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알쓸잡-친구 차를 내 이름으로?

공무원이 알려주는 쓸모 있을 잡지식

by 장완주

"아, 이 아가씨 말귀 못 알아먹네. 차가 나한테 없다니까 이 양반아! 근데 왜 과태료를 때리냐고오!!"


전화로 고함이 뚫고 나온다. 선생님, 저는 아가씨도, 양반이 아니고요. 차가 없어도 분명 선생님 차가 맞고요. 저는 과태료를 '때린' 적이 없습니다. 부과했을 뿐이예요... 라는 마음의 소리!!!!!!! 한 번은 똑같은 건으로 설명을 하다가 민원인이 도저히 이해가 안됐는지 이렇게 말했다.


"와~ 국가가 국민한테 삥을 뜯네. 기가 차네."


이쯤 되면 나도 가만 있지는 않는다. "선생님, 삥을 뜯다니요. 선생님 삥 뜯어서 시청 살림이 나아집니까? 엄연히 법에 근거한 일인데 삥을 뜯다니요." 여러 차례 반복해서 그가 한 말을 그의 귀에 되돌려주었다. 그는 다시 얌전하게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어보았고 나도 다시 얌전하게 절차를 안내하고 '솔♪' 톤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직원들이 여기저기서 같이 허허실실 웃어준다. 같이 들었으니까. 스트레스 해소는 그걸로 충분하다. 재미있는 추억이다.




명의도용은 많은 재산관계에서 일어나지만, 일단 내가 아는 선에서 차량 문제만 얘기하도록 한다. 차를 운행하는 사람이, 해당 차량을 자기 명의로 사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법인은 원래 그러하니 제외하고, 개인이 타인 명의로 차를 사는 경우도 많다. 신용불량이 된 친구가 차를 사야 하니 도와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절세를 위해서 그러는 경우들도 있다. 부부 간에는 뭐... 얼마든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하면, 제발 명의를 빌려주지도 말고, 잘 지키자.


아, 궁서체가 없네. 이건 정말 궁서체로 써야 한다. 차량등록부서에서 일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건 씩 같은 얘기를 듣게 된다. "차를 다른 사람이 몰고 있다고! 연락도 안 돼요."


명의가 악용되는 몇 가지 사례


1. 명의를 빌려준다.

타인이 재산을 취득하는 데에 계약서 '매수인' 란에 내 이름을 쓰겠다고 하는 걸 허락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어르신들만 그런 줄 알았다. 아무래도 '법 나고 사람 났냐? 사람 나고 법 난' 세대일테니. 그러나 실상은 전 세대에 걸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몇 달 전에는 친구의 제네시스 차량 구입에 명의를 빌려준 스물세 살(!) 젊은 청년이 3천만 원을 대신 변제한 후 직권말소를 하고 갔다. 역시 그의 친구는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온 그 청년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어머니는 담담하셨다. "얘도 많은 걸 배웠겠지요." 그들이 그 상황을 이렇게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을까.


슬프지만 세상엔 나쁜 사람이 많다. 사위가 장인에게 명의를 빌려서 억대의 손해를 입힌 경우도 보았고(차가 둘 다 고급 외제차였다), 단 하루를 공사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술자리에서 딱한 사정을 얘기한 사람에게 명의를 빌려주신 분도 계셨다. 그 명의자의 상속인이 전화를 주셨는데 망인의 죽음에 그 차가 관련되었다고 했다.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한 일이 결국 사람을 극단의 선택으로 몰아간 것이다.


2. 명의를 도난당한다.

도대체 누가 명의를 훔쳐가나? 대체로 집안의 누군가가 인감을 대리발급받아서 타인에게 넘긴다고 의심할 뿐,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다. 이 경우 당사자는 명의도용 사실을 인지할 수조차 없다. 그럼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만약 집에 '이상한 세금 고지서' 혹은 '이상한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온다면 그냥 넘기지 말고 무조건 고지서 안에 적힌 부과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청이 착오한 거겠지' 하고 찢어버린다. 심지어 10년 넘게 환경개선부담금(옛 경유차의 공해유발에 대한 일종의 세금) 고지서를 찢어버린 분도 있다. 그동안 그 차는 전국에서 백 건 가까이 압류가 걸려 있었다. 처음에 확인했더라면 그 차가 본인 명의의 대포차로 운행되는 것을 10년 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3. 대리인이 속인다.

