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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완주 Sep 07. 2020

미워한 게 아니에요.

"왜 대표님은 강연에서 말씀하신 대로 살지 않으세요?"


새파란 새끼 강사(강사 새끼 아님 주의)가 명성이 자자한 대표에게, 그것도 대표의 방에서 얼굴 보며 할 소리는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 인정한다. 대표님은 담배를 비벼 끄고 아오... 하며 뒷목을 잡았다.


"야! 청중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야, 자극이라고 자극. 알아들어?"


못 알아들었다. 아니, 못 받아들였다. 나 스스로 강의할 때마다 살짝살짝 과잉되는 사례들조차 죄책감이 드는데, 말과 행동이 완전히 상반되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나. 대중강연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취약점은 행동이고, 뒷모습이며, 진정성이다. 그 무게를 견디든지, 아니면 아예 무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대표님의 회사에서 강의를 시작하고 처음에는 선배 강사인 '부장님'의 강연을 참관하러 따라갔었다. 보험회사 여직원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이었고 동기부여를 위한 두 시간 특강이었다. 목표는 울리기 또는 웃기기. 워낙 강의가 탁월하신 분이어서 듣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너무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서 신혼 초에 고생한 여자들은 많지만, 달동네의 비좁은 시댁과 좁은 단칸방에서 아팠던 아이의 에피소드들은 이를 꽉 깨물어야 가까스로 눈물을 참을 수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이 직업을 선택해서 엄청난 노력 끝에 드라마틱하게 성공한 삶을 이야기하면서 '기회는 온다, 우리 정말 열심히 살아보자'는데 당할 재간이 어디 있나. 인간은 성장과 극복의 서사에 매료되며, 감동의 크기는 낙차에 비례한다.


강의가 끝나고 점심을 먹으면서 부장님에게 강의가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너무 힘드셨겠어요... 지금은 시부모님도 평안하시죠?"라고 물었다. 


"응, 그거 내 얘기 아니야. 우리 시댁은 멀쩡해."

"네?"

"처음에 대표님이랑 강의 시작할 때 같이 쓴 원고야. 이것저것 짜깁기도 하고, 대표님 얘기도 많고..."

"아... 그럼 아까 남편 얘기하셨던 것도..."

"그것도 우리 신랑 아니지. 선생님도 이제 그 원고 외워야 돼. 100분 강의하려면 A4로 열일곱 장인데, 그걸 깨알이라고 불러. 사무실 가서 깨알 보내줄 테니까 달달 외워서 진짜 내 얘기처럼 할 수 있어야 돼. 선생님 이번에 강의 뭐뭐 하지?"


그러니까... 이 회사 강사들 강의만 듣고 있으면 니 남편이 내 남편이고, 니 딸이 내 딸이고... 이렇게 된다는 건가? 남의 이야기를 이렇게 함부로 갖다 써도 된다는 건가? 저렇게 천진한 얼굴로 "그게 뭐가 문제야?" 하는 표정으로...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회사에 제기되는 컴플레인 중, "분명 다른 강사가 왔는데 지난번에 들은 강의 에피소드와 똑같음. 대체 그 남편은 누구네 남편인가?"가 상당수 있다고 했다.


배신감과 당혹감이 밀려왔다. 나는 깨알을 외우지 않았다. 돈은 벌어야겠기에 최선을 다해서 내 콘텐츠를 만들었다. 다행히 부원장님이 나의 시강을 통과시켜줬고, 그 콘텐츠로 강의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극적인 에피소드가 없으니 강평이 좀 낮게 나와도 관리팀장은, "이번 강의는 선생님이 가세요. 지난번에 대표님이 했으니까 부장님은 내용 같아서 곤란해요."라고 나를 집어넣었다. 회사 입장에서도 돈도 들이지 않은 독자적인 콘텐츠가 평타 이상이면 싫어할 일은 아니었다.


지식과 스킬과 태도(Knowlegde, Skill, Attitude, KSA - 교육의 세 가지 목적)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사례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강사는 이야기를 파는 사람이다. 전에는 진실성이고 뭐고 간에 그냥 웃기거나 울리면 강사료가 치솟는 세상이었겠지만 이제 세상은 변했다. 진정성 있는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과 마케팅이 필요하다. 게다가 남의 이야기를 자기 것처럼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꾸며내서도 안 된다. 들은 얘기를 할 거면 어디서 들었는지 말해줘야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훔쳐서 파는 것은 도둑질이다.


