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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완주 Nov 15. 2020

상담을 받기로 했다

여태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어느 해인가 근처 교회에 상담목회를 전공하신 여자 목사님이 계시다 하여 한번 가보았다가 된통 데고 그만두었을 뿐이다. 그분의 잘못은 아니었을 텐데, 아마 때가 잘 맞지 않았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어쨌거나 나는 그 후로 상담에 매우 거부감이 컸다. 그래서 약을 먹었고, 다행히 그 약은 잘 맞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지금 먹는 약도 너무 많아서 정신과 약까지 더하기가 꺼려졌다. 마침 직장에 EAP가 도입되었다. 직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상담서비스를 6회까지 무료로 해주는 일종의 복리후생 제도다. 전에 사기업에 다닐 때는 내가 도입하고 직원들을 독려했던 프로그램인데 이제 내가 내 발로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3주 전에 신청을 했고, 오늘 첫 상담일이었다. '일단 한번 가보기만 하자'라는 생각이었고, 혹시라도 상담 선생님과 이전처럼 잘 맞지 않으면 미련 없이 그만두리라 생각했다. 힘들어서 간 건데 더 힘들 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상담을 받기로 한 이유를 물으시길래 "안 죽으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처음엔 담담했는데, 아버지의 자살도 잘 참고 얘기 잘 했는데 이번엔 자식 이야기에 무너졌다. 눈물은 한번 터지면 멈추기가 쉽지 않다. 마스크가 축축해지도록 울었다. 그 일은 단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생명체만큼이나 왕성한 자가 번식으로 내 세계를 뒤덮어 일과 관계와 건강 같은 모든 삶의 영역에 뿌리를 내리고 진을 빨아먹는다.


얼추 이야기를 하고 나니 선생님은, 상담 영역이라 의학적인 진단은 불가하지만 PTSD가 맞다고 하시면서 너무나 많은 감정들을 끄집어냈는데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셨다. "매일 이런 감정들과 함께 사는 걸요." 말을 한다고 덜어지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다고 없어지지도 않는 그런 감정들...


해결은 바라지 않는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사실 나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상황들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욕구와 필요와 목표에 충실하게 살고 있고,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 문제는 그 속에서 버텨내지 못하는, 오직 나 하나다. 잘 움직이는 그 속에서 나만 모든 자극에 예민하고, 자신의 과잉된 감정과 반응의 루틴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반복한다는 것. "선생님, 저는 그저, 뭔가 자극이 올 때 어떻게 그 상황을 다루어야 하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그것이 상담 선생님과 나의 일치된 상담의 방향이었다.


"이제 마무리할까요?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어보세요. 숨을 크게 쉬어보세요."


왜였을까... 그냥 줄줄 흘렀던 눈물이 속에서 북받쳐 터졌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손을 얹은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때 알게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 내가 바랐던 건 단지 따뜻한 손 하나였다는 걸 말이다. 그 손이 내 것이었음에도 나는 마치 누군가 내 마음을 다독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의 온기... 그렇게 작은 것에 지난 20년간 목말랐던 거구나. 그렇게 작은 것을 나는 얻지 못했구나.


다행이다, 이제라도 나를 달랠 방법을 알게 된 것이... 그것이 아주 쉬워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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