는 달리,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차가 없이 살았던 적이 없는 세대다. 상상할 수 없는 변화 속으로 내던져진 아이들은 나를 설득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동안 모은 돈을 다 주겠다며 제발 차를 사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코 묻은 돈 뺏어서 차를 산다고?
"일단 알아는 볼게. 그런데 엄마가 그 빚을 감당할 수 없는 건 사실이야. 우린 지금도 먹고'만' 산다고."
사실인즉 나는 단종 직전이라 할인을 아주 많이 해주는 전기차를 알아보기도 했고, 마침 차량등록 부서에 있었던 관계로 중고차 판매하시는 사장님께 괜찮은 차가 나오면 알려주십사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아직도 결정을 하지 못하고 석 달이 지나버린 것이다. 엊그제 오리는 "이제 적응이 된 것도 같아."라고 말했다. 그토록 도끼눈을 하고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더니만...
적응이 된 것은 어쩌면 코로나 사태 때문이기도 하고, 오리의 수험생활로 인해 자발적 자가격리가 1년 가까이 지속되는 덕분이기도 하다. 아들은 원래 성격 상 밖을 잘 나가지 않는 데다 역시 코로나로 인해서 그나마 좋아하는 축구모임도 하지 않고, 친한 형들도 각자 생활에 바쁘다 보니 역시나 자발적 자가격리 중이다. 그래서 적응이 좀 쉬웠던 걸까.
오리가 '적응'했다고 하는 지난 석 달의 변화된 생활을 정리해보면 이러하다.
1. 도보 반경의 생활
아마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외식, 장보기, 병원 등등 모두 반경이 좁아졌다. 그래도 차가 있을 때는 먼 거리를 달려 냉면 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당연히 차를 가지고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도 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해도, 산책을 하려고 해도, 혹은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때도 자동차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삶이 사라졌다. 외식은 모두 동네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 동네에서 우리가 아는 맛집은 순댓국밥과 감자탕, 아귀찜이 전부다. 다행스럽게도 프랜차이즈 빵집과 아이스크림 가게와 치킨집, 떡볶이집이 근처에 있다. 피자는 원래 배달이었으니 변화가 없다.
나는 파스타가 너무 그립고, 딸은 사랑하던 주꾸미 볶음이 그리울 듯하다. 차가 없어서 먹으러 가기 힘든 메뉴들은 여러 대체재의 형태로 장보기 메뉴에 추가되었다. 다행히 내 입맛에 맞는 크림소스 스파게티 제품을 발견했다. 인터넷에서 냉동 양념 주꾸미도 사보았는데 아이들 입맛에 그럭저럭 괜찮았던 모양이다. 그런 식으로 원거리 외식을 대체하는 중이다. 맛있는 중국집을 찾는 일이 의외로 쉽지 않다.
장보는 일은 모두 배달로 대체되었다. 집 앞 마트에서 살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인터넷으로 장을 봐서 배송을 받는다. 매번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있다. 사실 마트에 간다는 게 뭘 딱히 사지 않아도 뭔가 리프레시되는 면이 있는데, 그런 재미가 사라져서 아쉽다.
병원도, 근처에 썩 마음에 드는 곳이 생겼다.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를 함께 하고 계시는데, 호흡기가 약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80% 이상의 진료가 이비인후과인지라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믿음직하고 친절하시다. 6월쯤에 생겼는데 어찌나 시기적절한지. 이미 오리는 비염 약도 받아오고, 영양제도 한 병 맞으셨다.
2. 걷기
아침에는 택시로 출근하고, 저녁에는 걸어서 퇴근하는 중이다. 택시를 자주 타다 보니 이젠 낯익은 기사님도 생겼다. 이제 가을이 되어서 아침 출근 때도 걸으려고 생각 중이다. 차를 처분한 바로 다음 날은 걷다가 너무 힘들어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덥기도 하거니와 30분 도보조차 버거울 만큼 살은 쪘고, 운동은 턱없이 부족했다. 헥헥거리며 폭발 직전에 겨우 집에 왔다.
