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어떤 일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합니다.
나의 자기소개서는 매번 이 문장으로 시작했다. 언젠가 어느 PD 지망생의 합격수기에서 눈에 띈 문장이었다.
저는 평생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내가 덧붙인 두 번째 문장. 오랫 동안 읽고 쓰는 일을 했지만, 읽고 쓰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일을 잃고 나서였다. 겉모양은 자발적 퇴사였지만, 나는 마지막 회사를 나온 게 아니라 잃었다고 생각한다. 잘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매 순간 버거웠고, 버거운 만큼 더 잘하려 매달리다 어느 순간 일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이 모두 풀리고 말았다. 몇 년째 괜찮다고 생각했던 우울증을 다시 진단받고 하릴없이 집에서 뒹굴거렸다. 뒹굴거리면서 잘 하지도 않는 인스타로 뒤적거렸다. ‘글쓰기모임’이라는 해시태그를.
동네책방에서 여는 글쓰기모임 공고를 보고서는 아날로그형 인간답게 전화를 걸었다. 사려 깊은 주인장의 목소리에 마음을 놓고 첫 글을 보냈다. 제목은 ‘글 쓰는 사람의 방향’.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가는 방향이 글 쓰는 사람의 방향이었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문단에 썼다. 오랜 시간 몰랐거나 외면하고 살았던 나의 진심이었다.
일을 하면서 좋은 문장을 만날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늘 뭔가 아쉬워 그 좋은 문장에 무언가를 덧붙이고 잘라냈다. 스스로 문장을 쓰면서 내가 손댄 문장들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고작 몇 문장을 이어 쓰는 것도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눈을 부릅 뜨고 단어를 노려보며 문장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안 어울리는 천을 모아 조각보를 만들듯 글을 지었다.
글쓰기모임에서는 매주 글감이 될 만한 문장이 주어졌는데, 처음에는 문장을 보고 떠올린 누군가의 이야기를 썼다. 짧은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 상념을 토해낸 글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들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게 낯설었다. 그러다 하나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나에겐 10년 전 가족을 떠난 두 언니가 있다고. 어릴 적부터 이유 모를 불안에 시달려 왔다고. 남들 다 잘 다니는 회사를 다니지 못한다는 열패감에도 시시때때로 무너진다고.
가끔은 이렇게도 썼다. 우리 엄마는 내가 백일장에서 글을 쓸 때마다 양산을 들고 쏟아지는 햇빛을 가려주었다고. 남편과 나는 언젠가 헤어지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혼을 앞둔 법정에서도 우리는 혼자가 될 서로를 오래오래 물끄러미 바라볼 거라고. 편집자도, 기획자도 못 되었지만 나는 무언가 열심히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돈을 버는 일은 아니었지만, 2년간 매주 나에 관해 뭐라고 쓰는 일은 사명감을 불러일으켰다. 뭐라도 꼭 쓰겠다는 마음으로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이야기를 보태갔다. 책임감과 함께 이야기는 쌓였다.
“언니는 계속 글을 써.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많아 보여.”
글쓰기모임 친구들과 글을 모아 낸 책을 보고, 오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뒤죽박죽 중구난방. 빨랫감처럼 제멋대로 쌓인 이야기가 그에겐 무궁무진한 잠재력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매주 썼고, 100개 가까운 이야기가 내 곁에서 복작거린다. ‘너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나를 가르친다. 모임에서만 잠깐 돌려보고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이야기도 많지만, 어쨌든 나의 바깥으로 나와 별처럼 내 주위를 돈다.
남편의 합격 소식을 조용히 질투하던 날도, 옛 동료의 뼈 있는 농담에 옆구리를 푹 찔린 날도, 작은 생명을 얻은 날도, 잃을 뻔한 날도 기억에서 글자로 남았다.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날들을 쓰고 나눈 후에는 오랫 동안 박혀 있던 칼을 빼버린 사람처럼 일주일을 날카로운 통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괜찮아졌다.
2023년 8월, 모두의 여름방학이 한창이다. 날은 찌는 듯 덥고, 방학을 맞은 아이와 어른 들은 바다로 계곡으로, 그것도 안 되면 카페로 향한다. 나도 방학을 준비한다. 만삭의 배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나는 글을 썼다’고 쓰면서 글쓰기 방학을 준비한다. 아이와 함께 찾아올 ‘글 되지 못할 시간’을 머릿속으로 셈해보면서.
다시 글 쓰지 않는 시간은 어떨까. 처음 얼마간은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기쁠 것이고, 그 감정이 다하면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내지 못해 마음이 굳어버리기도 하겠지. 가끔 그리워하고, 아주 멀어지지 않았으면. 그간 어렵게 쌓아 온 ‘글 쓰는 근육’이 모두 물렁해지더라도 물렁한 채로, 매번 졌다는 마음으로 다시 이야기를 쌓을 수 있었으면. 개학 때는 잘 못 써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좀 더 많은 사람으로 노트북 위 낯설어진 글자 위에 손을 올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