시대가 바뀌어 우리 회사가 기업체에 콘텐츠 개발 용역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개인의 경험보다는 책과 학술자료, 신문 등에서 사례를 발굴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고, 대표님은 대표님대로 방송 출연이 잦아지면서 방송작가가 콘텐츠 개발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대표님과 깨알을 공유했던 선배 강사들은 회사를 떠났다. 아마 어디선가 그 깨알을 그대로 쓸 것이라는 심증이 있으셨는지, 대표님은 강사가 독립할 때마다 "걔가 무슨 콘텐츠가 있어?!" 하며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맞다. 콘텐츠 개발은 말만 잘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님은 콘텐츠에도 재능이 있는 분이었다. 재치 있고 매력 있고 끼도 많고 카리스마 쩌는 여장부였다. 일 자체도 잘 맞았다. 콘텐츠 회의를 할 때마다 대표님을 비롯한 세 명이 서너 시간씩 연신 피워대는 담배연기에 몽롱해지고 죽을 맛이었지만, 나는 집에 돌아와 콧속까지 샤워를 할지언정 참았다. 대표님과의 회의는 항상 불꽃이 튀고 배우는 것이 많았다. 생각이 비슷했던 건 아니다. 가끔은 내가 뭔가 아이디어를 내면 그는 "얘, 넌 너무 공익적이야. 비즈니스 마인드는 꽝이야." 하며 껄껄 웃었다.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자기 생각을 말해줬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어. 일단 강의 대상을 줄여. 그러고 나서..." 그의 마인드는 비즈니스적인 동시에 공익적이었다. 달라서 자극이 되었다. 게다가 강의로는 그를 깔 수가 없다.


그러나 대표님의 삶은 뭐랄까... 풍족해 보이지만 부럽지 않고, 화려해 보이지만 연민이 느껴지는... 그런 대상이었다. 자신의 말과 다른 위태로운 삶이 불안하고 화가 났다. 대표님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 과감해지고 너무 가까이에 있는 나는 그 위태로움에 현기증이 났다. 지치고 괴로웠다. 나 같은 사람은 ENTJ들 옆에 있으면 고소공포증으로 훅 간다. 대표님은 시키지도, 원하지도 않았겠지만 나는 기도할 때마다 자꾸만 대표님을 들먹였다. 나처럼 직원인 신분과, 여러 사람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고용주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설령 그가 위험한 선택을 한다고 해도 나는 입을 다물었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대표님에게 '왜 말씀하신 대로 살지 않느냐'고 대들었던 건 사실, 내가 그분을 사랑했었던 만큼 미움도 컸기 때문이다. 면전에서 그 말을 한 이상 "이쯤 되면 한번 해보자는" 거였고, "청중은 진실이 아니라 자극을 원한다"는 대표님의 대답은, 나처럼 간이 작은 사람은 절대... 합의를 이룰 수 없는 지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프리랜서로 풀어달라고 했다. 절반의 독립이었다. 큰 프로젝트가 있을 때만 출근을 하고 일반 강의는 의뢰가 오면 혼자 콘텐츠를 만들고 출장을 갔다. 다른 루트를 통해서도 강의 의뢰를 받았다.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게 들어오는 강의가 모두 대표님의 인지도 덕분임을 왜 모르겠는가. 가까이에서 보며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안 봐도 되는 것이 후련하기도 했지만 그립고 화가 났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삶이었다.


"넌, 재주는 아까운데 성격이 너무 까칠하고 지랄이야."

"저 아껴주신 거 알아요. 감사하게 생각해요."


지나고 보니 참 화려한 그늘 밑에 있었다. 몇 년 전에 근처 육교에 대표님의 강연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딸이 나에게, "엄마, 가서 인사하고 싶어?" 하고 물었다. 얼마 전에도 만약에 대표님이 다시 부르시면 가고 싶냐고 물었다. 버는 돈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게 나을 수 있다. 강의 2~3일 하면 지금 월급만큼 벌 수 있다. 게다가 그 시절만큼 일 자체 만으로도 인생이 짜릿했던 시절은 많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야. 위험의 대가야."


별 거 아니지만 나의 소신을 지키고 위험과 유혹에 눈 감는, 가난하고 무료한 삶을 택한 거다. 성격 까칠하고 지랄 맞은 거 맞지만 결정적으로 간이 작다. 나는 진실을 원한다. 청중은, 대중은 자극을 원한다는 대표님의 말은 사실이다. 지금의 시대는 '얼마나 진정성을 연기할 수 있느냐'가 능력이다. 무대에서 강연하는 이의 말에 감동했는가? 그를 초빙하고 싶은가? 아마 시간당 3백, 4백만 원 부를 것이다. 지방이라면 교통비 별도다. 감동의 가격이다. 앞으로도 그는 화려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것이다. 


얼마 전, 몇 년째 핸드폰에 갖고만 있던 그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나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미워한다. 그리고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그는 그런 사람, 쉽게 잊어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가 누군가에게라도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기를, 위로받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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