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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Sep 18. 2021

미래에서 온 편지

고속버스를 타고 본가에 내려가는 길이었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탓에 우산 사이로 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엄마, 고마워”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순간, 실감했다. 한 살이 채 되지 않은 나의 고양이가 죽었다는 것을. 죽으면서 몇 년 전 과거일지 모를 오늘로 내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을. 눈물이 흘렀다. 고맙다 했으면 되었다. 잘 살다 간 걸로 감사하다. 내 작은 고양이는 그날도 지금도 내 전부다. 


처음 본 날, 고양이는 참기름병 사이에서 이리저리 도망다니고 있었다. 꼬마가 키우겠다고 데려갔는데 부모가 고양이 키우는 것을 심하게 반대해, 데려온 곳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탯줄이 떼어지기도 전에 구조되어 망원동 방앗간에서 살고 있던 엄마 고양이는, 낯선 곳의 냄새를 잔뜩 묻히고 들어온 새끼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키울 수 있겠어요?

제대로 된 이동장 하나 없이, 고양이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헐레벌떡 뛰어온 나를 보고 주인 아저씨는 연거푸 물었다. “데려가서 못 키우겠으면 다시 데려와요.” 아기 고양이용 사료를 비닐봉지에 싸주며 불안한 눈빛으로 당부했다.


우리 집으로 온 고양이는 병아리처럼 빼액빼액 울었다. 하룻밤을 새고 방앗간으로 가 수건에 엄마 냄새를 가득 묻혀 왔는데도 소용 없었다. 그날밤, 반쯤 포기한 채로 소파에 누운 배 위에 고양이가 올라와 젖 빠는 시늉을 했다. 그때 알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되었다는 걸. 


싱크대에 뭐라도 올려두고 온 날이면 회사에서 등에 땀이 한 줄기 흘렀다. 고양이에겐 무거울 그것이 혹여나 떨어져 고양이를 다치게 하진 않았을까. 점심시간이면 밥 먹는 걸 포기하고 집으로 달려가는 일이 많았다. 날이 갈수록 불안이 심해지자, 남자친구는 밖에서도 집 안을 볼 수 있는 카메라와 앱을 설치해주었다. 


주먹 만한 고양이가 반찬통에 모래를 담은 화장실에 왔다갔다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옆자리 편집장님에게 쫑알쫑알 자랑을 했다. 퇴근 후 돌아온 집은 온통 피였다. 고양이 화장실은 혈변으로, 벽은 피 섞인 구토로 뒤덮여 있었다.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느낌이 보호자님.

‘보호자’라는 호칭이 생소했다. 그럼에도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고양이는 많이 아픈 것 같다고 했다. 설탕물을 줘서 먹지 않으면 밤이라도 다른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고양이는 역시나 설탕물을 먹지 않고, 빨강과 초록 구토를 번갈아 할 뿐이었다. 


다시 병원에 갔다. 이동장 속 고양이를 본 사람들이 “어머, 고양이 몇 살이에요? 귀엽다” 하고 웃었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고양이는 ‘범백혈구감소증’이라는 전염병을 진단받았다. 새끼 고양이에게는 약이 없어,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사망한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감염 위험 탓에 전자레인지를 닮은 작은 격리병동에서 지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 병원엔 격리병동이 없어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고양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전 병원에서 알려준 24시간 동물병원에 연락했지만, 고양이의 병명을 듣고는 병동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전염병 환자는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니까. 이동장 안에 든 작은 생명이 내 옆에서 죽어갈까봐 겁이 났다. 피투성이가 된 고양이 화장실을 바깥으로 치워버렸다. 화장실을 잃어버린 고양이는 방석 위로 올라와 피를 토했다. 


결국, 병명을 모른다고 거짓말한 채 찾아간 마지막 병원에서 고양이는 입원할 수 있었다.  의사는 언제 상태가 위중해질 지 모르니 잘 때도 휴대폰을 들고 잠들라고 당부했다. 면회 횟수에 따라 생존율이 달라질 수 있으니 자주 와서 엄마 목소리를 들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잘 먹고, 잘 잤다. 새벽이면 일어나 고양이를 보러 갔다. 눈만 끔뻑끔뻑하는 녀석의 사진을 찍고 “엄마 왔어, 이쁜이” 하며 웃겨주었다. 3일째, 고양이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제 살아났다며 한숨 내려 놓는 내게 의사는 이제 50퍼센트의 확률이 된 것뿐이라며 안심하긴 이르다고 했다. 


4일째, 나를 보고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삐약삐약 소리도 지르고, 배변패드에 동그란 똥도 싸두었다. 5일째,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겠다는 말을 들었다. 90퍼센트의 불운 대신 10퍼센트의 행운이 우리에게 온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니라 쥐 같았다. 통통한 살은 찾아볼 수 없었고, 몸에는 악취를 풍기며 소리를 질러댔다. 사료를 바꾸고, 목욕을 시키며 길렀다. 


3개월이 되어 예방접종을 맞는 날, 남자친구가 고양이를 데리고 먼저 병원에 가고 나는 회사에서 뒤따라 가기로 했다. 6호선에서 3호선으로 환승을 하며 걷는데,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나 그때 정말 힘들었구나' 생각하자 눈물이 마구 흘렀다. 어떤 고통은 고양이처럼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다가 뒤늦게 기지개를 켜기도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다. 


고양이는 이제 세 살, 건강하다. 걸음걸이가 조금만 이상해도, 눈 한 쪽이 충혈되어 있어도, 배가 조금 더 나온 것 같아도 병원에 간다. 의사에게 이제 그만 오라는 핀잔을 듣는다. 매일 밤 내 침대에서 잠들고, 아침에는 밥달라 깨운다. 캔사료를 따주면 허겁지겁 먹고, 목적을 달성한 후엔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진다. 


고양이는 행복할까. 의심이 드는 날이면 비오는 날 버스 터미널에서 받았던 편지를 생각한다. 시간이 갈수록 서툰 보호자 옆에서도 고양이는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자렌지 만한 격리병동에서 밥도 못 먹고 울던 날, 고양이는 이미 이 편지를 받았을까. 


나야말로 너에게 고맙다. 내 고양이가 되어줘서, 나를 강하게 만들어줘서, 험한 밥벌이와 세상살이의 목적을 ‘너’라는 하나의 존재로 압축시켜줘서, 건강하게 지내줘서 고맙다. 살다가 불운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내 행운을 모두 모아 너를 살리는 데 썼다고. 그러면 불운도 고마워진다. 고맙다. 고맙다.  


                                                                                                                                                        (2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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