채권자나 중고차 매매상에 차를 넘겼는데, 가져간 사람이 장부의 소유자를 변경(명의이전)하지 않은 채 장물로 팔아버리는 경우가 있고, 폐차를 하러 대행사에 맡겼는데 대행사가 폐차 다 했다고 속이고, 장부를 살려둔 채 차를 누군가에게 대포차로 팔거나, 해체해서 부품으로 써버린다. 장부가 살아있으면 명의자는 계속 세금을 내야 한다. 업무하다보니 이런 일이 IMF때 많이 있었다. 사업하다가 어려워져서 경황이 없는 사람들에게 '차를 폐차해주겠다'고 속이던 사기꾼들이 많았다. 심지어 대출이 아직 남은 차량도 '해결해주겠다'고 했다는데,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어쨌든 "폐차된 줄 알았는데 이 차가 왜 아직도 살아있냐"고 항의하는 민원인들 꽤 많다.


폐차를 맡긴다면 무조건 관허업체(관허번호가 있다)에 의뢰하고, 처리 후에 '폐차증명서'를 보내달라고 요구해서 직접 확인해야 한다. 돈을 조금 더 쳐준다는 곳에 맡기고 잊어버리고 있으면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4. 차를 잃어버린다.

사실 담당자들은 '잃어버렸다'는 말을 잘 믿지 않지만, 도난당한 사례도 만만치 않게 많다. 이런 차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차를 가져간 나쁜 인간들이 어떤 처리를 하는지는 굳이 쓰지 않겠다. 범죄의 방법을 교육하는 건 공무원이 할 일이 아니니까. 가만히 계시지 말고 무조건 시군구청에 문의하셔야 한다.


보통은 경찰서에 도난신고하고 끝난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도난당한 차량을 말소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경찰서에 도난신고 후 다시 시군구청에 가셔야 한다. 대부분 이 절차를 알지 못해서 도난신고는 하고, 그 차의 벌금은 본인이 울며 겨자먹기로 다 내는 경우가 많다. 경찰서에 도난신고 하면 원스탑으로 시군구청에 연계해주면 되지 않나 싶어서 정부부처에 제안을 넣었으나, "지자체가 알아서 할 일을 왜 우리한테 질의를 하시냐?"는 타박을 들었을 뿐이다. "우리 시 뿐만 아니라 전국 똑같아요. 민원인들 피해가 심각합니다. 행안부랑 상의해주세요." 했지만 6개월째 답이 없다. 그러니 번거로우시더라도 꼭 경찰서-시군구청.




타인이 내 명의의 재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선의로 도와주었다 치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그 차를 실제로 운행한 사람의 모든 잘못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뜻이다. 세금미납, 불법주정차, 과속, 버스전용차선침범, 장애인주차구역위반, 보험 미가입, 정기검사 기간 경과 등 운행자의 모든 불법행위는 명의자의 책임으로 귀속된다. 심지어 명의자 이름으로 저당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음주운전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건 명의자가 아닌 운행자 책임이다.


단언컨대, 명의를 빌려가거나 훔쳐서 취득한 재산을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명의자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많은 불법명의 자동차들이 범죄에 악용된다. 개인의 재산상 손해가 크고 심지어 생명을 잃는 경우도 보았기 때문에 우리 부서는 어떻게든 시정하려고 석 달간 불법명의가 의심되는 차량 등에 등기를 수천 건 보냈다. 등기를 받은 분들 중에 일부는 격앙돼서 오시고, 이들을 앉혀서 해결방법을 알려주지만 그동안 쌓인 압류와 저당은 온전히 당사자 책임이다. 그 우편물마저도 그냥 찢어버리셨는지, 아무 반응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전화번호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꼭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명의를 빌려주는 건 보증 서는 것과 맞먹는다. 그러니 가훈으로라도 남겨둬야 한다. 명의를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마시고, 아무에게나 신분증 맡기지 마시고요, 집에 오는 고지서 확인 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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