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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Aug 16. 2023

사과의 문제

시인은 맛있는 사과 한 개를 앞에 두고는 반만 잘라 먹고, 반은 그 자리에 두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대학교 4학년 때 들었던 <현대시창작론> 수업의 기말고사 시험문제였다. 나는 “사과잼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답을 했다. 그때의 답안을 돌이켜 써보면 대략 이러하다.                               

시인은 자리에 둔 사과로 요리를 합니다.
사과와 설탕을 넣고 끓이면 사과잼이 되는데요.
이건 처음의 사과와도, 위장에서 소화된 사과와도 다른 결과물입니다.
시인은 시를 통해 원래의 세계와도, 소화된 세계와도 다른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살면서 그 시험문제와 내 답변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친구를 잃었다. 친구를 사귀는 일도,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도 어려워하던 내게는 몇 없는 친구였다.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너무 싫다”는 말만 남기고 나에게서 멀어졌는데 나에게는 그 이유를 알 길도,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시간이 흘렀다. 자주 친구의 꿈을 꾸었다. 꿈에서 친구는 나를 자주 안아주었는데, 꿈에서 깨면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고되게 일한 후에 피곤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꾸는 꿈이었다. 꿈을 깨고 나면 다음날 정오 무렵까지 엄마 잃은 애처럼 마음이 서러웠다. 


여러 번 생각했었다. 함께 아는 친구 A에게 연락처를 물어볼까. 카톡 메시지를 썼다가 지웠다. 평생 물어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이 질문은 나에게 남겨둔 사과였다. 너무 오래 남겨둔 나머지, 사과잼으로도 만들지 못할만큼 썩어버린 사과. 


최근에 인스타를 시작했다. 고양이 사진도 올리고, 최애의 공연 티케팅 성공도 자랑했다. 가까이 지내는 몇 안 되는 친구에게 일일히 카톡으로 아이디를 묻고, 팔로우를 눌렀다. 나의 유일한 고등학교 친구 A도 그 중에 있었다. A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오랜만에 보는 이름들의 댓글이 있었다. 


그중 하나의 댓글에 시선이 꽂혔다. 캠핑사진에 달린 댓글이었다. 같이 가고 싶다는 댓글에 같이 가자는 답글이 달려 있었는데, 익숙한 두 글자가 눈에 띄었다. 내가 잃었던 친구의 별명이었다. 

침대에 모로 누워 생각했다. 이 사과를 먹어버리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별명의 주인에게 보낼 메시지를 썼다. 그시절 나의 엄마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때 왜 그랬냐는 질문에 돋힌 가시를 정성스레 떼어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이 어제 같다고 썼다. 이미 잊었을 지도 모르지만, 기억을 되짚어달라고 썼다. 나 또한 너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니, 혹시 그런 일이 있다면 가감없이 말해달라고 썼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서 절실한 문제이니 꼭 답장을 달라고 썼다. 


아무 일도 없는 척 TV를 보면서도 휴대폰 진동이 울릴까 노심초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동이 울렸다. 

“일락아, 오랜만이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내줘서 고마워. 내가 지금 밖이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답장 보낼게. 답장 기다릴까봐 먼저 연락해. 조금만 기다려줘!” 

천천히 메시지 줘도 된다고 답장을 썼다.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놓고 안방문을 닫은 다음, 거실에서 일을 했다. 일을 하다가 방문을 열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긴 메시지가 와 있었다. 틀린 맞춤법 하나 없이 정돈된 편지였다. 


“마침 산책 중이어서 자세히 생각을 해봤어. 너에게 상처받을 만한 일은 없었고, 나는 그저 좀 버거웠던 것 같아. A와 나, 너 이렇게 셋이서 친했잖아. 그런데 너는 자주 A와 내가 너보다 친해질까 봐 두려워했어. 처음에는 ‘나를 이렇게까지 좋아해주는구나’ 싶었는데, 점점 버거워졌어. 그날 너에게 “정말 싫다”는 말을 한 것 같아. 지금이라면 좀 더 성숙하게 대처했겠지만, 그때의 나로서는 다른 방법을 몰랐어. 

네가 나를 생각하면서 오랫 동안 힘들어했다니 마음이 편치 않다. 좀 더 일찍 이야기나눴으면 덜 힘들어했을 텐데. 지금은 그때의 감정이 다 잊혀졌고, 가끔 A한테 네 안부를 물어보기도 해. 그때의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미안해. 사과할게. 너도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라, 진심으로.”


메모장을 열어 답장을 썼다. 자세하고 솔직하게 답장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나는 네 목소리 빼고는 모조리 잊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던 걸 몰랐다고. 방식은 별로지만, 그때 내가 널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고. 이렇게 오랫 동안 잊지 못했던 걸 보니, 네가 평생 몇 없을 친구였던 것 같다고, 쓰는데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게까지 좋아한 친구에게, 15년이 지나 다시 연결된 지금, 나는 다가갈 수 없는 걸까. 많은 사람을 옆에 두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에게는 흔치 않은 사람인데, 나는 다시 찾아온 이 기회를 이렇게 보내버려도 되는 걸까. 상한 줄 알았던 사과는 사실, 완전히 썩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실은 하나도 안 성숙해졌고, 지금도 똑같아. 친구도 몇 없고, 찐하게 좋아하고.”

생각보다 고백이 먼저 튀어나와버렸다. 

“맨날 붙어 있어야 되는 학교 말고, 어른 돼서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 문장을 어떻게 이어야 할까? 

“아쉽다.” 

고민보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래도 그때 네가 있어서 재밌는 일이 참 많았다고, 지금도 옛날 사진을 보면 자주 웃는다고 썼다. 사과의 속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과를 보고, 문장을 지웠다. 그대신 이렇게 썼다. 

“앞으로도 A 통해서 종종 내 안부 물어줘. 나도 이제 A 만나면 네 안부 물어볼 수 있겠다. 아가도 순산하고, 예쁜 가정 이뤄서 잘 지내. 고마워. 그때도, 오늘 답장도!” 


마지막으로 덧붙인 이모티콘은 벚꽃 잎이었다. 벚꽃 잎 책갈피를 놓아두듯이, 이 문장 뒤에 기억을 놓아두고 페이지를 닫았다. 벚꽃철이어서 그런지, 기대가 벚꽃잎처럼 돋아났다. 

‘혹시나 다음엔 다같이 만나자고 하지 않을까?’, ‘둘이서라도 한번 보자고 답장이 오면?’, ‘내가 먼저 팔로우를 걸어볼까?’ 

다시 휴대폰을 침대에 두고,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서 메시지 옆에 떠 있던 프로필 사진을 생각했다. 남녀가 손을 잡고 있는 상반신 사진이었다. 만삭의 여자는 사과 모양으로 부푼 아랫배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 여자는 물론, 내가 잃어버린 친구일 것이었다. 

이번에도 절반의 사과를 남겨두었다. 이제 남은 사과는 반의 반. 상했다고 생각한 사과는 상하지 않았다. 이 사과는 잼이 될까, 그냥 사과로 남을까. 언젠가는 사라져 없어지게 될까. 시인이 되지 못한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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