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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엔드 5시간전

여행 당일, 정신병동 응급입원을 하다

나는 내가 입원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2024년 12월 13일 금요일.

내일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채원이의 생일이다. 우리는 생일을 맞이하여 1박 2일 부산여행을 계획했고 숙소는 물론, 장소까지 모두 알아봤다. 우린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숙박을 위해선 부모님 동의서도 필요했기에 철저히 준비를 마쳤다. 나는 드레스코드를 초록색으로 맞추고 싶어서 옷이랑 가방도 미리 사뒀다.


오전에는 정신과 진료 예약이 잡혀있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다녀오고 오후 5시에 만나기로 한 걸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하필이면 13일의 금요일. 1년에 4번 정도 온다는데, 이 불길한 기분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나는 동네에 있는 개인병원을 다니다가 약으로 인해 16kg이 찌고 나서, 결혼식 대소동(이건 "열일곱이지만 시한부입니다"에서 자세히 쓸 예정이다.)이 일어난 이후로 세 차례나 자살시도를 했고 두 번의 응급실과 입원을 했었다. 그 당시에 모든 의사들이 정신병동 입원을 권유했지만, 난 잘 지낼 수 있으니 입원은 절대 안 된다며 완강하게 거부했고 마침 정신병동들에도 자리가 없어서 입원을 못했다.


자살시도 이후에는 매일 같이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고 지냈던 거 같다. 매일밤 유서를 썼는데 대부분은 나 없이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참 고마웠다는 내용뿐이었다. 그리고 자살 계획을 꽤나 디테일하게 세웠다. 나는 크리스마스 때, 강원도 강릉에서 죽으려고 했다. 이미 ktx도 끊어놨었고 채원이와의 여행이 내 인생 마지막 동반여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새로 다니게 된 정신과에선 내가 약을 받는 족족 병원에서 다 삼키거나, 집에서 먹고 한동안 깨어나질 못하거나 후유증이 생겨서 3일에 한 번 간격으로 병원을 방문하라고 했고 13일의 금요일도 그런 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데 완전히 지쳐있었다.




담당 주치의를 만나고 면담을 하다가 갑자기 나에게 할 말이 있는데 미안하다고 하셨다.

본인이 12월까지만 근무를 하고 다른 병원으로 간다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엄청 멍해졌다. 다시 버림받는 기분, 엄마가 나를 떠났을 때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오더니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거의 10분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진료실에 엄마가 들어왔다. 그곳은 내가 다니는 2차 병원이지만, 엄마가 근무하는 병원이기도 하다.


의사는 엄마에게 "본인이 떠나기도 하고, 내가 불안정하니까 폐쇄병동에 넣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고 난 바로 진료실을 뛰쳐나왔다. 나에게 상의도 없이 엄마를 불렀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입원 얘기까지 꺼내고, 병원을 떠난다니? 정신과 진료의 경우에는 한 의사에게 오랜 기간 진료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정서적 지지는 물론, 히스토리 파악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진료실에서 나갔더니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나를 수차례 붙잡았다.

"이러지 마요. 우리 잘해왔고 잘하고 있잖아요."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이미 울면서 나에게 말을 하고 계셨다.

내가 뭐라고, 나 따위가 뭐라고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시는 걸까.




그 이후, 병원에서 나왔는데 너무 막막했다.

다시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과 함께 마음 깊숙한 곳이 뜨겁게 아팠다. 자살시도 이후에 오빠의 권유로 상담센터를 다니게 됐었는데, 상담 선생님이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펑펑 울면서.


"전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안 나요. 이제는 너무 지쳤어요."

"일단, 전화 절대 끊지 말고 차분하게 얘기해 봐요. 알겠죠?"


그 이후에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통화를 했는데, 전화를 끊으면 뭐 할 거냐고 여쭤보셔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죽을 거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던 거 같다. 어디에 있냐고 수차례 물어봤지만,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병원 근처 6층 옥상으로 향했다. 바라봤다. 나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공간을. 상담선생님의 집요한 물음 끝에 내가 있는 위치를 말했고 오신다고 하셨다. 폰을 바꿔서 전화할 테니 받으라고 하셨고 정말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경찰서 @@@인데요. 디엔드씨 맞으십니까???? 지금 어디에 있어요??"


엥? 경찰관이 나에게 왜 전화를 하는 거지? 그냥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고, 다급하게 물어보길래 위치를 말했다. 뭐지...???


그 이후에 바닥을 내려다보고 난간에 걸쳐 앉아있었는데, 너무 무서웠다. 그땐 생각을 못했다. 나에겐 고소공포증이 심하다는 걸. '하... 투신은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고 경찰관의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이성이 돌아온 기분이었다.


출처: pixabay

전화를 한 지 3~4분쯤 되었을까? 멀리서 삐용삐용 소리와 함께 경찰차, 구급차, 소방차까지 오고 있었다. 이게 뭔 상황인가 싶어서 옥상에 쪼그려 앉아서 멍하게 있었는데 경찰이랑 구급대원이 우르르 오더니 당신이 디엔드가 맞냐며 연신 물어봤다.


일단, 1층으로 내려가자고 해서 내려가보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상담 선생님이 계셨다.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고, 서있다가 경찰관 분께서 추우니까 일단 경찰차에 타자고 하셨다. 경찰차에 타고 '탈출해야겠다. 이건 진짜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며 손잡이를 더듬더듬 찾았는데, 아뿔싸. 경찰차 안엔 손잡이 없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 탈출은 실패다. 그 이후 상담 선생님이 내 옆자리에 타셔서 내가 잘못한 거 아니니 괜찮고, 잠시 병원에 가서 진료만 보고 오자고 하셨다. 나는 그 와중에도 5시에 채원이를 만나야 한다며 꼭 그전에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아빠가 온 뒤에,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구급차를 탔고 약 40분 동안 이동을 했다. 길이 구불구불하고 비포장 도로여서 멀미가 났다. 내가 모르는 지역에 도착을 했고 그렇게 정신병원에 도착을 했다. 대기를 하다가 상담 선생님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고 의사는 내게 첫 자살시도 시기부터 아주 자세히 다 물어봤다. 원래 거짓말을 하려고 했는데, 상담 선생님이 옆에 계셔서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다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ㅠㅠ


마지막으로, 입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길래,

저는 절대로 입원할 생각이 없어요. 절대로요.

라고 완강하게 말했다.


진료실에서 나온 뒤, 데스크에서 나보고 서명을 하라고 하셨다.

경찰의 권한으로 72시간은 무조건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무슨 이런 법이 다 있는가.


'채원이랑 여행은 어쩌지?'

'H선생님과 글쓰기 챌린지를 하기로 한 건 어쩌지?'

'친구들에게 얘기도 못했는데 어쩌지?'

'3일 만에 나올 수 있겠지?'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다고?'

온갖 걱정이 다 들었고, 너무 절망적이었다….


상담선생님께선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고 회복에만 집중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오로지 3일 만에 퇴원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3일이 27일이 될지는 상상도 못 했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나는 폐쇄병동이 있는 3층으로 향했고, 그렇게 정신병동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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