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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Feb 29. 2024

글쓴이의 말

수유쿠션을 집어든 당신에게

인생은 행복의 연속이다.

맞는 말입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앞의 말과 전혀 반대의 의미를 가진 이 말에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집니다.


저는 고통에 약한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개복치 멘탈'이라고도, '쿠크다스 심장'이라고도 하겠죠. 살면서 마주하는 고통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늘 저의 고민거리입니다.


고통에 약하지만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이상한 오기를 가진 사람이기도 한데요. 모유수유라는 예상치 못한 고통을 맞닥뜨렸을 때도 딱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힘든데 이상하게 견뎌보고 싶은 마음. 그래서 밤마다 아기를 재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는 이랬다, 저 때는 저랬다고 쓰면서 힘든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려보려고요.


철저히 저 자신을 위해 쓴 글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막막한 마음에 포털사이트에 '모유수유'를 검색해 보다 제 글을 만나게 되었을 당신을요. 매일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수유쿠션을 무릎에 올리며 '이번엔 아기가 잘 먹어줄까' 노심초사하는 당신에게 한 번쯤은 숨 돌릴 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제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닙니다. 모유수유라는, 처음 만난 고통과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이야기를 성공담과 실패담으로 나누자면 후자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완모'라는 걸 못 해보고 모유수유 자체 '졸업'을 했으니까요.


엄청난 모유수유 팁을 기대하셨다면 실망하셨을 테지만, '저런 사람도 있는데' 하는 마음으로 읽으셨다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셨을 것 같아요. 모유수유의 ㅁ도 몰라 조리원에서 모두들 세 시간에 한 번씩 수유와 유축을 하고 있을 때, 전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모유량도 100ml를 넘긴 적이 손에 꼽고, 이야기에 등장한 모유수유매니저가 말씀하셨듯 수유자세도 매우 불량했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만큼 수유를 했고, 지금은 그때의 제 자신을 생각하면 아이를 대하듯 흐뭇한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모유수유가 끝나니, 이유식이라는 거대한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아기를 재우고 늦은 밤 이유식을 만들면서 생각했어요. 육아는 '좀 더 편해지려는 마음'과 '조금 불편해도 더 좋은 걸 주고 싶은 마음'의 끝없는 싸움이 아닐까 하고요. 요즘은 시판 이유식도 직접 만드는 이유식 못지 않게 잘 나와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또다시 직접 해 먹이는 길을 택하기로 하고, 평소 믿고 의지하는 선배 엄마이자 이전 회사 동료에게 이유식에 관해 궁금한 걸 잔뜩 물어봤습니다. 섬세한 성품의 소유자답게 이것저것 자세히 대답해주던 동료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있어요.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돼요.

 

그 말을 듣는데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내 몸이 편한 건 아기에게 안 좋은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럴 리가요. 내 몸이 좀 편해진다고 해서 꼭 아기에게 안 좋을 리는 없잖아요. 저희 아기는 제가 만든 이유식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몇 주는 이유식 숟가락만 대면 대성통곡을 하더라고요.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유명하다는 시판이유식을 주문했습니다. 소고기와 단호박이 섞인 죽을 아기 입 안에 넣자마자, 아기는 작은 입을 오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더 달라 졸랐고, 더 빨리 달라며 보채기도 했습니다. '아기가 좋아하는 게 제일 좋은 밥이지!' 생각하면서 이유식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매일 밤, 이유식 만들던 시간에 뭘할까 생각하니까 설레기도 해요.


이 이야기를 <나의 모유수유 투쟁기> 말미에 붙이는 이유는, 동료가 저에게 해준 말을 저도 꼭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꼭 무찔러야 하는 적처럼 필사적으로 모유수유와 투쟁할 필요는 없다고,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고 말해주는 책과 유튜브는 없었거든요. 새벽에도 수유해라, 유축하지 말고 직수해라, 아기가 잠들면 깨워서 먹이라는 책과 유튜브는 많았지만요. 그래서 어쩌면 지쳐 있을 당신을 위해 조금이나마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요즘 분유 잘 나오는데 뭣하러 고생해"처럼 툭 던지는 한 마디 말고, 고생한 시간의 무게를 더해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어요. 피하고 싶은 고통이라면 피해도 된다고요.


사실, 저도 요즘 배우고 있는 중이거든요. 피하고 싶은 고통은 최대한 피하자!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며 무턱대고 달려드는 대신, 생각하자. 생각해보고 먹고 싶지 않아진다면 먹지 말자! 이렇게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조금이라도 확보하려면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아요.


힘들어도 모유수유를 계속하고 싶다면, 견뎌보고 싶은 고통이라면,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모유수유를 하다 보면 외로운 순간이 진짜 많아요. 새벽수유를 하려고 일어날 때도, 아기를 재우고 유축할 때도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저의 모유투쟁 이야기를 틈틈이 꺼내보면서 '나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구나' 하고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그저 몇 줄 끄적이려던 거였는데,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이야기에 나온 수유템이나 모유교실, 모유클리닉이 궁금하시거나 모유수유에 관해 묻고 싶은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댓글로 알려주세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지만, 알고 있는 정보는 최대한 가득 말씀드릴게요. 분유든 모유든 이유식이든 유아식이든 아기를 먹이는 모든 엄마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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