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이라는 이름의 인생

by 장완주

"신분증 주시고요."


하루 종일 이 짧은 말을 반복하는 동사무소 민원대는 300원짜리 등초본, 600원짜리 인감증명서, 1,000원짜리 가족관계증명서를 교부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일상적인 교환 관계라고 생각하면 정말 구멍가게보다 못한 매출이다. 요즘은 무료로 발급받을 수 있는 무인발급기도 있고, 인터넷 발급도 가능하니 민원대로 직접 와서 서류 발급을 신청하시는 분들은 대개 기계조작에 서툴거나, 어차피 수수료가 면제되는 신분이거나, 특수한 사정이 있는 분들이다.


물론 그 외에도 전입신고나 출생, 사망신고처럼 어떤 증명서의 원부를 등록, 수정, 말소하는 일이 있다. 하여간 두 부류의 업무 중 어떤 것도 누군가에게 '대단한 일을 한다'라고 뻐길 만한 거리는 없다. 매일 쳇바퀴 도는 일상이고, 그래서 영원할 것만 같아 막막해지는 고된 시간일 뿐이다. 신규가 읍면동 사무소에 발령을 받으면 본청 발령자보다 성적이 밀린다고 짐작하거나, 민원대에서 '얼마나 빨리 본청으로 들어가느냐' 여부로 그 사람의 능력치를 판단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상관관계가 정말 있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내 앞에서 서류를 발급받아 가는 그 민원대에서 짧은 시간을 스쳐간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다. 완결되지 않은 작품을 본 다음처럼 자꾸 돌이켜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 말이다. 어느 날 모자를 눌러쓴 젊은 남자분이 내 창구에 앉았다.


"신분증 먼저 주시고, 어떤 걸 도와드릴까요?"

"저... 엄마 주소를 좀 알고 싶은데요. 호적을 떼면 되나요?"

"아, 호적엔 주소가 나오지 않아요. 가족관계가 확인되시면 어머니 주민등록초본을 발급하실 수 있어요."

"초본...이요?"

"네, 엄마 인적사항만 나와요. 등본은 같이 사는 분들 전체가 다 나오는 거라 발급이 안 되거든요."


이런 경우가 가끔 있다. 속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부모의 주소를 알고 싶다는 자녀, 자녀의 주소를 알고 싶다는 부모, 배우자나 형제의 주소를 알고 싶다는 사람이 꽤 찾아온다. 직계(부모와 자녀) 상호 간, 혼인 중인 배우자 간에는 주민등록 초본 발급이 가능하지만, 형제자매남매 간에는 불가능하다. 법적으로 방계는 배우자보다도 먼 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남자분의 가족관계 상 친모임을 확인하고, 어머니의 주민등록번호로 주소를 조회했다. 건너편에 앉아 민원대 위에 팔을 걸친 그분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아주 어릴 때... 헤어졌어요. 이제 제 주민등록증으로 서류 발급이 가능하다고 해서 이렇게..."


주민등록증에 적힌 생년월일을 보니 정말 갓 스물이 넘은, 아들 같은 청년이다. 혼자서 민원서류를 뗄 수 있는 나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하는 건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참아온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서류만 발급해줄 뿐,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자격도 시간도 허락되지 않은 사람이다.


타인의 감정을 잘 모르는 내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방법은 나를 그 상황으로 밀어 넣어보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직접 겪은 일들이 많다 보니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은 어릴 때에 비해서 훨씬 많이 나아진 편이다. 아, 타인을 이해하는 역량을 개발하려고 내가 그 모든 일을 겪은 건 아니니 '니가 더 큰 사람이 되려고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 등등의 말은 차라리 부디 마음 속에 넣어두시길 부탁드린다. 그 말은 당사자만 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저 청년이라면 지금 뭐가 가장 궁금하고 불안할까. 만약 아주 어릴 때 엄마의 부재를 강요당했다면 성인이 된 지금 엄마를 다시 찾아갈 때 뭐가 가장 두려울까. 혹시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나는 인쇄 버튼을 누르고 신분증을 건네주면서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혼자 계시는 것 같아요."


이 청년에게 내가 발급해줄 수 있는 것은 등본이 아닌 초본이다. 누가 함께 사는지는 개인정보다. 하물며 시스템에 전화번호가 있어도 개인정보라서 알려줄 수가 없다. 달랑 주소 하나 들고 본인이 직접 발로 찾아가야 한다. 그러니 내가 같은 상황에 있다면 엄마에게 다른 가족이 있는지, 자신이 찾아가면 엄마가 곤란해질 사정이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 될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분의 표정이 바뀌었다. 뭔가... 다르게 복잡해졌다고 해야 할까. 초본을 건네받는 그분의 손이 몹시 떨렸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일까. 어머니의 주소는 아주 먼 곳이었다. 그는 집을 나서서 네댓 시간은 족히 걸려야 어머니의 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십수 년을 기다렸는데 그깟 몇 시간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다림 앞에서 어떤 시간은 찰나이면서도 영겁의 세월이 된다. 청년은 머릿속으로 수많은 케이스들을 상상하며 그 길을 가게 될 테지. 때로 상상이 얼마나 사람을 후벼대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그 정도는 말해줘도 되지 않을까... 어머니에게 함께 사는 가족이 있었더라면 아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초본만 드렸을 것이다. 혼자 계신 것이 다행인 건지 아니면 불행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작은 서류봉투를 건네주고 그분은 초본을 접어서 봉투 안에 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손으로 모자를 눌러 만지며 민원실 문을 나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3분도 채 걸리지 않은 아주 짧은 만남은 그것으로 끝인데 미완의 이야기를 남기고 간 그 젊은 민원인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자주 생각이 난다.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까, 만났을까, 어머니가 반가워해주셨을까, 되려 서로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마음의 상처는 조금 나았을까, 어제보다 조금 더 웃을 일이 많아졌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판타지로 끝났으면 좋겠다.




민원업무는 힘들다. 세상에는 정말로 나쁜 사람들이 많다. 민원대 너머로 머리채를 잡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한편 나도 좋은 민원 담당자는 아니었다. 나의 부족함으로 민원인과 부딪칠 때도 수없이 많았다. 모난 성격, 모진 말투, 업무지식 부족 등등의 이유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감사실에 불친절로 경위서를 쓴 일도 있었다.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 민원대 위의 수많은 부딪침 속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나는 어제보다는 좀 덜 부족한 오늘, 조금 더 나아질 내일의 흐르는 시간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만나는 찰나의 인생들은 시간 좌표를 붙잡아놓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누군가의 영원이 타인에 의해 찰나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찰나는 타인의 영원이 되기도 한다. 청년이 민원대에 자신의 인생을 올려놓았던 그 찰나는 그렇게 내 안에 오래오래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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