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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Jun 20. 2022

참을 만큼 사랑스러운

새벽 다섯 시, 고양이가 출근한다. 날이 밝도록 TV를 보고 있는 집사에게 핀잔을 주듯 한 번 흘겨보고는 베란다로 간다. 껑충. 캣타워를 올라 몇 시간을 움직이지도 않고 앞을 응시한다. 


고양이는 뭘 보고 있을까? 궁금해서 가끔은 옆에 다가서본다. 베란다 창문은 시원스럽게 크지만, 아파트로 둘러 싸인 우리집 전망은 전혀 시원스럽지 못하다. 앞동 건물이 정면으로 가로막고 서 있고, 동과 동 사이의 좁은 틈으로 먼 데를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 동과 앞동 사이에는 놀이터와 주차장이 있다. 아침이 되면 주차돼 있던 차들이 어디론가 움직일 뿐, 큰 재미는 없다. 고양이와 눈높이를 맞춰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가도 얼마 못 가 포기하고 만다. 


저녁시간, 건조된 빨래를 가지러 다용도실로 갔다가 바깥 풍경에 눈이 멈췄다. 퇴근시간이 지나서인지 대부분의 집에 불이 켜져 있다. 하나도 같은 집은 없다. 그냥 하얗고 노란 등 같아도 거실등은 저마다의 조도로 공간을 밝힌다. 


오른쪽을 바라보면 집들의 오른쪽 벽이 보인다. 어떤 집은 축구경기를 보고 있다. 커다란 TV 화면이 내가 선 자리에서도 또렷하게 잘 보인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왔다갔다 한다. 한 집 건너 다른 집도 축구경기를 보고 있다. 두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집이 퍽 닮아 보인다는 걸 예상도 못하겠지? 


오늘은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분리수거 날이다. 아파트 앞에 페트병과 박스가 하나 둘 쌓인다. 쓰레기가 쌓인 길 옆에서 애들이 소리를 지르며 놀고 있다. 삑삑 하는 소리도 불규칙적으로 들린다.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은 아가의 걸음소리다. 새벽 다섯 시 새들의 지저귐처럼 경쾌하다. 

왼쪽 벽에는 주로 소파가 있는데, 소파가 있는 곳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집들이 베란다 왼편에 빨래를 말리기 때문이다. 건조대에 널려 있는 빨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기도 하고, 깔끔하게 옷걸이에 걸려 있기도 한 것들. 올망졸망 열매처럼 매달려 있다.


대학 때 시창작 수업에서 누군가 아파트를 주제로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시의 제목도, 내용도 잊어버렸지만 한 행만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사람들에게 새가 하는 말이다. 

허공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허공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떠 있는 줄도 모르고 둥둥 떠 있다. 닮은 줄도 모르고 닮은 채로 살아간다. 귀여운 줄도 모르고 사랑스럽다. 모닥불 곁에 모여 볕을 쬐듯, 종일 애쓰고 돌아와 따뜻한 거실등 아래 모여 있는 것이 사랑스럽다. 


세상에는 나쁜 인간이 많다. 뒤통수치는 인간, 챙겨주는 척 잇속 챙기는 인간, 걱정하는 척 한 방 맥이는 인간, 대놓고 악랄한 인간. 맘에 안 드는 인간도 많다. 느려서 속 터져 죽겠는 인간, 귀찮은데 자꾸 물어보는 인간, 피곤해 죽겠을 때 딱 맞춰서 전화하는 인간. 


근데도 아침이면 꼬박꼬박 일어나 어딘가 가고, 때 되면 집에 와서 벌러덩 누워 있고, 날짜에 맞춰 쓰레기도 버리고, 리듬에 맞춰 걸어다니는 걸 보면 어느새 사랑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만다. 우리 고양이 마음도 이럴까? 


하루 종일 시끄럽게 떠드는 인간, 꼭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만 드러 눕는 인간, 자려고 누우면 툭툭 건드리면서 귀찮게 하는 인간, 조용히 말해도 될 것을 굳이굳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인간…지겹다. 얼른 귀 닫고 잠이나 자야지 하다가도,  잠을 깨면 한심한 인간을 보고 저걸 한 대 칠 수도 없고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사뿐히 전망대에 올라 아침 구경을 하며 그래, 사람들은 그래도 나름 귀엽잖아? 이 정도면 참을 만하지 않나?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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