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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완주 Apr 03. 2021

반려하지 않습니다

마당이 있는 집에 이사를 가면 강아지를 키우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아이들에게 했던 것은 그런 집에서 살게 될 일이 없으리라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도로변의 허름한 단독주택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매일 약속을 지키라며 졸랐다. 카페에서 누군가 '이민 간 가족이 맡긴 개'라며 스피츠 한 마리를 분양한다고 글을 올렸다. 그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8개월 된 수컷이었는데, 훈련이 전혀 안 된 상태였고 고집이 세고 간혹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토록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졸랐던 딸은 정작 아이를 무서워했다. 심지어 매일같이 집안을 돌아다니며 온통 설사를 해놓는 통에 결국 마당에서 키워야 했으니 그 강아지도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개를 키우기엔 너무 무지했고, 환경은 혹독했다. 사악한 중고딩이 담 너머로 아이를 겨냥해 돌을 던지고 밤이면 도로의 차 소리가 잠을 깨웠다. 아이도 몹시 예민했다. 심지어 오자마자 중성화 수술을 미룰 수도 없었으니 낯선 새 식구들을 믿을 여유도 없었다. 상황은 아주 좋지 않았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다. 모두가 착하다고 하고, 너무 착해서 제 식구도 못 지키는 바보 같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강아지의 고집을 꺾겠다고 벼르더니 폭력이 시작되었다. 구체적인 사건들을 나열하는 일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에 나는 처참한 몰골의 아이를 안고 동물병원 선생님께 뛰어가서 엉엉 울었다. 며칠 내로 아이를 보낼 만한 곳을 찾겠으니 입원시켜 달라고 부탁드렸다. 엑스레이를 찍어 본 선생님은 일주일쯤 있으면 아이도 안정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동물병원에서 아이를 퇴원시키자마자 곧바로 차에 태우고 세 시간을 달려 새 집에 데려다주었다. 아이는 웃는 표정으로 차 안에 누워 단잠을 잤다. 자신을 겨누던 폭력에서 해방될 것을 아는 듯했다.


나는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동안 참았던 것들을 폭발시킨 트리거는 다름 아닌  사건이었다. 그동안 모든   견뎠는데... 죽음 직전에서 스스로 돌이켜 돌아오기까지 했는데... 만신창이가  강아지를 품에 안아야 하는 일로 끝내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어느날 무작정 이마트 주차장 구석에 차를 대고 무슨무슨 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아무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미친년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시간을 울부짖은 , 아이를 멀리 데려다주고 나서 며칠 후였다. 그로부터도 한참을 참아보려 했으나 결국 병원에 갔다. 처음 약을 받아오던  남편은 놀랐다고 했다. 내가 '미친 '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살을 해도, 개가 피투성이가 돼도 내가 멀쩡했어야 하는데,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남편과 반려해야 해서 나는 약을 먹었다. 길을 가다가 강아지만 보면 멀리 돌아가는 나를, 남편은 여전히 비웃었다. 자신을 꼽주려고 '상처 받은 척' 연기한다는 거다. 나는 그런 남편 곁을 지키겠다고 열심히 약을 먹고 열심히 돈을 벌었다. 정작 내가 한 '척'은 '아무렇지 않은 척, 다 잊은 척'이었다. 그러나 나는 잊지 않았다. 잊어서는 안 되었다. 내가 지켜야 할 또 다른 두 연약한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아이들을 지켜야 할 반려자에 대한 순전한 믿음은 이미 무너져버렸다. 가장 연약한 존재에게 맘놓고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는데, 세상 다시 없을 온순한 얼굴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었다.


아이들은 빨리 잊고 묻고 왜곡했다. 딸은 내가 강아지를 버렸다고 말했다. 기억만큼 속이기 쉬운 것이  있을까. 특히나 가족을 면죄해야   그보다  쉬운 방법은 없다.  깊은 무의식 안에서 아빠를 감싸야 하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엄마라는 사람은 강아지를 버리고 아빠를 버린 사람이다. 이해한다. 아이들도 그래야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따뜻한 체온을 아직 기억한다. 부드러운 하얀 털과 호기심 많던 눈을 기억한다. 밤에  소리에 놀라서 짖기 시작하면 나는 남편이 깨서 화를 낼까  얼른 마당에 나가 아이를 안았다. 그러면 아이는 이내 짖는 것을 멈췄다.  다리 위에 길게 몸을 맡기고 나를   곁눈질로 쳐다보고는 눈을 감았다.  낯선 어둠이  딴에 얼마나 두려웠을까. 둘이서 그렇게 서로의 체온에 기대서 새벽까지 선잠을 자곤 했다.


내 품에서 폭력을 겪었던 한 생명을 생각하면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아직 심장이 저리다. 그 후로 또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다른 생명들에게 새로 정을 줄 만큼 뻔뻔해지지도,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어렵게 나 스스로를 설득하며 반려하려고 했던 남편은 끝내 너무 천진난만하게 착한 사람이라서 나의 '유난스러움'으로는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더 이상 반려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H언니는 새벽에  기도를  때마다 혼자서 외롭게 애쓴다며 운다는데, 나는 사실 반려가 없어서 다행스럽다. 내가 반려해야  이들이 서로를 해치고 상처낼  그들  한쪽을 감싸야한다면 그건 누구여야 했을까. 어느 누구를 선택해도 사라지지 않을 고통과 면제되지 않을 죄책,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나의 머뭇거림이  가슴 속을 무참히 찢어놓았었다.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외로워서 좋아. 아무도 편들거나 말릴 일이 없어서 다행이잖아."


그래서... 사람과도 동물과도 반려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기로 한다. 이미 충분히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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