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사에 다닐 때였다. 아직 조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 중 어떤 것이 '큰 일'이고 어떤 것이 '작은 일'인지 모르는, 한 마디로 코흘리개 초짜 시절에 내가 일하던 연수원에 정말 '큰 일'이 일어났다. 아, 선배들이 '큰 일'이라고 말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원장 직을 맡고 계시던 임원께서 다른 조직으로 인사발령이 났는데, 본인은 가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라고 물은 나는, 진짜 바보 멍충이였다. 선배한테 소곤소곤 물어본 게 천만다행이지. 과장님은 고개를 저으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항명을, 그것도 인사에 항명을 하셨어? 옷 벗겠다는 얘기야." 하며 쓴 입맛을 다셨다. 그는 인사와 노무 쪽에서 통뼈(잔뼈 아님)가 굵은 핵심라인이었다. 인사의 결정에 누군가가 불복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몹시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원장님은 정말로 그만두셨다. 본인도 그렇게 될 줄 아셨을 텐데 왜 그러셨을까.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때의 일로 나는 매우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항명은 있을 수 없는 일이구나.' 인사뿐만 아니라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서도 당연히 같은 분위기다. 그 후로도 나는 여러 조직에서 여러 차례 비슷한 일들을 목격했다. 의사결정이 있기 전에는 물밑에서 온갖 소문과 제안과 읍소와 조정과 청탁이 난무하지만, 의사결정이 이뤄진 후에는 쥐 죽은 듯 조용한 것, 그 결정에 대한 불복은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되지 않는 것. 그것이 조직이었다.
경영진뿐 아니라 직속 상급자의 지시사항도 천금만큼 무거워야 하며, 만약 결정이 번복되거나 수정된다면, 공식적으로 그것은 결정한 주체의 자발적인 행보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은 조직의 기강에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벤처나 스타트업에서 일해본 경험은 없으니 그 조직들은 잘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전통적 의미의 조직에서는 '항명=퇴진'이다.
논외의 문제이지만 이러한 조직 분위기는 아이히만 양산에 매우 적합한 권위주의, 전체주의적 구조다. 시대에 맞는 참신하고 다양한 의견이 역방향으로 반영될 수 없는 치명적 단점이 분명히 있다. 회사의 지시를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울 때 불복할 수 없다면 개인의 선택은 남느냐, 떠나느냐... 결국 그거다.
아무리 업무분장을 잘해도 겹치는 영역이 없을 수 없다. 모든 조직이 마찬가지고, 공공부문은 특히나 사회변화를 조직구조가 빨리 따라잡지 못한다. 조직이론에서 '팀'이란 '프로세스'에 기반을 둔 조직단위이다. 그러나 공공부문의 '팀'은 기존의 '계'라는 조직을 이름만 변경했을 뿐, 기능은 기존의 '계'와 똑같다. 동적으로 흘러가는 프로세스는 여러 계(팀)를 거칠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변화무쌍한 시대에 시장님이 A라는 업무를 지시했고 그 업무는 가, 나, 다 등 여러 부서에 걸쳐있다면, 그 업무를 누가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아마 사기업이라면 TF가 만들어질 확률이 높다. 내 경험상으로는 대개 비공식적 회의체다. 아... 그러면 회의가 또 하나 생기는 거야... 내 업무는 언제 하냐... 언제 까지래?... 이건 이 과장도 가야겠지?... TF 팀장이 누구야?... OO팀도 들어와야 되지 않아?... 단톡방 빨리 파라 그래... 이렇게 가겠지. 스트레스는 받겠지만 일단 일은 한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목격한 것은 해당 업무가 걸쳐있는 세 부서가 모두 '우리는 관련이 없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버티는 장면이었다. 우리 부서 과장님이 나서서 '가' 부서 과장님에게 '사업방향만 써서 달라'라고 했는데 그 부서 과장님은 '알겠다'라고 해놓고 다시 찾아와서 '해당 팀장이 못하겠다고 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지켜보던 어느 팀장님이 말했다. "놀랄 일 아니야. 지난번에는 국장(임원)님들이 시장님한테 가서 서로 자기네는 이 업무 못한다고 거부했어." 그러니까 내가 지금 시장(사장)에게 국장(임원)이 항명하고, 국장에게 과장(부장, 부문장쯤?)이 항명하고, 과장에게 팀장이 항명하는 것을 보고 있다는 거지?
시장님 지시도 이런 상황인데, 일개 8급 서기가 시장님 지시를 쪼개서 부서에 follow-up을 요청하면 그게 제대로 받아들여질 리가 만무하다. 다 본인 업무 아니라고 한다. 과장님은 나에게 말했다. "그거 하라고 거기 앉혀놓은 거야." 전임자에게 물었더니 "다 안한다고 하면 주사님이 직접 하시면 돼요~" 란다. 아...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겠네.
사기업 조직이 불복을 용인하지 않는 것이 권위주의적 성향의 반영이라면, 이렇게 자유롭게 불복할 수 있다는 것은 조직이 그만큼 유연하고 자유롭다는 뜻인가? 내가 이 상황을 몹시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내가 회사 문화에 길들여진 탓인가? 공무원이 되었으니 이 차이에 적응하는 게 맞는 건가?
현재의 상황에 대해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더 쓰지는 않겠다. 그건 친구와 오프 더 레코드로 심도있게 토론하는 게 현명하다. 다만 바라는 것을 적기로 한다.
1. 그 불복이 조직의 존재 목적, 즉 시민의 삶을 보호하고 발전하는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는 사유와 판단의 결과이기 바란다.
2. 업무에 대한 지식과 전문성을 더 갖고 있어서 더 거시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상급자가, 하급자의 항명이 일리 있다고 판단하여 동참한 것이기 바란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본안의 공익적 목적을 확신하여 계속 추진을 명한다면, 그 지시에 부응하는 업무분장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바란다.
4.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조직의 업무분장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변화가 이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