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를 처음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PTSD 약까지 합해서 하루 세 번씩, 한 번에 먹는 약이 일곱, 여덟 알 정도였다. 한 달 정도의 단위로 다시 진료를 받고 약을 줄여 나가서 1년 가까이 되자 의사 선생님이 "이제 이거 먹고 괜찮으면 안 와도 되지 뭐." 하셨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때 치료받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상담치료가 아닌 약물치료로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고, 무엇보다도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았다. 내가 갇혀 있는 감정의 깊은 골짜기 말이다. 골짜기인 줄 몰랐는데 사방이 꽉 막힌 곳이었더라는 것을 알았고, 그 너머에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깊은 협곡을 흐르는 감정의 지류를 따라가다가 항상 같은 합류지점을 만나 같은 끝에 이르렀었다.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감정은 완벽하게 습관이다. 습관이라는 특성조차 인지하기 어려운 '숨겨진 습관'이다. 어릴 때는 내 주변의 모두가 내가 웃는 것에 웃고, 내가 화내는 것에 화내고, 내가 슬픈 것에 슬프고,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거울 같은 이들이 나와 똑같이 반응하므로 나는 내가 당연히 정상이고, 정답인 줄만 안다.
그것이 고착화된 이후에야 나는 타인과 만나게 된다. 그 후로 타인이 "너는 그걸 왜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라고 한 번씩 제동을 걸 수도 있지만, 이미 정착된 사람의 감정은 물길이 깊어진 까닭에 그런 약한 방해물 따위는 차라리 삼켜버리는 강한 관성을 갖고 있다. '그런 식' 외의 반응 방법은 모른다. '모른다'는 말의 가장 최고 단계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감정에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네가 내 입장이었어봐. 너도 나와 똑같이 할 수밖에 없을 걸."이라고, 자신의 상황에서 지극히 당연하게 발생하는 유일한 감정을 따라간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유일하지 않다. 약을 먹으면서 깨달은 것은 바로 그 '유일하지 않음'이었다.
우울증 약의 효과로 기분이 좋아지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나른하고, 잠이 쏟아지고, 잠꼬대가 심해지고, 살이 찐다.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내적인 이유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외적인 자극에 의해 촉발된 것일 때, 그 외적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똑같은 일을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바꿀 수 없는데 그걸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 그게 더 미친 거 아닌가?
의학적인 메커니즘은 알 수 없지만 내가 겪은 우울증의 약효는, '지금의 감정 외에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 길이 있어. 그리고 그 길의 끝은 다른 곳이야.'였다. 골짜기 밑바닥에 있다가 하늘 위에서 보니 수많은 골짜기들을 내려다보게 되는 듯한 시야의 변화. 작은 일상의 자극들에도 결국엔 ∴ 내가 죽어야 된다는 결말에 이르던 익숙한 흐름의 변화 말이다.
당시 나의 외부 상황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었다. 돈 한 푼 없이 빚으로 이사한 낡은 단독주택은 겨우내 곰팡이가 가득했고, 아이들은 추위에 떨었다. 나는 프리랜서라 벌이가 들쑥날쑥했고, 늘 불안했다. 아무리 틀어도 도무지 따뜻해지지 않는 비싼 기름보일러를 가동하는 대신 거실에 연탄난로를 놓았다. 곱게 자란 남편은 집에만 있으면서도 제때 연탄을 갈 줄은 몰랐다. 출장을 다녀와서 번개탄 연기 속에 연탄불을 살리는 것도 내 몫이었다. 남편의 논리는 한결같았다. '이 난로도 네가 놓자고 했잖아.' 모든 것이 똑같았고, 번개탄은 나를 유혹했다. 저거 하나면 지긋지긋한 목숨을 끊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사실 나를 괴롭혔던 것은 '모든 것을 나 혼자 떠안아야 한다'는 큰 흐름이 아니라 그 흐름 속의 아주 작은 사건들이었다. 아이가 물을 엎질렀다던지, 연탄재가 튀어서 장판이 탔다던지, 밤늦게 집에 와보니 설거지가 쌓여있다던지. 당연히 짜증이 나지 않나? 사십 년이 넘도록 '당연히' 화가 나던 골짜기에 살았는데 하늘에서 보니 다른 골짜기가 있는 것이다. 나는 "아이고 기가 막혀..." 하며 그냥 허허 웃었다. 격한 감정들을 인근에 이웃한 다른 감정들로 바꾸었다. 분노를 슬픔으로 바꾸고, 걱정으로도 바꾸고, 그리움으로도, 죄책감으로도 바꾸었다. 기쁨과 즐거움이 아니었지만 감정의 강도는 확실히 떨어졌다. 도착하는 지점도 바뀌었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할 만한 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주변에 유난히 언니들이 많은 내가 유일하게 아끼는 후배가 있는데 나만큼이나 험한 세월을 살아왔고 젊은 시절에 마음의 병을 굉장히 심하게 앓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늘 씩씩하고 긍정적이다. 마음에 괴로움이 왜 없을까마는 정말 놀라운 회복력을 발휘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 그의 비결은 사건이 닥칠 때마다 더 심한 상황을 가정하며 '다행'이라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바쁜 일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었다면 "손목 안 자른 게 어디야!" 하는 식이다. 과격한 방법이지만 그렇게라도 다른 감정의 골짜기를 넘어 다닐 줄 안다. 나에게도 늘 그런 과격한 위로를 해주곤 해서 끝내 허탈하게 웃게 만들고야 말았다.
나의 감정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약을 끊고 난 후로도 나는 내 상태를 조금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에 너무 파묻혀 있다가 '분명 다른 골짜기가 있을 텐데' 하고 고개를 들 수 있으면 괜찮은 거고 금방 나아진다. 그런데 알면서도 고개를 들 힘이 없으면 문제가 생긴 거다. 그럴 때는 빨리 '사람'을 찾아간다.
감정은 몹시 힘이 센 습관이다. 습관적인 분노와 서러움과 억울함의 물길을 많이 바꾸어 잔잔한 호수로 빠져나가게 새 길을 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에 물줄기 몇 가닥이 검고 깊은 죽음의 소를 향해 나 있는 것을 안다. 나의 무가치함을 새삼 새삼 확인해주는 말들을 만나면 나는 그 물줄기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약을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 일이란 알 수 없으니. 그러나 나는 절대 그 죽음의 소로 빠져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지 않도록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감정들을 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