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GMF(그랜드민트페스티벌), 마지막 뮤지션이 무대로 올라왔다. 물 한 잔 마시지 않고 세 곡을 연달아 불렀다. 고음 파트를 불러도 표정이 전혀 흔들리지 않아 붙여진 ‘김시몬스’라는 별명만큼, 무대는 안정적이었다. 세 번째 곡을 마친 후, 피아노를 치던 멤버가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 저희가 헤드라이너(페스티벌의 마지막 순서)라고 들었어요.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선 건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귀중한 기회 주셔서 감사드려요.”
여기, 팬이 있다. 늘 그렇듯 스탠딩좌석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전 뮤지션의 차례부터 서서 버티고 있던 팬. 하지만 이전 뮤지션이 노래를 끝내도 빈 자리는 생기지 않고, 오히려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한편으로 최애의 인기를 실감하고, 한편으로 ‘오늘은 목소리를 듣는 걸로 만족해야겠구나’ 생각하며 쓸쓸해하는 팬이. 나름 고심해서 서게 된 자리는 하필이면 남자 대포 앞이었다. 큰 키에 대포카메라까지 든 그에게 막혀, 영혼을 끌어 모아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최애의 머리카락 한 올을 볼 수 있었다. 아쉬워하면서도 두 손을 야무지게 들고 최애의 사진을 찍고, 카메라에 찍힌 최애를 보면서 함께 있음을 실감했다.
최애의 공연에서 빠지지 않는 곡이 하나 더 늘었다. 올해 부른 드라마 OST였다. 경쾌한 노래를 부르며 보컬인 그 애는 무대 앞으로 춤추듯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팬들의 환호성이 폭발할 듯 커졌고, 떼창이 터져나왔다. 최애는 멈칫하며 마이크를 무대 쪽으로 넘겨주었다. 곡이 끝난 후 “여러분, 그런데 이 노래를 아세요?” 하고 묻는다. 녹음실에서만 불렀던 노래라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아시는 줄 몰랐다며. ‘본인이 유명해졌다는 걸 정작 본인은 모를 수도 있구나’. 신기했다.
최애는 요즘 불빛을 모은다. 군 입대와 코로나로 무대에서 팬들을 만나기 힘들었던 그는 <선물>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면 관객들에게 휴대폰 플래시를 켜주실 수 있냐고 부탁한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관객석을 찍고, 한 손으로 마이크를 쥔 채 노래 부른다. 무대가 끝나면 직접 찍은 관객석의 불빛 영상을 인스타에 올린다. 페스티벌과 대학 축제가 한창인 가을, 최애의 인스타는 같은 듯 다른 움직임의 불빛으로 가득하다.
마지막 곡을 앞두고 피아노 치는 멤버가 말한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곡을 마지막으로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그 밤>이라는 곡인데요. 저희가 공연 때 거의 들려드린 적이 없는 곡이에요.”
“저희 1집에 수록된 곡인데요.”
최애가 말을 받았다.
“아주 적은 관객 앞에서 노래하던 날들이 있었어요. 저희 멤버가 두 명이니까, 저희 수보다 조금 많은 관객들이 오시기도 했는데요. 서로를 믿을 수밖에 없는 날들에 불렀던 노래입니다.”
환했던 무대 조명이 꺼지고 드럼과 베이스, 기타 소리가 잦아들었다. 멤버의 피아노 선율에 맞춰 최애가 노래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카메라를 끄고 눈을 감았다. ‘그 밤, 밝은 달이 조명되는 밤’으로 시작하는 가사에 귀기울였다.
그날 이후, 불쑥불쑥 <그 밤>이 생각났다. 북페어 부스에 혼자 앉아 책을 팔 때도, 몇 명이나 읽어줄지 모르는 글을 쓰면서도, 버스 정류장에서도, 일을 끝내고 혼자 집에 걸어오면서도 그 밤을 떠올렸다. 떠오른 때가 마침 밤이면 마스크를 쓴 채로 작게 노래하기도 했다. 나 혼자만 들리게 노래하는 기분, 최애도 <그 밤>을 부를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누가 들어줄지 모르는 노래를 만드는 기분, 텅 빈 관객석을 채워준 몇 사람의 눈을 보며 노래하는 기분,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믿는 기분.
아무것도 쓰기 싫어졌을 때가 있었다. 자고 나면 마감은 닥쳐오고, 매일 갇혀서 뭐라고 뭐라고 글을 쓰는데 내 글은 전혀 유명하지 않고, 댓글도 거의 달리지 않고… 아무도 안 보는 글을 혼자 애써서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졌다. 몇 주 동안이나 들어가지 않던 브런치에 누군가 남겨둔 댓글 하나.
이번 편 넘 재밌어서 빵빵 터지며 읽었어요! 작가님은 정말 창의적인 분 같아요!! 앞으로도 많이 읽고 싶어요~
불빛 하나에 신이 나서 시키지도 않은 글을 한참이나 썼다. 그 밤, 내 머리 위에도 밝은 달 하나가 조명되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