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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Dec 19. 2021

아파하는 것보다 기억하는 일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어린시절,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호흡하는 세상의 모든 게 궁금한 것 투성이였는데, 지금은 질문도 대답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대답은 평생을 통틀어 몇 번이고 타이틀음악처럼 반복 재생된다.  


“산은 어떻게 생겨?”
“나무가 많으면 산이 되지.”  


중학생이 되어 나무가 많으면 숲이 될뿐, 결코 산이 되진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 질문을 할 때의 상황, 함께 들이마셨던 공기까지 기억난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에게 나는 미묘한 기분을 주는 손녀였다. 셋째딸인 나를 임신한 엄마는 할머니와 절에 가서 몇 시간이고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이번에는 아들일 거라는 누군가의 말을 믿고 귀한 녹용도 아낌없이 먹었다고. 아이의 태몽은 재주부리는 뱀이었다. 할머니의 꿈에 웬 뱀 한 마리가 나와 온갖 재주를 다 부리더란다. 꿈을 깬 후 할머니는 엄마에게 말했다.

이 애는 평생 지 재주로 밥벌이 할 거다.


아이는 딸이었고, 엄마는 갓 태어난 아이를 안 보겠다 했다. 집에 데려온 아이를 안을 때면 할머니는 엄마에게 연거푸 말했다. “여자애라도 걱정하지 마라. 이 애는 지 재주로 잘 클 거다.”


가게 일로 바쁜 아빠와 엄마 대신 학교에 돌아와서 밤까지 함께 있는 건 할머니였다. 반질반질한 스뎅 그릇에 계란국과 오뎅국을 번갈아 끓여주고, 계란을 팬에서 휘저어 스크램블에 케첩도 뿌려주었다. 신맛이 덜 나라고 귤은 늘 안의 껍질까지 하나씩 까주었다.


밤에는 할머니와 마주 안고 누웠다. 할머니 등 뒤의 TV에선 그날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강원도에 무장공비가 쳐들어왔다는 뉴스가 나온 날, 할머니는 평소보다 나를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전쟁통에 대부분의 아이를 잃어버린 할머니에게 전쟁은 언제든 코앞에 닥칠 수 있는 공포였다.


할머니가 잠들기 전, 숨소리가 커질 때의 고요를 좋아했다. 고요를 틈타 뭐든 궁금한 걸 물어보면 할머니는 더듬더듬 꿈꾸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무가 많으면 산이 되지” 하던 날 내 손에 감기던 할머니옷의 까끌한 촉감, 위아래로 앙상한 뼈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던 느낌을 기억한다. 산에 나무해와서 애들 자는 방을 덥히고 밥을 지었던 할머니에게 산이란 나무가 많아 소중한 곳이었을까.


딱 한 번, 할머니의 긴 머리를 본 기억이 있다. 매일 비녀를 꽂고 있던 할머니가 머리를 손질하던 중이었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백발을 옆으로 쓸어넘겨 싹싹 빗고는 머리에 기름을 발랐다. 여자를 그리라고 하면 으레 긴 머리에 치마를 그리던 그때, ‘할머니도 여자구나’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허리가 굽었지만 매일 노인정에서 화투를 치던 할머니는 다음 해부터 일어나지 못했다. 간호사인 이웃 아줌마가 매일 링거를 놓고 갔다. 링거는 옷걸이에 걸려 있고, 할머니는 종일 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어느 날, 이가 빠지는 꿈을 꿨다. 일어났더니 고모들이 모두 집에 와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돌아가시는 건 뭘까. 알 수 없었지만 눈물이 났다. 며칠이 지나고 삼베옷에서 양복으로 갈아 입은 아빠는 차 앞에서 엄마를 부르며 아이처럼 울었다. 할머니는 아빠에게 엄마였던 것이다.


할머니는 하늘 대신 산으로 갔다. 할머니가 들어 있다는 관을 사람들이 내리고, 흙을 덮었다. 고모부들은 술을 먹고 농을 했다. 울지 않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죽으면 새가 되고 싶다고 했어.

할머니가 죽고 몇년 후, 아빠의 말이었다. 그 이후로 어딘가 놀러 가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기한 새가 아빠 주변을 맴돈다고. 아빠 말을 들은 이후로 나도 여행지에서 새를 본다. 신혼여행으로 간 여수의 절에서는 오렌지색 새가 우리 부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짧았던 내겐 부재를 아파하는 것보다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 더 쉽다. 고등학교 시절 알람 맞추는 걸 잊고 도서관에서 엎드려 잠이 들었는데 딱 한 시간 후 정각에 잠을 깼을 때, 대학교 1학년 때 지하철을 타고 딴생각을 하다 갑자기 정신이 들어 원래 목적지에 내렸을 때. 나는 ‘할머니가 있다’고 느꼈다. 무슨 말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안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1년 남짓 내 기억에서 살던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산의 관 속에 있기도 하고, 남은 일부는 새가 되지 않았을까. 또 남은 일부는 내 안에 잠시 머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은 일부는 “나무가 많으면 산이 되지” 하는 대답 속에 깃들어, 잊을만 하면 나를 찾아올 지도 모를 일이다.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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