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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Feb 07. 2024

일출과 일몰은 닮았다

오래 전,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정리하다 고개를 갸웃한 적이 있다. 바다를 찍은 사진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일출사진인지 일몰사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평선 위에 살짝 걸친 해는 이제 막 태어난 것 같기도, 오늘의 끝을 예고하는 것 같기도 했다. 도통 기억나지 않는 사진 위에 이런 메모를 적어두었다. 

일출과 일몰은 닮았다. 


일출과 일몰만 닮은 건 아니다. 처음과 끝은 묘하게 닮아 있는 경우가 많다. 모유수유도 그랬다. 직수(아기에게 직접 수유)를 하지 않고 밤마다 유축을 했다. 한창 때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큼 모인 모유를 보면서 속으로 바랐다.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기를. 


바람은 바람으로 끝이 났다. 아기가 자라듯 날이 갈수록 모유도 규칙적으로 줄어들어, 젖병 안에 모인 모유를 데우기 민망한 정도가 되었다. 3일 걸러 유축을 하고 간신히 젖병 첫 번째 눈금을 채운 날 밤, 문자가 왔다. 유축기 반납일자가 3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문자였다. 대여기간을 한 달 더 연장하려면 답신을 달라고 했다. 답장하지 않고 유축기를 정리해 박스 안에 넣었다. 


이틀 후 아침, 안방 커튼 뒤에 숨겨져 있던 수유쿠션을 오랜만에 꺼냈다. 수유의자에 쿠션을 올리고, 그 위에 아기를 눕혔다. 영상이 잘 찍히고 있는지 확인한 후 주섬주섬 티셔츠를 올렸다. 직수를 끝낸 이후로 가슴 아래까지 단추가 달린 수유복을 입지 않았다. 대신 임신 전부터 입던 티셔츠를 꺼내 입었는데 어느 날, 아기를 등지고 윗옷을 갈아입는 나를 발견했다. 아기가 볼세라 후딱 옷을 갈아입고 아기와 눈이 마주친 순간, 웃음이 났다. 하루에 열 번 가까이 가슴을 열어 아기를 먹이던 게 불과 몇 주 전 일이라는 게 꿈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젖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가슴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엄마 가슴이 생소한 건 아기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을 대자마자 물음표가 가득한 눈길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엄마의 간절한 눈빛을 읽었는지 마지못해 몇 번 젖 빠는 시늉을 하다 이내 씨익 웃었다. 더 이상 먹지 않겠다는 말 대신 건네는 미소다. 

“고생했어, 우리 아기.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따라 웃으며 인사를 건넨 후, 영상 촬영을 마쳤다. 영상을 저장한 후, 짧게 제목을 붙였다. 

마지막 모유수유시간 


그날 저녁, 운동을 다녀온 남편이 장을 봐 왔다. 아기를 재운 후, 싱크대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감바스와 바게트, 그리고 와인. 와인잔에 술을 따랐다. 남편과 술잔을 부딪치고 나서도 오랫 동안 망설이다 마침내 혀끝에 와인이 닿는 순간, 짜릿했다. 한순간 금기를 넘어선 기분! 처음은 어려웠지만, 그 다음은 너무나 익숙했다. 입 안의 알코올을 음미하며 한 잔 두 잔 술잔을 비웠다. 움직임은 둔해지고, 그럴 수록 신이 났다. 어린애처럼 깔깔거리며 나는 원래 살던 세계로 안착했다. 


안착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마주한 건 내가 속해 있던 세계가 아니었다. 해장을 하는 대신 분유를 탔다. 숙취를 참으며 아기를 먹였다. 가슴이 젖병으로, 모유가 분유로, 수유쿠션이 수유시트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아기가 울면 먹이고 트림시키고 재우는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아기를 재운 후, 남편과 ‘캬’ 소리를 내며 캔맥주를 나눠 마실 수 있다는 것. 임신기간 내내 입덧에 시달리면서 생각했었다. ‘맥주 한 모금이면 씻은 듯이 나을 수 있는데…’ 하고. 맥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의 따끔한 통쾌함. 임신과 출산의 세상에서 그걸 대체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잘 지내?”

“요즘 1일 1음주 실천 중이지. 나 단유했어.” 

“부럽다. 난 아직 못 끊었는데…”

“너무 좋아! 삶의 질이 쑥쑥 올라가!” 

신나게 대답해놓고 혼자 쓸쓸해한다. 사실, 아기를 좀 더 먹일 수 있는 친구가 부럽다. 부러워서 더 신나는 척한다. 


백화점 수유실에 가서도 괜히 모유수유실을 스윽 훑어본다. ‘여기 한 번 못 들어가보고 끝났네’ 하고 아쉬워하면서 분유수유 라운지에 앉는다. 아기를 먹이는 게 전쟁 같던 시절,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분홍 수유쿠션은 아직 치우지 못했다. 바구니 카시트, 수유시트, 작아진 기저귀까지 중고마켓에 내놓고 나서도 수유쿠션만은 내놓지 않고 커튼 뒤에 그대로 숨겨두었다. 가끔 들춰서 빤히 바라본다. 


수유의자에 앉아 젖을 짜던 밤, 이제는 부엌에서 분주하다. 5개월이 된 아기는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다. 소꿉놀이하듯 쌀가루를 물에 풀고 채소를 썰면서 내일의 양식을 만든다. 그 곁에서 남편은 분유제조기와 젖병을 씻는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둘이 바라는 건 같다. 배불리 맛있게 먹어주길. 


모유와의 투쟁은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투쟁 중이다. 분유제조기에서 분유가 나오면 분유통을 열어 분유를 반 스푼 더 탄다. 대학병원 영양상담사에게 이 정도 양이면 아기의 신장에도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칼로리를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 반복하는 루틴이다. 아침 열한 시가 되면 아기를 식탁의자에 앉히고 턱받이를 두 겹 두른다. 전 날 만든 이유식을 데워 온도를 확인한 후, 아기에게 먹인다. 아기 입에서 이유식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순간, 순발력을 발휘해 다시 아기 입에 이유식을 떠넣는다. 모유든 분유든 이유식이든, 아기를 먹이는 일에는 모두 노력이 필요하다. 


‘모유’라는 두 글자를 잊고 지내다 문득 마지막 이야기를 못 썼다는 생각에 지난 모유투쟁기를 찬찬히 읽어본다. 어떻게 끝을 내면 좋을까 고민하다 일출과 일몰은 닮았다는 오래 전 사진의 제목을 기억해낸다. 처음에는 끝의 해답이 숨어 있을 것이다. 네 달 전 썼던 두 번째 글의 한 문장에 눈길이 머문다.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고, 주어야 하는 건 모유 말고도 너무 많으니까.

이거면 되겠다. 일출에서 찾아낸 일몰의 문장.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와 투쟁할 것이다.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고, 주어야 하는 건 너무 많으니까. 앞으로도 용감하게 투쟁할 수 있기를, 투쟁하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몰랐던 걸 더 많이 알 수 있기를. 엄마가 되어 처음 마주한 투쟁, 나의 모유투쟁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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