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은 기회에 어느 대학 1학년을 대상으로 한 학기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크게는, 그 과 교수와 친분이 있던 대표님 한 분이 강의를 내게 맡겨주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너무나 굉장히 무진장 바빴다. 각 과목마다 교수들이 엄청난 분량의 과제를 내주었고, 그 와중에 이 욕심 많은 아이들은 동아리를 두세 개씩 가입하고 연애까지 해야 했다. 그리하여 아침에 강의실에 가보면 늘 반쯤 넋이 나간, 눈빛만 형형한 얼굴들을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거나 딴짓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내 담당 과목은 일종의 '진로탐색'이었고 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자극을 주고 싶었다. 여러 활동과 과제들을 주었고, 피드백을 했었다. 서먹한 시간이 가실 즈음에 나는 그들을 평가하고 헤어져야 했다. 한 서른 명쯤 됐었나? 모든 학생들이 다 특별했기에 상대평가 비율에 따라 점수를 차등으로 주어야 하는 현실은 가혹했다. 몇 번을 심호흡을 하고 덜덜 떨면서 성적평가 결과를 담당 교수에게 보냈다.
그리고...
학생들이 성적을 확인했을 즈음에 내가 D를 주었던, 아니 주어야 했던 한 학생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자신이 받은 성적에 대해서 내게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한 학기 동안 '다른 것'에 너무 정신이 팔려 살았다며 후회스럽다고 했다. 나는 그 학생들과 다시 만날 사람은 아니었고 이미 성적이 다 나간 후였으니, 이의신청이나 항의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 답장을 해야 했다. 사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미안하다고? 아니면 괜찮다고? 아니면 아쉽다고? 뭐래...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어느 책의 글귀가 BGM을 깔고 캠페인처럼 흘러나왔다. '너무 힘들면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한 교수의 청춘론이었다. 당시 청년들의 '좌절' 트렌드에 맞춰 본인이 책임지지도 못할,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파는...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흥, 그럼 잠시 쉬어가는 학생에게 잘 쉬라고 학점 잘 주셨을까? 이 가파른 경쟁의 절벽에 매달린 학생들이 팔에 경련이 난다고 해서, 평가를 하는 사람이 '잠시 줄을 놓아도 된다'라고 말하는 게 정말 무슨 무책임한 말인가?
그제야 그 학생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답장을 썼다.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열아홉 살 봄과 여름을 보낸 너에게
나의 과목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았다고 너에게 아무런 섭섭함도, 원망도 없어. 사람에게는 매우 제한된 시간이 주어지지.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할 수는 없지 않겠니? 나는 너의 선택을 믿어. 이 바쁘고 새로웠던 16 주의 시간 동안 너는 너의 삶을 위해 가장 멋진 선택을 했을 것이고, 설령 그 선택이 내 시간이 아니었다 해도 어디선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너는 가장 빛나는 하루하루를 살았을 거야. 그러니 너무 미련을 갖지 않기 바라. 후회하지 않아도 돼. 너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해.
완전히 같은 워딩은 아니지만, 내가 했던 말은 이것이었다.
그 학생에게서 곧 다시 답장이 왔다. 첫 메일보다 한결 편안하고 안정된 글이었다. 지난 학기에 자신이 했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다며, 진심을 다했던 시간이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 그 선택은 연애였다. 진심으로 그 친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학생에 관한 한, 지난 열여섯 번의 만남보다 그렇게 주고받은 세 통의 메일이 더 중요했다.
대개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한 학생들이 모인 곳이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살아왔을 텐데, 아마 그 친구에게 그 D는 인생의 첫 실패이자 감당키 어려운 고비였을 것이다. 나로선 가장 공정하게 점수를 매겼으나, 떨고 있을 어린 청춘에게 '공정한 평가'를 했다는 사실 만으로 내 책임을 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메일은 어쩌면 내게 점수를 매길 중요한 시험이었는지 모른다.
과연... 나의 대답은 몇 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