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완주 Jun 26. 2020

낯선 사람들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번은 나를 도와주셨던 광역정신보건센터의 담당 복지사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이 있는데 한번 참석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점심이나 같이 먹는 가벼운 정도라고. 가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나를 도와주신 데 대한 보답도 하지 못했는데 점심 모임에 나오라는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을 만나러 나갔다.


평소에 교회에 갈 때도 맨얼굴에 편한 복장으로 가는, TPO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둔한 사람인데 그날은 나의 모든 것이 몹시도 거슬렸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어떤 옷을 입고 나가야 하는지 너무나 신경이 쓰였던 모임으로 기억한다. 나는 아무도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신경 쓰지 않는, 혹은 모르고 싶어 하는 곳에서는 대개 평범하게 묻혀가는 룩을 가졌다. 한번 봐도 잘 기억이 안 나는 생김새와 옷차림, 그저 배경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곳은 모두가 같은 이유로 온 사람들이니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그런' 사건을 겪었을 터였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약도 많았고 해서 나는 부작용에 다소 시달리고 있었다. 푸석푸석하고 부은 얼굴에 피로감이 가득하고 눈을 반쯤 감고 다녔다. 거울을 보면 영락없이 우울증 환자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것 같았다. 차라리 다행이지 싶었다. 식사 장소에 도착하니 두세 개의 라운드 테이블에 네댓 명씩 앉는 단출한 규모였다. 내가 앉은 자리에는 센터 선생님 두 분과 다른 유가족 두 분, 그리고 내가 앉았다. 한 분은 남편을, 한 분은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구구절절 사연을 이야기하는 자리는 아니었으니 그 정도만 알았다.


밥 먹는 내내 두 분의 얼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아닌가? 저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얼마나 되었을까... 웃어도 되는 걸까... 뭘 잘못했기에 가족이 자살을 했을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들이 드는 거였다. 깊은 내막을 이해함 없이 그저 '자살 유가족'이라는 것만 아는 사람에게 같은 입장인 나조차 이토록 가혹한 선입견을 가지게 되다니, 너무 소름이 돋고 당황스러웠다. 이토록 모든 것이 다 이상해 보일 수가 있구나. 안 어울릴 수가 있구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지금 내 마음처럼 위화감이 들 수 있겠구나. 내가 웃을 때마다, 내가 화장을 하고 네일을 하고 나타나면 '저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거고 내가 우중충한 표정으로 앉아있으면 '기분 나쁘게 왜 저래' 싶은 생각이 들 거고 그렇겠구나.


나는 더 이상 자조모임에는 가지 않았다. 나와 같은 사건을 겪었지만 나와 다른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뭔지 모를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나중에 첫 발령지인 동사무소에서 사망신고를 접수할 때에도 사인이 '자살'인 신고가 생각보다 많았는데 가족이 서류를 제출하면서 망인을 험담하거나, 너무 적극적으로 사무처리를 하는 민원을 받으면 그 날은 종일 우울해지곤 했다. 모든 죽음이 다 같을 수 없고 모든 유가족의 감정이 다 동일할 수 없는데 그 사람들이 내 눈에 이렇게 이상하게 보이는 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다는 거니까 말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더 불안해졌다. 나의 모든 것이 다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까. 아버지가 자살한 책임을 나에게서 찾겠지. 책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불안들 끝에 나는 이상한 강박이 생겼다. 뭔가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사건 진술서를 쓰듯 전후 과정을 밝히고 나에 대해 느끼는 위화감을 줄여주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 완전히 감추든가 아니면 완전히 알리든가 해야지, 어설프게 '가족이 자살했대'라는 정도의 정보가 얼마나 무서운 흉기로 나를 찌를 수 있는지를 그 자조모임에서 알게 된 탓이다.


나만 이러는 것일 수 있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서. 사실 이런 내 감정이 보편적인 것인지, 이래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워낙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데다가 보편적이지 않은 일을 겪고 나니 모든 감정이 처음인지라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를 잘 분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자꾸 털어놓게 된다.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고 내가 정상인지 판단하려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더 모를 텐데.


행여 어떤 모임에 가면 내가 남의 눈에 띄지 않을 때, 배경 같을 때 마음이 편하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점점 더 쉽지 않은 일이 되어간다. 2, 3 년 전에 센터에서 다시 전화가 와서 수기를 하나 출품할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 와서 '지역마다 실적이 필요할 수 있겠구나' 싶어 글을 써냈다가 입상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감사하게 상을 받긴 했지만 시상식에 가지는 않았다. 눈을 마주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어제는 직장 신우회 예배에 갔다가 목사님이 스케줄을 깜빡하시는 바람에 느닷없이 직원들끼리 돌아가며 한 마디씩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얼마나 난감했는지 모른다. 강사로 먹고살던 사람이 마이크가 오자마자 벌벌 떠는 꼴이라니 정말...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20 년이 되어가며 느끼는 것은, 그 사건으로 인한 감정과 생각은 아물거나 사라지는 상처 혹은 흉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물이다. 감정과 생각도 나와 함께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며 느끼는 것들도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고 때에 따라 변할 것이다. 좋아 보여서 다행이라고 했다가 뭐가 저렇게도 좋을까 싶다가, 측은해 보였다가 궁상맞아 보였다가 지겹다가 그렇겠지. 어쩔 수 없다. 그게 남겨진 자의 몫이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골짜기 속의 감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