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10
고모는 여든네 살. 고모부가 돌아가신 후, 시집 온 시골집에서 혼자 살던 고모는 이제 시내에 있는 사촌오빠와 함께 산다.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찾은 사촌오빠의 식당.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가 구석에서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있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말을 건다. “일락이 왔네요.” 할머니가 고개를 든다. 한참만에 고모의 얼굴을 알아봤다. 머리가 온통 하얘진 고모는 처음이다.
“일락이? 일락이가 누군데? 아, 네가 일락이구나.”
고모는 더 한참만에야 나를 알아보지만,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일락이 남편도 같이 왔어요. 저번에 봤잖아요.”
“그래, 기억이 난다.”
고모를 부축해 식탁 의자에 앉혔다. 수저를 앞에 놓으니 “나 밥 먹었는데” 그런다.
“어디서?”
“학교에서 먹었지.”
“뭐 먹었는데?”
대답 대신 웃고 만다.
오빠네 집으로 오기 전, 고모는 주간보호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혼자 있다 보니 밥을 굶는 일도, 약을 거르는 일도 많아져 어쩔 수 없이 다니게 됐다고. 주간보호센터에서는 당뇨가 있는 고모를 위해 당뇨환자 전용 식단도 차려주고, 때맞춰 약도 준다고 했다. 무엇보다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있어, 적적하지 않아 좋다고 했다.
“일락이 보니까 생각난다. 어렸을 때 우리집 왔을 적에 밥 먹으면서 ‘고모야, 너는 어떻게 고구마를 이렇게 잘 삶나? 맛있다’ 그랬었는데.”
고모의 시간은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간다.
“우리 아버지가 나를 참 예뻐했었는데. 바우야, 기억 나재?”
일흔이 다 된 아빠에게 묻더니, 고모의 어릴 적 이야기는 한참을 이어진다.
옆에서 고기를 굽던 사촌오빠네 새언니는 작은 목소리로 엄마한테 그런다.
“옛날 기억은 저렇게 생생하다니까요. 근데 조금 전 일도 기억을 못 하셔.”
그러고는 고모에게 말을 건다.
“어머님, 오늘 학교에서 저녁 뭐 먹었어요?”
고모는 새언니 얼굴을 보고 빙긋이 웃다가 나를 보고 말한다.
“우리 일락이 어렸을 때 밥 주면 ‘고모야, 너는 고구마를 어떻게 이렇게 삶았나’ 그랬었는데.”
“그치그치. 기억나지.”
고구마 얘기는 생전 처음 듣는 사람처럼, 고모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고모는 그것 말고도 나한테 할 얘기가 많다.
“시어른 잘 섬겨야 된다. 부모는 자기 자식이니까 자식이 안 섬겨도 중히 여기지. 부모보다도 시어른들한테 잘해. 나는 아들보다도 며느리가 중하더라. 피로 묶인 사람도 아닌데 나한테 어머님, 어머님 하고 잘하는 거 보면 얼마나 중한지 몰라.”
“큰 것들도 안 오고, 작은 것들도 안 오고. 요새는 날 보러 아무도 안 오는데 네가 와서 참 고맙다.”
옆자리에 앉은 남편한테도 잊을 만하면 농담을 건넨다.
“네 장인이 돈쟁이다. 마음껏 먹고 더 사달라고 해라.”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를 배웅해주려는 고모를 부축하는데 “살다 보니 일락이도 보고 좋네” 하고 웃는다. 고모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너를 봤으니 이제 됐다’고 말하려는 눈 같다. 별안간 남편 손목을 잡더니 “사랑해줘” 그런다.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아낸다.
30년 전, 대학교 청소 일을 다니던 고모는 학교 근처에 사는 할머니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고모처럼 약간의 치매기가 있는 할머니는 그 집에 여전히 혼자 살고 계신다고. 지난 주말, 엄마가 할머니댁에 고모를 데려다줬다고 한다. 두 할머니는 서로 부둥켜 안고 오래 울었다고. 다음날 만난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고모의 안부를 물었단다. “그 할매, 아직 살아있나? 벌써 죽었나?”
고모의 말과 행동은 거칠지만 깊고, 난데없이 슬퍼서 오래 각인된다.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날에는 “해 놓고 보니까 다 잘한 일밖에 없더라” 하는 고모의 말을, 온기가 필요한 날에는 두툼한 솜이불 아래서 꺼내주던 뜨끈한 밥공기를 기억해낸다. 얘기도 눈빛도 쉽게 잊고 싶지 않아서 오늘의 고모를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