걷다 보니, 2년 간 신은 운동화가 내 발에 맞지 않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오른발이 왼발보다 5mm 정도 더 큰 짝발이다. 걸어서 집에 올 때면 운동화의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이 구겨져서 통증이 심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가 걷는다는 게 겨우 집에서 주차장, 주차장에서 사무실, 기껏 해봐야 집 앞의 마트 이 정도였던 거다. 겨우 5분 이내의 걷기라니... 당장 신발을 버리고 예전에 좀 커서 신지 않던 트레킹화를 꺼내 신었다.
요즘은 신발도 편하고, 30분의 걷기가 딱 알맞게 땀이 난다. 마스크 때문에 숨 쉬는 것이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오며 가며 만나는 노마스크족에 여전히 움츠려진다. 아마 차를 사면 일부러 이렇게 걷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조금이나마 숨 쉬기 운동 외의 뭔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도 든다. 그러나 이 정도 운동으로 살은 빠지지 않는다는 슬픈 소식. 오히려 밥맛이 좋아지고 만다는 더 슬픈 소식.
3. 지출
한 달에 최소 두 번은 기름을 꽉 채웠고, 연식이 오래된 차라서 간혹 문제가 생기면 수리비가 꽤 나갔었다. 그런 비용을 아껴서 대중교통비와 택시비로 쓸 생각이었다. 그래도 걸어 다닐 만한 직장이니 아주 큰 지출은 아닐 것이라는 계산으로 말이다. 밖에 나갈 일이 많지 않으니 지금은 꽤 버틸 만하다.
게다가 중고차든 신차든 뭐라도 샀더라면 보험과 자동차세가 한 뭉텅이 나갔을 테고, 매달 할부금이나 이자가 빠져나갔겠지. 그러나 돈이라는 건 씀씀이가 뭐 하나 줄어들면 반드시 그만큼의 새로운 지출이 생기는 법이다. 차에 들어갈 돈을 대신해서 아들의 레슨비가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고 있다. 차를 유지하는 데에 드는 비용과 레슨비의 상관관계는 딸이 정확히 짚어 주었다.("그나마 차가 없으니까 엄마가 돈 대줄 수 있다잖아.") 역시나 보험료만큼의 장비 구입비가 들어간 것도 맞다. 차를 안 사길 잘했다고 엄청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 중이다.
4. 주차
우리 아파트 단지는 주차여건이 나쁘기로 악명이 높다. 밤 10 시가 지나면 복선 주차도 꽉 차서 단지 안에 단 한 군데도 차를 세울 곳이 없음을 몇 바퀴 돌며 확인하고 집 앞 골목길에 주차했다가 새벽에 차를 빼러 나가야 하는 경우도 꽤 있다. 거의 보드게임 '러시아워'급이다. 그런 환경에서 살다 보니 운전 실력, 특히 주차실력이 일취월장 늘 수밖에 없었다. 고, 고마운 일이다.
주차 때문에 낭패를 보는 일이 잦았는데, 차가 없으니 그런 스트레스가 없다는 건 참 좋은 점이다. 비단 집 만이 아니라 차를 몰고 어딜 가면 늘 주차 문제가 먼저 고려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주차 문제보다 열악한 대중교통 시간표를 어떻게 최적화해서 최단 시간을 잡느냐가 새로운 고민거리다. 서울이나 경기도였다면 이런 골머리는 안 썩을 텐데 매우 아쉽긴 하다.
5. 근무
이게 제일 문제다. 매일 출퇴근하는 일이라면 앞에서 말했듯이 걸어가도 되고 급하면 택시를 타도 되는데, 비상 근무지는 그렇게 안될 때가 많다. 차가 없어서 자꾸 다른 직원에게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대면 예배 금지를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러 갈 때, 해외입국 자가격리자의 집에 지급품을 나눠주러 갈 때 등등, 차가 있는 직원에게 얹혀 가거나, 아예 출장자 명단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너무 민망하다. 일부 부서는 부서의 관용차가 있고, 공용 업무에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우리 부서는 차를 갖고 있지 않아서 무조건 자차가 필요하다. 만약 차를 다시 마련하게 된다면 결국 이것 때문이겠구나 생각이 든다.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는데, 자가용 보급률이 높아지면서부터 대형마트가 발달하고 대형 냉장고가 생겼다고 한다. 동네에 가게, 목욕탕, 정육점, 약국, 세탁소, 병원, 자전거 가게, 철물점, 옷 가게 등 모든 것들이 작은 규모로 있던 소위 '동네상권'이 사라지고 별도의 독립적인 상업지구가 발달한 것도 대부분의 가구가 차량을 1대 이상 갖게 되어서라고 했다.
전에 모 백화점 임원들이 교육 때 자주 얘기하던 것 중에, 앞으로는 그런 추세가 점점 더 강해져서 상업지구가 도시 외곽에 빠져나가 타운 형태로 발달하게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도심 상업 지구의 주차난과 노후화, 도시민의 생활 반경 광역화에 따라서 백화점 브랜드들이 아웃렛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거기 있다는 얘기였다. 유통업계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였지만, 처음 듣는 나로선 신기하고 걱정스러웠다.
어떤 사회적인 흐름은 관성의 방향대로 움직인다. 가속화되거나 속도가 늦춰지기는 하지만, 거꾸로 거스르기는 어렵다. 도심 상권들이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으니, 당시의 아웃렛 이야기는 속도가 늦어지는 케이스인 듯하고 파주나 여주, 부여 등지의 아웃렛 활성화는 아직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방향으로 갈 것인데, 그렇게 되면 도심 상권은 죽을 테고, 사람들은 뭘 하려 해도 시외로 나가야 할지 모른다. 그럼 차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지?
동네 가게는 낙후되거나 사라진 지 오래다. 그나마 동네 상권을 지키고 있는 것도 몇몇 프랜차이즈 들이다. 아이들의 행동반경이 아무리 동네로 축소되었다 해도, 자발적 자가격리가 풀어지게 될 수능 이후, 아이들은 절대 동네 안에서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책 한 권을 사려고 해도 인근 도시의 교x문고에 가야 하고, 패피인 아들이 동네 옷가게에서 옷을 사 입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적어도 우리 집 반경 3km 이내엔 남자 옷을 파는 가게는 1도 없다.) 영화를 보려 해도, 친구와 그저 hanging around 하려고 해도 시를 벗어나야 한다.
이미 모든 구조가 '차가 있음'을 전제로 바뀌어 버린 이 작은 도시에서 차가 없이 사는 것은 나 같은 무료한 아줌마들이나 가능한 일일 뿐, 지난 3개월 간 개인적인 불편에 적응했던 건 지금이 매우 비정상적인 멈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냥 조금 불편할 뿐이야."라고 하고 말기에는 '차 없음'은 너무나 민폐스럽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삶이다. 심지어 매연 없이 산책하려면 가장 가까운 산책공원에 가야 하는데, 거길 가려면 매연 가득한 터널을 지나 30분 넘게 걸어가야 한다. 구조의 변화는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이제 자가용은 있고 없음의 선택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중교통이 원활한 지역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최대한 오랫동안 차가 없이 살아볼 예정이다. 이 도시의 모든 택시기사 아저씨 아줌마들과 안면을 트면서 말이다. 직원들에게 민폐스런 이 상황도 코로나가 지나가면 좀 나아지겠지. 아이들은 자신들의 소원대로 빨리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떠나보내야지, 미쿡처럼. 그러면 나는 모든 것이 다 떠난 동네를 걸어 다니며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몰라. 이러다간 나 같은 아줌마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 수도 있어. 그럼 나는 한 시간을 걸어가서 장을 보고, 다시 한 시간을 걸어서 집에 와서 요리를 한 후 밥을 먹고, 30분 걸어서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산 다음 30분 걸어서 산책공원에 가서 한 시간 산책을 하고, 다시 30분 걸어서 집에 와야지. 와 하루 다 갔다. 어, 커피숍에 카드 놓고 왔네... 다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